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을 높여라 ( 41:14-16)

 

 

환경이 우리의 영혼에, 정신에 미치는 %가 얼마나 될까요? 좋은 환경은 좋은 영향을 미치겠죠? 반면 나쁜 환경은 나쁜 영향을 미치겠죠? 보편적으로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 요셉은 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론 중에 환경결정론과 환경가능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는 환경에 의해서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우리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 있는 것 같습니까? 

내가 아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어떤 자세로 있었는지 성경은 정확히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셉이 곧 수염을 그 옷을 갈아 입고  이것을 보면, 요셉이 옥중에서 얼마나  미천(微賤)하게 생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수염도 깍을 수 없는 처지였다고  언제나 험한 옷을 입은 채로 지냈던 것이다.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형통해도 감옥 생활은 감옥생활이죠 이 부분은 요셉의 외형적인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술 맡은 관원장이 나가고 난 다음 2년을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앞에 선 요셉의 모습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서 어떤 신앙의 자세, 즉 어떤 내면의 모습, 영적 상태를 가지고 살았는지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물었습니다. 

 41: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러라.

바로는 요셉에게 네가 꿈을 푸는 전문가라고 하던데 그럼 어디 꿈을 풀어 보라고 말합니다. 바로가 요셉을 부르게 된 것은, 그가 어려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 어려운 때에 내가 상담하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바로, 세상의 것을 다 가지것 같은 그의 인생에도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꿈때문입니다.  41:8에는 그의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여기서 번민하다는 ~[;P'()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 뜻은 지속적으로 때리다 어떤 것을 후벼서 파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꿈이 지속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때린다는 것입니다. 심장을 때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죠. 심장을 누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 오늘 말씀으로 치유와 위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우리 중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번민이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을 알아 줄 귀한 동역자 한 사람이 있습니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난관에 빠뜨려 겸손하게 만드신 다음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 보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난관과 역경이야말로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가장 귀한 길이다. 현재 내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찾으셔야 할 때인줄 믿습니다.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바로가 꿈을 풀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뭐라고 반응합니까? 저는 답을 아는 자가 아닙니다. 그 해답은 하나님이 알려 주실 것입니다.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감옥에서 나온 요셉의 첫 번째 대화, 첫 번째 대답이 어떤 것인지 주목하라.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실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은 2년동안,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께만 고정된 눈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첫 마디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간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간증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고통의 순간, 문제의 자리에서 그들이 놓지 않았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간증할 때, 첫마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와 대화하면서 하나님만 증거하고 하나님만 강조했습니다. 계속해서 꿈을 해석하며 장차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고하되 하나님 한 분만을 강조했습니다. 요셉이 하는 말의 주어를 보세요. 항상 하나님입니다. 

 41:25, 28, 32을 보세요. 25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다. 28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32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바로의 번민한 마음 편안함, 평안을 누가 가져다 줍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의 대답입니다. 신앙으로 꿋꿋하게 살아온 하나님의 사람 요셉입니다.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지만,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로의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입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행복이 많이 있겠으나, 정말로 큰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쓰임받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누군가에게 쓰임을 받는다면 너무 기쁠 것입니다. 오늘 요셉의 삶을 보세요. 오늘 그는 단순히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감옥에서 나오는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감옥은 대기실’’stand by를 하는 귀한 훈련의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벧후 1:4 너희가 정욕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윈대한 계획이 무엇입니까?

바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이에게 흘러가게 하는 통로, 파이프로 쓰임받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베드로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 비밀을 깨닫기 전까지 그의 모습은 복이 자기에게만 머물기를 바랬던 사람이었습니다. 

 9장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은혜를 다른이와 함께 나누기보다는 거기에 초막 셋을 짓고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장 8장에서는 예수님께 이런 꾸중까지 들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신자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복이 자기에게로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죠. 이런 베드로의 신앙적 상식은 사도행전에서 더 잘 나타납니다.  10: 13-15을 보면,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을 향한 통로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44-48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베드로가 어떻게 쓰임받고 있습니까? 성령의 부어주심을 주는 통로로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정결하게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한 영을 사용하십니다. 선한목자교인들, 모두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는 귀한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고정된 눈

우리의 인생 가운데도 많은 고난이 있다. 고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고난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하나님께만 고정된 눈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그런데 고난당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죽을 고생했습니다. , 죽지 못해 삽니다 라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고난 중에 무엇을 묵상했다는 말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자신의 문제, 자기 고난을 더 묵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난 이후에 더 어려워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 생활 속에서도 썩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만 고정된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고정된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고난이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서 요셉의 믿음은 정금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풀려나 바로 앞에 섰을 때 뿐만 아닙니다. 그 뒤 그가 여러 사람과 나눈 대화 가운데 분노에 찬 말이 있습니까? 한마디로 없습니다. 원망의 말이 있습니까? 보복의 말이 있습니까?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나는 이 점이 정말로 신기합니다. 

속된 말로 우리는 흔히 감옥에 들어가서 썩는다고 말합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눈이 하나님께만 고정된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는가? 혹시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고난은 무서운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썩지 않은 뿐만 아니라 십가자의 은혜, 하나님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승리하십시다. 

요셉을 보라. 그가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그는 바로의 물음에 일목요연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저를 크게 사용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내일 사용하겠노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크게 당황한다. 하나님, 이렇게 일찍 사용하실 줄 몰랐습니다. 잠깐만요. 사실 아직 준비가 덜 됐습니다

준비도 안 해놓고 무슨 기도를 하는가? 우리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중에는 이런 신앙인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미소를 잃지 말아라. 요셉과 같이 기회가 찾아왔을 때 대안 제시까지 철저히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인생,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매진하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지금의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인생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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