출애굽을 왜 이 시점에해야 하나요? 애굽을 떠나게 하는 믿음 ( 50:24-26,  11:22)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말하고  자기 해골 위하여 명하였으며

지난 금요일에는 Same-Sex Marraige법이 미국대법원에서 합법으로 통과 되었습니다. 아울러  세계가 경제 불황, 테러, 더위, 기근으로 사망으로 아비규환입니다. 경제 전문가뿐 아니라 사업을 하시는 분들 이구동성으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걷는  같다고들 불안해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검은 말이 뛰니 기근과 흉년이 든다고 하였는데,,,,참으로 이 시대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요셉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사람입니다. 태어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반전을 거듭하면서 예측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세상에 임할 기근을 알고 미리 준비하여서  세상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 급기야 자기를 버렸던 원수 같은 형제들과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주를 시켜서  먹고  살도록 줍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고센이라는  동네를 통째로 주었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요셉 덕에 기근으로부터 살아  수가 있었습니다.

야곱의 일생사를 보면 요셉의 덕으로 애굽에 정착하기  까지만 해도 어디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사를  보아서 알겠지만 이사 다니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 갖는 것입니다. 다시 이사 다니지않도록  장만 하는 것입니다. 야곱도 아버지 이삭을 따라서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면서 느꼈을 것입니다. 힘이 있어야 정착  있다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벌어서 끝내는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 이제 살게 되었나 보다! 라고 헸는데 외동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에게 겁탈을 당합니다. 세겜의 추장이 야곱에게 찾아와사위가  테이니 이곳에서 오순도순 살자고 제안을 하자 너무도 힘든 세월을 살아온 터라 야곱은 그러려고 했는데 그만 혈기 방자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을 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야곱은 철렁한 가슴을 쓸어안고 고민하는데, 그때 하나님이 세겜에  머물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다시   가족이 터를 잡아 놓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이사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살라고 했으니 이젠 여기서 뼈를 묻을  있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세상에 기근이 들이 닥쳤습니다. 이젠 양식이 없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애굽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총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장차 엄청난 기근이  것을 미리 알고 양식을 넉넉하게 준비 두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없으니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양식을 오라고 합니다.

 때도 어김없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애굽으로 이사를 가라고 하십니다. 아들도 오라고 하고 하나님도 가라고 하니 타이밍이 척척 맞아 떨어집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계시가 떨어지자 70명이라는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사를 갑니다. 이사를 하는데 객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당당하게 총리대신의 아비로서 이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 식구들은애굽에 정착하여 삶에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요셉은 든든한 후견자가 되어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게  것입니다.

이젠 누가 시비 거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들이 총리인데  누가 객이라고 시비를 걸겠습니까? 도리어 총리대신의 가족이라고 최고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젠  이상 지방의 호족들에게 쫓겨 다닐 이유도 없습니다. 이젠 야곱의 식구가 바로 애굽에 호족(豪族) 되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서 커다란 방패막이가 버티고 있어서 이젠 누가 보아도 애굽에 토착 세력이 되었습니다.

당시 요셉은 기근을 해결한 공로로 실제적으로  노릇을 위임 받아서 행사를 하였습니다.  50:3절에 보면, 야곱이 죽었을 때, 국상과 같은 대우로 장례를 치룹니다. 향처리 40일 애곡 70일을 했습니다. 당시 왕과 같은 대우입니다. 지금 요셉이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요셉의 가족은 애굽의 비주류가 아니고 주류입니다. 요셉의 형들도 이젠 애굽에서 어깨를 펴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입에서 청천병력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내가 죽으면  해골을 메고 애굽을 떠나라고 합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일궈온 터전인데! 그토록 죽을 고비를 넘겨 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쌓아온 가문의 영광인데! 여기서 문을 닫으라고요? 이건 말이  됩니다.

