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묶는 것 ( 6:2)

 

 

한자의 사자성어에 ‘자승자박’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자기가 만든 밧줄로 스스로 묶는다는 말입니다. 원수 앞에서 자기를 자기가 묶는다면 고스란히 밥으로 원수에게 내어주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와 비슷한 성경말씀에는 잠 6: 2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신약 마16:19에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심으로 우리가 땅에서 자승자박하면 하늘에서도 그대로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의 위기에 처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며 국민들을 격려해서 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에서 패배하면 현실에서도 패배한다는 것을 루즈벨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으로 자승자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생각에서 승리하고 이겨야 승리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 생각으로 스스로를 묶는다. 

 8: 1~ 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러므로 우리는 늘 해방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해야지 나는 죄와 사망의 종으로 죄와 사망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대로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생각으로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늘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죄의 힘에서 결코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병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으로 자승자박하여 병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병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병의 노예다. 결국에는 병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생각에 자기를 묶어 놓고 말기 때문에 병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7:22) 나의 삶속에 늘 ‘나는 패배자다. 나는 실패자다.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나를 완전히 얽어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2. 자화상으로 스스로를 묶는다.

인간은 그 자화상으로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육체적인 모습을 항상 거울을 통해 봅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몰라보면 큰일이지요. 오늘도 여러분 교회 나오시기 전에 모두다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여러 번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돌아보고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얼굴을 더럽지 않은지 옷매무새가 바른지를 늘 찾아보는 것입니다. 잘못 되었으면 거울을 보고 자기를 교정하는 것입니다. 

 

1900년도 원산에서 케이트 쿠퍼(Kate Cooper)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선교사 집에 놀러온 촌부가 벽에 걸린 거울 앞에서 서서 놀라 고함을 치고 선교사님을 불렀다. “선교사님 누가 벽 속에 숨어 있어요. 저분이 누구예요?” 생전 처음 보는 자기를 몰라본 것입니다. 그 때만해도 우리 한국에 거울이 없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와서 전신을 볼 수 있는 큰 거울을 벽에 걸어 놓으니까 촌부가 그 집에 와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 까무라쳤습니다. 누가 벽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을 모르면 자기의 모습을 보고도 기절초풍을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모습은 거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인 모습도 우리가 보아서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부정적이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적인 모습이 자기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잘못 보면 패배적인 것으로 자승자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삼 1: 2에 있는 말씀대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주님이 그려주신 모습을 마음속에 늘 그려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피터 모펫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물을 청소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차라리 그대의 마음을 청소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 그대의 양떼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그대의 집을 방어하기보다는 그대의 마음 지키기를 더욱 힘쓰라. 그대의 돈을 지키기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에 더욱 힘쓰라” 청교도인 존 훼블은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사명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시인 밀턴은 “마음은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지켜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 자화상으로 자승자박하는데 자기를 죄와 세속과 마귀의 종으로 보면 죄와 마귀와 세속의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와 의와 영광을 받은 사람이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요, 치료받은 사람, 축복받은 사람, 천국 영생복락을 받은 사람으로 상상하고 바라보면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스스로를 묶는다.

인간은 믿음으로 자승자박해야 합니다. 성경 마 8:13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매우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초라한 3층 집의 지붕 밑에 사는 소녀가 폐렴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의지마저도 약해져서 나중에는 건너편 집 담장이 넝쿨을 바라보며 그 넝쿨의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절이 지나자 담장의 넝쿨이 단풍이 들어 한잎 두잎 떨어지니까 이 소년은 창문너머 바라보면서 ‘나도 저 담장의 넝쿨처럼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 담장의 넝쿨이 떨어지는 그 날에는 자기도 죽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셋집에 무명의 화가가 한사람 살았습니다. 그 화가가 이 소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이 소녀를 살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느 날 초겨울에 큰 바람이 불고 장대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니 모든 단풍든 잎사귀는 다 떨어지지요. 담장의 넝쿨에 마지막 잎새도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소녀는 바람소리를 듣고 비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담장의 넝쿨이 하나도 없이 다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나도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침이 되어서 창문을 열어 보니까 마지막 담장이 잎새 하나가 강인하게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왔는데도 바람에 날리면서도 담장이 넝쿨에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소녀가 그것을 보고 ‘야! 저 마지막 잎사귀가 저렇게 강인하게 붙어서 바람과 비를 이긴 것 보니 나도 살겠구나. 저 잎사귀가 내 생명이니 저것이 안 떨어지는 것을 보니 내가 살겠구나. 

 

그는 마음에 믿음을 돌이켜 먹고 산다는 믿음을 가지자 병을 이겼는데 그와 동시에 그 전셋집을 얻으러간 나이 많은 미술가는 폐렴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 비바람이 치는 날에 그 미술가는 담장에 넝쿨을 하나 그려 가지고서 철사 줄로 그 벽을 사다리를 놓고 타고 올라가서 그렸습니다. 비를 종일 맞았습니다. 온몸에 빗물이 다 스며들어왔습니다. 그는 감기에 걸리고 폐렴에 걸리더라도 그 소녀를 살리겠다고 마지막 담장넝쿨을 그려가지고서 철사 줄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그려서 놓은 담장이 넝쿨이 떨어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담장이 넝쿨은 떨어지지 않아서 이 소녀가 믿음을 얻어서 살았지만 이 노인은 폐렴이 걸려서 죽고 말았다는 단편소설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보십시오. 이 소녀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믿음을 가졌을 때는 죽음이 그를 붙잡고 있었으나 그가 담장이 넝쿨 하나 보고도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을 때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서 구속의 선물을 주신 예수님을 보고 믿지 못한다면 정말로 우리는 절망인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에 있습니다. 자신은 병자이고 병으로 인해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가 보는 그 병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마음은 위대한 의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았으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한 잎 잎사귀처럼 우리의 믿음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나은 것입니다. 

 

4. 입술의 말로 스스로를 묶는다.

말로써 묶이고 잡히게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살고 죽는 권세가 혀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혀의 사용을 통해서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18:20~21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얼마나 강한 말입니까?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렸다.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 ‘천사의 말을 하면 천사가 찾아오지만 악마의 말을 하면 악마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반드시 미래에 그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늘 못한다고 말하면 그 말의 그물에 걸려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습관이란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하면 습관이 되어서 그 말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말로써 자승자박합니다. 사망으로 얽히고 패배로 얽히고 질병으로 잡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3:17에는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뇌세포의 98%가 우리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혀는 몸에 적은 것이로되 온몸을 다 다스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면 온몸이 그 말에 순응하고 말을 잘못하면 온몸이 그 잘못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헬라 속담에는 “혀는 뼈 하나 없이 아주 약하고 작으나 많은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라비아에도 “네 혀가 네 목을 베지 못하게 하라. 칼은 쓸수록 더 무디어 가지만 혀는 쓸수록 더욱 날카로워진다.”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의 속담에는 “혀는 길어지면 생명이 짧아진다.”고 말했었습니다. 중국 고사에는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영국에는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인간의 언어생활에 대해 격언이나 속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두 인간의 살고 죽을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 말할 때 조심하십시오.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결국 여러분의 환경과 운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생각으로 자화상으로 믿음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자승자박합니다. 내가 나를 묶어놓고 난 다음 누구에게 탄식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을 묶거나 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화상을 통해서 묶거나 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을 묶거나 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로 여러분을 묶거나 풀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었은즉 그러므로 믿음으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선포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잘 될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믿음의 줄로 여러분을 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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