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스 : 사람 ( 5:1-2)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믿습니다. 무엇으로 믿습니까? 성령충만으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까? 

 5:1-2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우리는 우리를 가리켜서 모두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분명히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롬3:11-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처음에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한 그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의 타락 이후, 외형으로는 사람됨을 그래도 갖추고 있지만 인간성은 상실해 버렸습니다. 욕을 할 때 흔히 사람 같지 않다. 짐승 같다.거나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현실은 우리의 곳곳에서 자주 듣습니다. 굳이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접한다 이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범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참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9:26은 안디옥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용어는 교회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 밖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사람, 정말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만나고 보니 그들은 참사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진짜 사람같은 사람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도 선한목자교인들은 다르다는 평을 외부로부터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죠 ^^

하나님께서 제일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때는 이미 이 세상 만물이 다 지어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재료가 없었습니다. 단단하기로 말하면 강철이 더 단단하고, 불변하기를 원한다면 금이 더 불변하고, 값으로 따진다면 다이아몬드가 훨씬 더 비쌉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어떤 재료도 사용치 아니하시고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흙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에노스는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보통 명사로 쓰이는 히브리말이기도 합니다. 히브리 사전에는 vAna/라는 단어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적혀 있습니다. 에노스 이전까지 인간은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니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은 매일 매일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생명의 근원이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았지만 실은 매일 매일 영원한 생명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한자에 죽을 사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서 보면, 제일 위에 한 일자가 있고 그 밑에 저녁 석자와 칼을 가리키는 비자가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이란 어느 날 저녁에 느닷없이 날아오는 비수와 같은 것입니다. 한낮에 비수가 날아온다면 피할 여유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밤에는 동서남북 어디에서 비수가 날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때와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늙었다고 빨리 죽는 것이 아니고 젋다고 늦게 죽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죽음이 비수처럼 내게 꽂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매일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참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망각한다면, 그 사람의 매일 매일은 욕망으로 오염되고 말 것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선물인 것입니다.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은 aivw,nioj zwh, 입니다. 아이오노이스는 끝도 시작도 없는 시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언제부터 계셨다고 성경은 말합니까? 바로 영원입니다. 여기서 영원한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생명이라는 단어는 za,w라는 단어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한 바로 그 생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죽음 절망입니다. 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another life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인생은 헛되다는 표현이 수차례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히브리어로 헛되다 하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 즉 호흡을 의미하는 헤벨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라는 단어에서 헛되다는 말이 파생되었겠습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제가 하고 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다시 들이쉽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내뿜었던 숨을 들이마시지 못하는 순간, 저는 죽은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  장의사  시장바닥  학교 (환경의 중요성) / 처음부터 학교로 갈 것이지 왜 장의사나 시장 옆으로 갔겠습니까? 인생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교육  죽음을 알아야 생존의 현장에서 바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교육 생과 사를 분명히 아는 자만 그 속에 참된 교육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비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사람됨을 위해서, 인간은 죽는 존재 (에노스)라는 사실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아이들이 일평생 중에 귀한 한 부분을 탕진함 없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으십니까? 뭐가 그리도 섭섭하십니까? 무슨 생각들이 그리도 많으십니까? 아직도 그 문제를 붙들고 계십니까? 서로 사랑하십시다. 

흙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체의 구조를 보십시오. 모든 우리 인체의 구조는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왼손으로는 가려운 왼쪽 등을 긁을 수 없습니다. 오른 손이 긁어 주어야 합니다. 두 발이 저를 지탱해 주어야 합니다.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입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음식을 씹어 준 그 입은 음식의 영양가를 독차지 않고, 즉 맛만 보지 않고 위로 보내고, 위는 그것을 모든 지체에 운반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모든 인체는 이처럼 봉사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성을 망각하면 자기만 살려고 하고 다른 지체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흙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흙은 어떤 경우에도 심는대로 납니다. 팥을 심어서 콩이 아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콩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우리 중에는 없지요. 

사랑합시다. ^^ 생명있을 동안에요. 잊지 마세요. 우리는 에노스입니다. 에노스, 에노스입니다. 사랑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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