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 (출 20:15, 수 7:16-21)

 

레미제라블은 1862년에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로, 잘 알려진 19세기 소설 중 하나입니다. 제목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며, 우리에게는 ‘장발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민중들이 비참한 삶과 1832년에 있었던 프랑스 6월 항쟁을 소재로 하였습니다. 민중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사회개혁의지를 보여주는 사회 소설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한 실천적인 해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민혁명에 동참했다가 정부군의 진압으로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장발장이 하수도를 통해 피신시키는 장면은 작가의 사회 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지 뿐만 아니라 행위를 통한 인간의 죄와 구원을 향한 열망을 보여 주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허균이 지은 소설로 ‘홍길동전’이 있습니다. 탐관오리의 부패를 고발하고, 핍박 받는 서민들을 위해 싸운 의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정의로운 분배’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사회고발 및 의식 개혁의 소설인 것입니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소재가 ‘도둑질’을 통해 인간의 기본 욕구와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당시의 사회에 던졌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도둑질이 ‘죄’라기 보다는 개혁을 위한 수단으로 우리들에게 인식이 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좀 도둑들이 참으로 많다고 합니다. 어느 2세 목사님이 아는 도둑이 있었는데 도둑들에게 지켜야 할 법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자기 동네에서는 절대로 훔치지 않는다”는 것이 법이라고 알려 주더랍니다. 자기 동네에서 도둑질하는 것은 정말 도둑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도둑질에 대한 계명을 상고하므로 우리의 신앙의 올바른 자세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십계명은 “관계의 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 관계를 잘 하는 법이고, 5-10계명은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하는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건강한 신자들은 사람과의 관계도 아름답습니다. 십계명을 우리가 살피는 것은 우리의 관계 지수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나의 하나님과 관계는 0-10, 어디입니까?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는? 부모님과 관계? 가족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요즘 우리가 자주 듣는 뉴스는 쟈크 엘룰이 쓴 “뒤틀려진 기독교”의 실상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8번째 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 ”라는 계명입니다. 도둑질은 보통 자신에게 뭔가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것이 꼭 갖고 싶은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획득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이 계명이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특별히 도둑질 한 적이 없다, 그러니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계명 같다’라고 생각하시면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듣는 분이 혹시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유난히 한국 사람들은 도둑질을 관대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도둑’이 들어가는 말도 많습니다. 사위를 딸 도둑이라고 말하거나, 밥을 많이 먹도록 식욕을 돋구는 훌륭한 반찬(주로 젓갈류)을 일컬어 밥도둑이라고 해서 밥상 맨 앞에 둡니다. 잘 익은 김치를 일컬어 맛 도둑이라고 했습니다. ‘서리’라고 하여 남의 것을 도둑질 해 먹은 이야기가 추억이 되고 미담이 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그만큼 도둑질과 친숙하기 때문입니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는 속담과 같이 옛날에는 흉년이나 기근에 따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절박한 행위로 이해된 시기도 있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직업으로서의 도둑도 많습니다. 

 

가끔 뉴스에 보면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계에서 노예 계약이 문제 되기도 합니다. 돈을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고리 대금업자들은 ‘신체포기 각서’를 쓰게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컴퓨터 프로그램의 불법 복제 같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양심에 아무 거리낌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업 대 기업 간, 국가 대 국가 간에도 이런 문제가 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애플과 삼성이라는 큰 회사가 특허 도용 재판으로 싸우기도 합니다. 종종, 특허 전쟁으로 회사 문을 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기술을 도둑질 해 갔다는 것이지요. 회사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는 것이지요. 최근 미국이 중국에 관세 폭탄을 선언한 것도 이런 종류의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박물관에 가 보면 세계 각국의 화려한 고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들 중에는 상당 수는 과거에 약탈해 온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논리를 가지고 그런 것들을 돌려 주지 않고 있지요. 이처럼 온 사회에 퍼져 있는 범죄의 동기에는 이렇게 인간의 욕망이 담긴 도둑질이라는 죄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잠 9: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도적인 도둑질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심결에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는 도둑질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도둑질을 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원래 ‘도둑질하다’에 쓰인 히브리어, “가나브”는 ‘모르게 옆으로 밀어 놓다’(put aside)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속여 옆으로 살짝 밀어놓는 것’을 말하죠.

 

창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러니 태초부터 이 죄가 존재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 당시 아간이 도둑질할 때 아이 성의 패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신앙을 빙자해서 도둑질을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등은 어떻습니까!

