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과 신실한 자들에게
에베소서 1:1-2
요즘 우리 사회는 기독교 문제만 나오면 그토록 흥분하며 반응할까요? 저는 이 시대으 교회가 작금의 사회에서 받고 있는 평가때문으로 생각합니다. 댓글들을 보면 교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고,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열매 없는 모습들을 악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강한 반감이 그런 사회반응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세상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이처럼 평가하는 이유는 교회를 향한 그들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믿지 않고 교회의 멤버가 되기를 거부하더라도, 교회가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에 대해서는 한 소리하는 사람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바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러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부르셨고,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들의 신실한 삶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되는 것과 부르심에 합당한 신실한 일군이 되는 것은 에베소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은 서론에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과, 결론에서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신실한 일군이 두기고”라는 말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전반부 1-3장까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의 구성원이 성도가 되는 교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후반부 4-6장까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신실한 일군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함께 에베소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내가 교회의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부르심에 합당한 신실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역교회로서 우주적 교회를 감당하고 있는 밀알교회가 참된 영성과 영향력을 회복하여 세상에서 조롱받는 집단이 아닌, 세상에 감동을 주고 영향을 주는 능력 있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서의 서론입니다. 서론에서는 에베소서의 저자와 수신자와 인사말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절대로 내용은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바울은 자신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과 교회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그리고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은혜와 평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에베소서의 저자: 바울(1:1a)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1:1a)"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름을 밝히면서 단지 그 이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도된 바울”입니다. 이 말은 에베소서를 읽는 사람들이 바울을 단지 존경할만한 스승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임명된 자가 쓴 글”임을 명심하고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이 성경은 단지 인간의 학문적인 경륜이나 경험적인 지식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권위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기록한 대부분의 서신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는 하나님에 의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선포하며 살았습니다. 바로 이것은 그가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는 사도가 되고 싶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잡아 가두는 것에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았고, 더구나 사도가 되고 싶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하나님이 사도로 선택하셨습니다. 결코 사도가 되고 싶지 않았던 사울을 사도로 삼으시고 바울로 변화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된 바울은 평생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기를 붙잡아 하나님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일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도, 수없이 매를 맞는 것도, 여러 번 죽을 뻔한 위험을 당한 것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정과 헌신된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가운데 내가 진정 원했던 모습으로 되어진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인생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의 계획과 목적대로 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지금의 현장 속에서 오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원치 않았던 경험들도 하게 하셨던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지금 나의 모습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결정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맞춰 살아간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3: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가운데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고 그 목적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어떤 삶에 집중하며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현장과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을 확신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부르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정에 부르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절대 가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대한 부르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절대 교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오늘도 믿음으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에베소서의 수신자(1:1b)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1:1b).”
헬라어 성경에는 정관사가 하나만 쓰였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은 두 그룹이 아니라 본래 한 그룹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제대로 번역하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할 뿐 아니라 에베소에 있는 그 성도들에게”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한 그룹이지만 두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에 있는(육적위치) 성도들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영적위치) 신실한 자들이라는 특징입니다. 에베소서 서론에서만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서 전체에서 이러한 구도로 성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처음 3장에서 성도들이 어떤 자들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다음 3장에서 신실한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지막 결론부에서도 두기고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사랑을 받은 형제이며 주 안에서 신실한 일군”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진정한 성도이면서 동시에 신실한 일군이 된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참된 성도가 될 뿐 아닐, 신실한 일군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먼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구별해 놓으신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라는 말에는 두 가지 소속의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소속된 소속의 개념이고, 둘째는 공동체에 소속된 소속의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구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속된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구별하신 교회에 소속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라고 할 때 내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고백하는 자이며, 내가 교회 공동체에 소속된 지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임을 알게 됩니다.
구별된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실이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어가 구별되고, 돈 벌고 돈 쓰는 방법이 구별되고,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쓰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이 어디에 있는 성도들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별된 삶을 보여주는 곳이 교회 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 모두에 살고 있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하늘의 시민권만 생각하면 현실을 외면하거나 벗어나려고만 할 것입니다. 땅의 시민권만 생각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망각하고 땅의 것만 추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말할 수 없는 영적인 고통도 함께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묻혀 거룩한 백성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통해 세상에서 구별된 성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에게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은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세상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두 번째 수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입니다. 이것은 신실한 사람이라는 뜻은 믿음을 지키는 사람 곧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을 뿐 아니라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제대로 응답한 자들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신실한 사람이라는 말과 별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긴 한데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는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도 말씀 앞에서 한 번 점검해봅시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인가? 이 질문에는 모두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만약 이 질문마저도 의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의심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신실한 사람인가? 본문은 이런 신실한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뿐 아니라, 신실한 자들이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아무리 신실한 삶을 살더라도 예수 안에 있지 않다면 하나님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3. 에베소서의 인사말(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엡1:2).”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말씀합니다. 은혜는 시작이고 평강은 마지막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시작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은혜 받은 자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바로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마리아가 이런 인사를 받았을 때 그녀는 결코 평안할 수 없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벗어나고 싶은 그런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으니까 그녀는 평안해졌습니다. 평안해지니까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바로 이것이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부담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은혜와 평강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은 이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고 말씀합니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육체적, 다시 말하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으로부터 오는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아버지와 ‘주’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 지를 강조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라고 부르시는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해 보세요. “주님”이라고 해 보세요. 어렸을 때 부르던 찬양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 많이 있으리라.” 함께 불러 볼까요? 이 말씀대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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