사람이란 간사하여서  가난하게 살았으면 가난한 생활을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살라고하면 못삽니다. 좁게 살다가 넓은 곳으로 가면 살아도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다가 좁은 평수로 이사 가면 못삽니다. 백마 타다가 당나귀 타라고 하면  탑니다. 몸이 편한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이주하고  후로는 총리대신의 형제들이라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누가이런 삶을 포기 하겠습니까? 자자손손 영원토록 살고 싶어하지! 그런데 이제 그만 살고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가나안으로가라고 합니다. 형제들 입장에서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겠습니까? 이제  살만 하니 가라니요. 이건 말도  되는 소리입니다.

유산을 상속해 주지는 못줄망정 터전을 떠나라고 합니다. 유산   남겨 두지 않고 현재 살고 있는  마져 비우라고 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떠나라니요!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그런 답니다. 아니 무슨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  있습니까? ?  사는 사람을 고생 길로  몹니까? 하나님이 권고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을 사랑해서 애굽에서 떠나라고 한다는 겁니다. 무슨 놈에 사랑이 사지(死地)  모는 사랑이 있습니까? 너희들이 전에 살았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한답니다. 아니 거기서 쫓겨 오다시피 왔는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하니말이 됩니까?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합니다. 이건 바라던 바가 아닙니다.

애당초 가라고 할려면 터를 잡기 전에 가라고 하든가? 겨우 터를 잡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하니 떠나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바벨론 포로(70년 정착)로 가서도 그랬다. 정들고 자식들을 낳고 살고 있는데 돌아가라고 했다. 말이야바른 말이지! 누가 애굽(440년 정착)으로 이사 오고 싶어서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해서   아닙니까? 돌아가게   같으면  오라고 했느냐?  말입니다. 차라리 애굽으로 오라고 하지나 말지! 오라고 했으면  살게나 주든지,, 이제 살만 하니  쫓는 것은 무슨 경우냐?  말입니다. 애굽으로  오고 가나안에 터를 잡았으면 지금쯤은 떵떵거리고   있는 기반이라도 마련하였을 터인데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가문대대로 생을 마친 곳, 제자들 역시 천직을 버렸습니다. 여기서 버리다는 아펜테스로 분리(divorce)를 의미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상식적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들이 어려서부터 배워온 하나님이신가요? 내가 원하는 하나님이신가요? 우리의 심정을 대신하기라도 한듯이 이스라엘이 틈만 나면 비상식적인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으로 [이방신은 그렇게 했으니까] 바꾸려고 시도한 겁니다.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은 신을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지금 요셉에게 간섭하는 하나님은 우리들이 바라는 하나님과 같은가요? 아마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너무도 다릅니다. 너무도 낯설고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 우리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에게 역사하신 그 하나님은 낯설까요? 우리들이 낯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뜻대로  움직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전혀 낯설지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가 생각해 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을 다스린 하나님이 지금우리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간섭하셨듯이 우리도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열면 자기 백성들을 들들 볶아대는데 어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있습니까? 성경을 닫으면 좋으신 하나님인데 성경을 열면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의미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거짓선지자 성경을 덮고 상식적인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경중심의 하나님의 사랑 말하지 않고 인간중심의 하나님의 사랑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성경을 펴서 전혀 낯선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심을 접하게 됩니다. 아니 이럴 수가!

여러분 바울이 그랬지요. 유대주의, 율법주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는데, 진짜 성경대로 오신, 말씀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 예수가 다른 예수였고,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나의 주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그 예수가 낯설으신지요? 내가 기대하는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이신지요? 유대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메시야라고 배척했듯이 말입니다. 

교회 와서  예수를 만나야 하는데,  예수를 전하면 싫어해요. 가짜 예수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자기 소원 들어주는 예수를 말하라는 겁니다.  살고 있는데 불쑥 찾아와서 애굽을 떠나라고 하는 그런 하나님은 싫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오늘날 교회의 실상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주소입니다. 