 

믿음의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야곱은 그 이름대로 형의 것을 속여서 빼앗았습니다. 흔히 사기(詐欺)라고 불리는 이 도둑질은 지능형 도둑을 일컫습니다. 그것도 남도 아닌 쌍둥이형에게서 속여 빼앗았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옳지 아니하니이까? 이는 그가 이같이 두 번이나 나를 속여 빼앗았음이니이다. 그가 나의 장자권을 빼앗았고, 보소서,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하고 그가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니”(창27:36). 야곱은 형 에서의 재물을 훔치지는 않았지만 대신 장자권과 복을 빼앗았습니다. 

 

주님은 도둑질과 속여 빼앗는 것을 구분하셨습니다. “네가 명령들을 아나니 곧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막10:19). 그러나 구약에서는 이 둘의 구분이 없고, 모두 포함됩니다. 속여 빼앗는 것은 도둑질과 다른 것이 아니라 도둑질의 지능적인 한 가지 방법입니다. ‘가나브’는 이런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후에 야곱이 얼마나 크게 모든 일에 철저하게 그 대가를 경험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20년이나 고생을 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가 그토록 얻고 싶어서 청춘을 불살랐던 아내 라헬 역시 (1) 부창부수라고 도둑(년?)이었습니다. 라헬은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자기 아버지의 신들을 훔쳐 버렸습니다. 딸 자식 키워야 소용없다는 말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딸이 둘이나 되니 걱정입니다. 우리 교회도 딸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라반이 자기 양떼의 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자기 아버지의 형상들을 훔치고”(창31:19). 이 일로 라반은 야곱을 추격했습니다. 이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나님도 참 바쁘십니다. 이런 신자 만나면…박영성 목사님은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라반을 막으셨고, 라헬이 들키지 않았기에 살아날 수 있었지 참으로 위험했습니다. (2) 부전자전이라고 이번에는 야곱의 아들들 12중 10명이 공모해서 야곱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야곱에게서 훔쳐서 팔아 버리고 속였습니다. 완전히 도둑놈 집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대가(심판)가 아니면 무엇이 대가(심판)이겠습니까? 

 

형제를 속여서 빼앗는 도둑질에 대해 하나님은 결코 그냥 넘어 가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도 어떤 일에서든지 도를 넘어 자기 형제를 속여 빼앗지 말라. 그 까닭은 또한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것같이 주께서 이런 모든 자들에게 신원하여 주심이라.”(살전4:6). (살면서 속상한 일이 있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주님은 마귀를 도둑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에덴의 동산에서부터 사람을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죽이고,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마귀는 살인자이며, 도둑이기 때문에 사람을 훔치고, 죽입니다. 인신 매매, 유괴, 납치 등은 모두 마귀의 속성이 인간을 통해 드러난 대표적인 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이 도적이 들어 오지 않도록 마음의 문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을 보면,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거늘 너희가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19:46). 유대인들은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실행은 어떻습니까? 장사하는 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도둑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은 믿음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믿음과 실행이 따로 노는데 주님은 이것을 도둑질이라고 하십니다. “그런즉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사람이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롬2:21). 

 

그렇다면 이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집으로 모셨을 때 그는 삶의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나무에 올라갈 때도 그랬다)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올바른 물질관을 세워야 합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 되십니다. 돈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비결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고, 돈으로 유흥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음식은 살 수는 있으나 식욕을 살 수는 없고, 돈으로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구세주는 살 수 없고, 돈으로 예배당은 지을 수 있으나 하늘나라는 지을 수 없다.” 눅 12:15,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 하십니다. 주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안식일), 물질(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는 “주께서 이런 모든 자들에게 신원하여 주심이라”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자족의 비밀을 누려야 합니다. 아굴의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잠 30:8b-9,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빌 4:11,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이 땅을 떠날 때는 다 놓고 가야 합니다.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아는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약 3:15)

 

조지 뮐러는 하나님만 신뢰하는 올바른 물질관에 따라 오직 하나님만 믿고 기도함으로 수천 명의 고아들을 양육시킬 수 있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을 선교 사역 중에 당할 때 결코 사람들에게 빌리거나 꾸지 않고 하나님만 신뢰함으로 모든 쓸 것을 채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 석양에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자원이 결코 결핍되지 않는다”는 체험적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이 말씀이 참으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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