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땅에만 관심을 갖느냐 [ 17]

 

본 장은 에브라임 지파에 이어 므낫세 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므낫세 지파 중에서 마길 자손을 중심으로 한 반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에 기업을 얻었으므로 요단 서편은 아비에셀을 중심으로 남은 반 지파에게 배분되었다(1-6). 므낫세 반 지파의 요단 서쪽 경계는 에브라임 지파의 윗쪽부터 므깃도 평야까지로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남쪽 경계와 맛물려 있었다(7-13). 이때 요셉 자손들은 자신들에게 배분된 기업이 너무 적다고 여호수아에게 불만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직접 남은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고 스스로 영토를 확장 시키라고 권고하였다(14-18).

 

한 가정에 불과했던 야곱의 아들들이 한 민족을 누리게 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신자를 통해 이루실 일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런 요셉을 대신하여 아들 둘이 지파를 형성하고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요셉 자손들이 와서 몫이 부족하니 땅을 더 달라고 합니다. 아직 다른 남은 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이미 받은 지파가 더 달라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습니다. 요셉 가문의 사람입니다. 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의 친인척들인 것입니다. 형들, 할아버지입니다. 정복 전쟁때에 누구보다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전우 동지들인 가족, 일가친척들이 더 큰 몫을 달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의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처방이 놀랍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15) 가문, 형제, 가문의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누구보다 지지해주고 사랑하며 격려해주었을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요구 앞에서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믿음으로 결단을 내립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늘 자기 것만 보입니다. 늘 자기의 부족만 보이나 봅니다. 많이 가졌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사람의 만족은 보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헛되도다”,  6: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4: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주께서 택하시고(1) 가까이 오게 하사(2) 주의 뜰에 살게 하신(3)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더 형통하리로다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할렐루야.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다 ~~”

 

1.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신자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1)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2)    신자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3)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왜 땅에만 관심이 있는가? 

4)    그 땅에서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5)    어떤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이것이 신자들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본질이 무엇인지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한다. 므낫세를 비롯하여 지파들은 그런 목적을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명은 없고 비교만 있다. 사명은 잃어 버리고 땅의 양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도 만족함이 없는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은 지위나 권력, 명예, 소유를 주신 것은 사명 때문입니다. 영혼을 위해, 한 시대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도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실 때 그냥 보내시지 않으시고 사명 감당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로지 관심이 땅의 넓이와 토질에 관심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뭘 하기를 원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것이 아픔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교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동거 (신자와 불신자, 기독교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 가치관의 충돌)는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에 매우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과 싸우지 않으면,  17:12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처럼,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버리는 것입니다. ‘거하다라고 하는 이 단어는 야솨브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1:1에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그 때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이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가 있습니다. 여기에 거류하다는 단어는 구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구르는 잠시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 있을 생각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만 잠시 머물려고 하는 상태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구르라는 단어가 아니라, ‘야솨브가 쓰였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작정을 하고 그곳에 눌러 앉겠다는 의지를 굳힌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무서운 영적 전쟁입니까?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생각을 물리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을 다 정복해 버립니다.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런데 나중에 므낫세 지파를 보시기 바랍니다.  17:13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그 결과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입니다. 정복하지 않는 땅 속에 므깃도’(계시록에서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여호수아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평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사명대로 살다가 간 것입니다.  1: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1:8절의 삶의 원리는 여호수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그리고 모든 지파, 오늘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 좋은 대로 타협하고 말씀 순종의 길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 인생의 큰 올무가 되고 맙니다. 

 

2.    땅 하나를 놓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순종하려고 하는 슬로브핫의 신앙

앞에”(리프네)라는 단어를 개역 성경에서는 단 한 번밖에 번역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엘르아살, 여호수아, 그리고 방백들을 언급할 때마다 ‘~ 앞에라는 뜻을 가진 리프네가 각각 나와 모두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제시할 때에 지도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거나 제외됨이 없이 자신들의 상황과 의사를 세세히 전달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리프네 얼굴 앞에라고 번역될 수 있는 것과, 더욱이 이 단어가 3번이나 반복 사용된 사실을 통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처한 자신들의 문제를 알리는 데 힘을 썼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청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간절하게 간청하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인가?  17:4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이를 직역하면, ‘여호와의 입을 따라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민 27:6-11절의 내용입니다. ‘아들이 없으면 딸들에게 기업을 돌리라 슬로보핫의 딸들은 자신들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기업 분배시에 그 말씀에 근거해서 본 절에서 제자상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4:4을 보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누구라고 하냐면, 바로 신자들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제일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할 때도,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산지를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각 지파별로 땅을 정복해서 이루어야 할 공통적인 사명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첫 마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 왔느니라’, ‘ 삶의 방향을 돌려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 각자의 삶의 영역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명은 같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