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하나님께 맡기라 ( 8:26-28)

  1. 내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맡기라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며, 또는 내 삶의 사령관이 되어 주신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성령님께서 내 삶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사가 되어주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내 인생을 운전해 가는 삶입니다. 그것이 성령님 안에서의 삶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있고 연약함이 있습니다. 다만 예수를 믿으면 달라지는 것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지만 성령님께서 운전대를 잡으시고 가면 따라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을 예수 믿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은 우리의 타락한 소원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8:26-27을 읽어 보세요. 이 말씀을 간단히 말하면 우리 인간은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가장 큰 주제가 무엇인가 하면, 그 연약함 가운데 우리는 마땅히 빌 바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함 즉 소원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원해야 될지도 모르고, 또 굳이 원한다 할지라도 제대로 구할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원함, 소원자체가 없거나 타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소원이 바뀌는 것입니다. 다스리고 심었던 사람이 섬기고자 하는 소원, 큰집(성경공부),큰돈(기독서점,센터),해변에 살고 싶었던 사람이 교회근처(새벽기도)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소원상실이다. 누구나 꿈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 사라지지 않았는가? 내가 이땅에 사는 이유였던 소원말입니다.  3장에서 성전미문에서 동전을 얻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새로운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1. 염려로 살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가? 기도와 감사함으로 사는 것이다. 

소원의 타락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소원이 타락되어 있는 것이 진정한 문제입니다.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을 절망이라고 한다면, 원하는 것이 틀린 것을 중독이라고 합니다. 중독이 왜 나쁜 것입니까? 바로 소원이 타락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중독이든지 중독된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구하지 않습니다. 꼭 자기를 망치게 만드는 것을 구합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소원의 타락때문에 파멸의 길로 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도박중독자는 도박이 자기를 망치는데 도박장소만 찾는다. 알콜중독자는 술이 자기를 망치는데, 술마실 장소와 기회만 찾는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이런 마음을 고쳐주십니다.  4:6-7을 보세요.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때 염려로 살아가지 말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그렇게 디자인하셨습니다. 염려와 걱정이 운전사가 되면 안됩니다. 염려로 살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도로 사는 것,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면 염려하지 않습니다. 

즉 마음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기도생활과 감사생활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1. 부정적인 태도와 마음을 버리고 성령님을 붙들라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한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잘 안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꼭 안 된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왜 그렇게 안 될 마음을 가지는지 답답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된다는 마음을 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세요. 모든 것을 좋게 본다는 것입니다. 해석의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적용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보는 눈을 바꾸어준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렇게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 오든지 환경을 좋게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험하는 사람을 열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하시겠지..라고 살아가니 말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영적 무조건반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 온다할지라도 무조건적으로 반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감사로 말입니다. 다시 말해, 무조건적으로 좋게 해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열두 정탐군을 보라. 아낙자손이 너무 커서 자신을 메뚜기라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크니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커서 우리의 밥으로 좋다는 것이죠. 먹을 거리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언제 신앙성장이 있는가? 학교다닐때 언제 공부를 잘했는가? 선생님이 좋을 때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교회가 좋아야 하고, 목사가 좋아야 하고, 성도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마귀는 교회가, 목사가, 성도가 싫어지게 한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 성령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즉 마음이 변화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이렇게 주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소원과 성령님의 마음으로 무장하는 믿음의 신실한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기도하실 때, 소원의 회복과 환경이 좋게 보이는 눈을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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