지금 이시대가 가짜 하나님을 설교하기를 바랍니까? 진짜 하나님을 설교하기를 바랍니까? 진짜 하나님 설교하기를 바라지요. 그런데 이건 마음뿐이고 실제로는 반대로 나타나요. 종교다원주의가 좋다고 합니다. 죄를 지적하는 예수보다, 죄를 말하지 않는 복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암튼 요셉의 형제들에게 진짜 하나님이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결과  잡고  살아가는 애굽을 떠나라고 합니다. 형들이 듣기엔 편하게 살지 말고 고생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요셉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고, 히브리서 기자의 말로는 요셉이 이렇게  것은  믿음으로 그랬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요셉에게 형제들을 애굽에서 떠나라고했다고 합니다.  11:22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그럼 여기서 하나님은 ? 애굽에서  사는 요셉과  형제들에게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을까요? 하나님께서애굽을 떠나라고  것이 얼마나  사랑인지 살펴봅시다. 성경은 애굽을 일컬어 죄악  세상이라고 하고, 가나안을 일컬어젓과 꿀이 흐르는 천국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 입장에선 애굽은 천국과 같고 가나안은 지옥과 같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천국과 지옥을 역설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애굽은 물이 철철 넘쳐서 농사도 잘되는 땅인데 가나안은 산악지대로 하늘에서 비를 주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땅입니다. 애굽은 인간의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수 있는 땅인 반면에 가나안은 인간의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  없습니다. 가나안에선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아야 해요. 꼼짝없이 하나님께서  주는 것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목숨이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 겁니다. 마치 들에  풀과 같아요. 하나님이 때를 따라서 비를 주어서 살게  주면 살고  주면 말라 죽어야 해요.

아브라함과 롯의 비유를 보면 롯은 요단 들판 바라보았는데 에덴동산과 같다 했습니다. 그래서 롯이 주저함 없이 그곳을 택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지는 이었습니다. 롯이 불구덩이인줄 모르고 겉만 보고 따라간겁니다.  세상도 그래요. 겉보기엔 화려하고 보기 좋아도  구덩이인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지금 요셉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애굽은 장차 불벼락을 맞을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에덴동산처럼 보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에게 어디  것인가 결정하라고 하면 백이면  애굽을 택하지 가나안을 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면 요셉의 형제들은 롯처럼 애굽이라는 불구덩이에 자리를 틀고 앉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떠나라고 간섭하시는겁니다. 롯이 소동 고모라가 유황불 심판을 받을 것이라곤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걸 알았다면 아브라함과 같이 가나안에살았지요.

그러니 지금 믿음이 요셉으로 하여금 형제들을 애굽에서 떠나라고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이냐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떠나라는 소리가 좋게 들리지 않아요. ? 그러냐 하면 여기에 자신들이 평생 모아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버릴 수가 없어요. 어떻게 모은 재물이고 어떻게 일구어온 성공인데 떠납니까? 요셉처럼부귀영화를 버리고 떠나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저주스럽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세상이 망한다!  종말이다! 죽는다! 라는 말을 하면 너는 어째 그렇게 부정적이고 심사가  틀려 있느냐! 라고 욕을 합니다. 노아때도 그랬습니다. 

복음이 저주스러운 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땅에 것을 버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터를  닦아둔 애굽에서  사세요! 라고 하면 좋을 텐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하니 싫은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설교가 ? 싫습니까?   죄인이라고 하고 우리의 소원은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 아닙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에 가세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고난 좋아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땅에서도 천국생활 하다가 죽어서도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지금 요셉의 형제들 눈에는 애굽이 천국이고 가나안이 지옥으로 보입니다. 우리들도 이들과 한치도 다르지 않죠.

여러분 세상이 말하는 상식적인 복음이 뭡니까? 마귀 육신을 볼모로 하여서 항상 달콤한 것을 주겠다고 미혹을 합니다. 광야의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주겠다고 하였듯이 지금도 이러한 것들로유혹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가난해서야 쓰나! 그래서 어떻게 전도가 되느냐 라며 아주 인간적으로 지극히 상식적으로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마치 미끼로 고기를 잡고자 하듯이! 그래서 세상에 안주 하도록 합니다.

여러분 한번 그림을 그려 보세요. 정든 애굽 땅을 뒤로   개나리 보짐을 이고 지고 아이들 걸리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떠나는 요셉의 형제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떠나는 그들이 발걸음이 가볍겠습니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걸음 걸음 옮기는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겠습니까?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애굽에서 밀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안다고  수가 있어집니다.

복음이란? 우리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시려고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박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 정들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과 벗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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