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과 성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 2:13-22)

 

대강절 2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저는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특별히 성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알아 보고자 합니다. 

 

성전? 하나님한테 제사지내던 곳 아닌가? 지금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예수님을 믿으니까 성전에 대해 아는 것이 굳이 필요한가?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전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할까요? 

 

성전이 생긴 원리 성전이 운영되는 원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져다줍니다. 성전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있는 성전으로 살아갈 것이냐 하는질문을 하고 대답을 얻을 거예요. 

 

맨 처음 만들어진 성전은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다시 말해, 성경에 어디쯤에 성전이 나옵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고 나서 성막을 짓습니다. 일종의 이동식 성전이라고 할 수있겠죠? 또 다윗의 아들 누굽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외부의 침략 때문에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70년 포로 생활 한 뒤에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짓습니다. 이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또 이 스룹바벨 성전도 파괴 되서 헤롯이 성전을 지어줍니다. 그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헤롯 성전입니다. 헤롯 성전도 파괴됩니다. 그 후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된 성전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

 성전이 되었습니다. 돌로 된 성전은 없지만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성전이기 때문에 우

 성전이 뭔지 알아야 합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바른 성전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최초의 성전은 무엇일까요? 최초의 성전은 에덴동산입니다. 성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뭐냐면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영역에 계시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나서 교제하고 싶으시기 때문에 이 땅에 하나님이 계실 곳을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셔 주십니다. 그 계셔 주시는 것을 임재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하나님의 임재가 최초로 있었던 곳이 어디냐? 바로 에덴 동산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2장에는 성전이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그 다음 관심이 어디냐 바로 에덴동산입니다.하나님은 이 에덴 동산에 자주 오셔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이야기도 나누시고 시간을 보내니다. 창세기 2 8절에 보면 하나님을 동산에 거니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초월적인 영역에 계신 분이 에덴동산이라는 성전에 임재하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임재 하셨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단순한 동산이 아니라 에덴성전이 되는 거예요.

 

에스겔이라는 성경을 보면 에덴동산을 성전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동산, 그 가운데 성소가 있는 하나님의 성산이라 말합니다. ( 28:14) 또 에덴에서 제사장과 같이 보석이 박힌 옷을 입은아담과 같은 인물에 대해 말합니다. 이 제사장의 죄는 성소를 더럽히고 쫓겨난 거예요. 보석옷은 제사장들이 입는 에봇입니다. 아담을 제사장으로 묘사했다는 것은 아담이 있던 에덴동산이 성전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28: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성막이나 성전에 보면 등잔대가 있는데 그 등잔대가 나무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건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본뜬 거예요. 또 에덴동산으로부터 물이 흘러 나오는데 에스겔서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본 성전에서 물이 나와 가지고 소금물로 가득찬 사해바다를 회복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7: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으로 에덴동산을 지으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나서 에덴동산을 언급한 것은 에덴동산이 그만큼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에덴동산을 성전 삼으시고 여기서 아담과 하와와 교제하시며 아담과 하와의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 성전을 세상의 중심으로 두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

이 세상의 중심인 에덴은 성전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아담은 이 성전의 관리자로 하나님께 부름 받았고 관리자인 동시에 예배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아담은 이 에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오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 예배를 통해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은 창조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면서 살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아직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않았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창조세계의 원래 거룩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성전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더욱 영광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배하며 사는 건 아담에게 너무나 큰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에요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존재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에요. 우리의 존재 목적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하나님과 친해지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친함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최고의 가치와 행복을 얻을 수 있어요.

(3) 임재대신 욕망

 다음으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이 에덴 성전이 출입금지가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성전에서의 예배를 지키기 위한 장치를 하나 마련하셨습니다.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건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안다는거고 이건 재판권 내지 통치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면 선악과를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선악과를 건드리는 거예요.

 

예배는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하나님의 임재를 포기하고 자기 욕망을 선택한 사건이에요. 이 사건이 최초의 성전이라고 하는 에덴동산에서 생겼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했기 때문에 에덴이라는 성전은 사람에게 금지 구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뱀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이렇게 되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 계시는 것을 임재라고 할 수 있는데, 아담과 하와는 임재 대신 자신의 욕망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예배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 내 맘대로 살 거야!” 이렇게 되었습니다. 

 

(4) 임재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사람들

에덴 동산에서의 반역 사건이후로 인류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성전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동쪽으로 쫓겨났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내보내시고 천사들과 불 칼로 하여금 동쪽 입구를 막도록 하셨습니다. 나중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밖에서 자식을 낳는데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거예요. 그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어디로 떠나냐면동쪽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는 바벨탑 사건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날리고 하나님과 똑같아지려고 한 사건이죠. 이 바벨탑은 지은 사람들도 성경에 동방으로 이주했다고합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사람들이 자꾸 동쪽으로 떠나는 건 하나님의 임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덴에서 멀어지고, 성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랑 상관없이 자꾸 자기 욕망을 위해 사는 거예요.

(5) 임재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모습

아담이 예배자로 지음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죄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임재를 벗어나려는 거예요.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동쪽으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기 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의 욕망대로 그렇게 살고 싶은 거예요. “내 인생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임재를 추구하는게 너무 시시해요. 당장 나한테 중요한 게 너무 많아요. 이게 바로 임재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흥미롭고 짜릿하고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죄가 원하는대로 해주면 당장은 재밌고 좋고 행복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때문에 우리가 예배를 못 드린 적이 있었잖아요? 신앙생활 30 40년 하신 분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면 교회 안 나오니까 너무 편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에덴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점점 멀어지려고 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죄인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게 좋을 때도있는데 예배 안 드려도 좋은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과연 좋은 걸까요? 그렇게 사는 사람에 참된 행복이 있을까요? 형님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당장은 경쟁자가 죽으니까 당장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방랑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당장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을 때는 좋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언어가 나뉘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벗어나서 살면 당장은 편한 함을 누릴 수 있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까 그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잠시 지나면 영혼의 곤고함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당장 교회 안 나오고 예배 안 드리고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산다고 해서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 꽂히지는 않을 거예요. 오히려 더 편하고 심지어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는 행복입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데에 있습니다. 일상 가운데서도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거기에서 우리 행복이 나옵니다. 내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예배가 없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면 너무 공허하고 고통스럽게 되는 거예요.

결론

자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잠시 기도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바라셨던 것, 그게 곧 우리에게 바라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과 예배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사는 것이죠. 여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지 않았습니까? 예배가 번거롭고 귀찮고 예배 가운데 아무런 감동도 없고 우리가 이부분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시간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에덴동산이 되도록 기쁨과 행복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 무엇도 절대 나의 이 행복을 빼앗을 수 없도록 그렇게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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