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업이 되어주시다(21:1-45)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후 각 지파별 땅분배를 끝낸후 레위지파의 기업에 관한 말씀입니다. 4-7절이 아론, 게르손, 고핫, 므라리 가문에게 성읍을 주었고, 8절이하가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레위지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는 대신 각 지파별로 성읍을 구별하여 총 48개 성읍을 받게 합니다. 여호수아 13;32,33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고 말씀합니다. 땅분배 대신 48개 성읍을, 하나님이 기업이 되셨다는 말에 담겨 있는 축복과 사명이 있습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의의를 실현하는 공동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왕으로 선포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열방을 향해서는 축복의 통로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이들이 필요한데 이들이 곧 레위지파입니다. 각 지파 사이 사이에 레위지파를 머물게 한 이유입니다. 그런 그들을 12지파가 생활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선포하며 가르치도록 하는 그 삶 자체가 하나님이 기업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아름답고 신령한 관계가 맺어진 것을 뜻합니다.

 

레위지파는 성읍과 그들의 짐승들이 먹을 목초지만 분배받고 다른 땅은 분배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18:20, 18:7).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배워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땅이 없는 레위지파가 각 지파들 속에 흩어져서 살게 하심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것은 땅을 믿고 살 것이라 아니라 그 땅을 선물로 주시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땅의 소산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줌으로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제도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한 지파가 레위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3:12~13절입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지파가 장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란 항상 희생하는 자가 장자가 됩니다. 장자의 희생으로 나머지 형제들이 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장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장자의 희생을 레위지파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지상에 땅이 없는 자가 땅이 있는 자들을 축복합니다. 이것은 장차 자신의 희생으로 자기 백성들의 맏아들이 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분이셨지만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나라를 얻게 하시는 맏아들로서 희생을 하신 분이십니다(8:29, 1:1~8).

 

43~45. 레위지파가 12지파 중에서 성읍을 받게 되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내용들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맹세하신 씨와 땅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12:1~2). 그 결과로 안식이 주어집니다. 안식이 주어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심으로 되는 일입니다(15:17~18). 이렇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도 모형입니다.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원리는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일본에서 오신 분들이 이 말씀하나 때문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성도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땅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봄으로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레위지파만을 위한 사명과 축복의 말씀이 아닙니다. 2:9,10절은 성도를 향해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이 땅의 구석구석에 거주하게 하시고 보내신 이유 역시 하나님을 왕으로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의의를 실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사명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이 마치 장님이 문고리를 잡듯 불확실한 일이었지만 저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마침내 그 결과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것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증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사는 삶이 될 때에 우리는 많은 위대한 일들을 보거나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예레미야 33;1-3절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분께 부르짖으면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고야 마시는 신실하심 앞에서, 우리 모두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시고, 보내시고 부르신 자리에서 사명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친히 기업되어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것이 결론이고 이스라엘백성들의 가나안 정착의 결론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성경 전체의 결론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고 주님의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응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미리 사람들과 약속하시고 또 그 약속을 지키려고 모든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일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뜬금없이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순서를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그대로를 이루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과 신약이라고 하는 언약, 맹세, 말씀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것은 반드시 남김없이 응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또 다른 기쁨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응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고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응하신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모든 삶이 말씀이 없음을 살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고 우리들의 일상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것들을 우리가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끌려가게 하여 주시고 말씀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여 주시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그 안식이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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