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 ( 14)

 

 

그리스도인 삶에서 멀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이원론(dualism)입니다. 이원론이란 정신이나 영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물질이나 육체는 저급한 신이 지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사상입니다. 이원론은 그리스 신화에 근거한 사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철저하게 일원론에 근거합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에도 하나님이 지으신 흙으로 만드신 육체에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셔서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육체라는 물질로 된 부분과 정신과 영혼이라는 영으로 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하나님이시지, 일부분만의 하나님은 아니신 것입니다.

 

이렇게 흙이라는 물질과 하나님의 호흡이라는 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이 둘 모두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 흙에 의지해서 산다는 것은 흙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땅 위에 집을 짓고 살며,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땅에 붙어사는 사람은 그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노동이라는 신성한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복 주심이 필수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간에 모두 하나님의 이러한 복 주심에 근거하여 살고 있습니다. 탄생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선인이나 악인 햇빛과 비와 공기와 필요한 모든 것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두에게 주시는 은혜를 일반은혜 혹은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런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삽니다. 그래서 성경은 철저하게 하나님, , 사람이라는 관계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하나님 숨을 불어 넣으셔서 사람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신 후, 그에게 에덴이라는 주거 공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위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옆으로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또 동물들과 교제하며, 아래로는 과일과 채소와 씨앗을 먹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죄를 범하여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인간의 삶은 이 기본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가 읽고 있는 여호수아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 백성과 그들에게 주어지는 땅이라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쿠웨이트 혹은 이라크 지역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 백성을 삼으실 때부터 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그 땅을 그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였던 야곱과 그 자녀들이 이집트에서 400여 년 동안 거주한 후, 출애굽을 경험하고, 광야에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은 후, 이제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거주하여 가나안 원주민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이야기 중에 한 부분으로서 특별히 갈렙이라는 신앙 용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갈렙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을 찾아 적용하고자 합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여분네의 아들로 가나안 12 정탐꾼 중 한 사람입니다. 갈렙은 애굽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의 조상은 그니스이며 ( 14: 6), 그 조상은 에돔 족속이었습니다. 갈렙이 에돔 족속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갈렙을 유다 지파로(13: 6) 표기된 것은, 갈렙의 선조가 개종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어,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으로, 유다 지파로 편입되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방인들이 귀화하여 유대인이 된 사람들은 호밥, 라합, , 헤벨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혈통으로 이어진 가계가 아니라, 신앙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한 혈통적인 유대인 보다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 12명의 정탐꾼 중 한 사람으로 가나안땅 정탐에 참예하게 되었습니다. 갈렙은 40세로 약속의 땅, 헤브론을 정탐 후 여호수아와 함께 매우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45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정복했고, 그리고 차근차근 주변 성을 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진격하기 쉬운 지형, 정복하기 쉬운 성읍들은 이제 거의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나안 원주민들과 싸워 정착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전쟁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싯점에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왔습니다. "내 나이 85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45년 동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매우 사랑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1.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헌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 본문의 갈렙의 나이는 85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복의 위대한 업무를 종료하는 이 싯점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민 14:24에서 갈렙의 성품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He has followed me fully.” “온전한 마음은 일관성이 있는 마음입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시간적으로 충분함, 변치 아니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40세때나 45년이 지난 지금 85세때나 주님을 향한 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갈렙의 헌신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변질되지 아니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습니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갈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되45년 전이나 지금까지 변치 아니하고 사랑했습니다. 일관성이 있습니다. 일관성있게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믿음실천이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살아나갑니다.  상황보다 하나님 말씀 (시선 변화)

 

열두 명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온 열 명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굉장한 거인들이며, 그들 앞에서 우리는 마치 메뚜기 같고, 그들의 성곽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쌓여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어? 우리 힘으로는 안 돼." It is impossible.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아니야. 그 성이 굉장히 높고 튼튼하지만, 게다가 백성들마저 크고 장대하지만,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그것은 우리의 땅이야. 올라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시고,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갈렙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함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했습니다. 갈렙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제거시켜 주었습니다.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힘을 주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 시켰습니다. 우리의 긍정은 인간의 긍정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크리스챤의 삶의 원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만 살지 아니합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머리로 이해되지 아니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열 몇 시간 만에 인천에 도착하는데요, 그런데 여객기가 열 몇 시간 동안 날면서 지정된 항로대로 나는 경우는 전체 10%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항로를 벗어난다고 합니다. 본래 항로를 벗어났다가 제자리에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또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항로를 벗어날 때마다 관제탑에서 수정하라는 경고를 보냅니다. 조종사들은 지상의 관제탑의 경고에 순종해야 성공적으로 비행기를 운행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궤도에서 벗어나고, 실패하고, 주저 앉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궤도를 수정하여 믿음으로 행해를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삶의 항로를 항상 수정해야합니다.

 

누가 좋은 성도인가요? 말씀으로 자기의 인생의 항로를 항상 수정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3:3-4절 말씀에는,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일입니다.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일입니다. 

 

3.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려운 일에 앞장서서 자원하는 삶을 살아나갑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11)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곳 산지는 전쟁하기에 불리하고, 적들의 든든한 요새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낙 자손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낙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에 비하여 체구가 큽니다.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0 정탐꾼은 자기들과 아낙 자손들과 비교하면  메뚜기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낙 자손들은 체격이 매우 거대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헤브론은  아낙 자손의 총 본부입니다. 이렇게 큰 체격을 가진  장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그것도 갈렙의 나이가 85세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요구합니다. “헤브론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가서 싸우겠습니다.” 

 

갈렙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전쟁을 앞두고 자기가 선두에 나겠다고 합니다. 어려운 일을 자원하여 자기가 하겠다고 앞장서고 있습니다. 쉽고, 좋은 땅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험하고, 별로 좋지 아니한 산지는 자기가 개척하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귀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Kiriath Arba)였다는 것입니다.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르바는 그 땅 주민이었던 아낙 족속(Anakites) 중 가장 키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인이었는데, 거인 중에서 또 거인이 바로 아르바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읍이름은 “아르바의 성읍”이었습니다. 바로 이 아낙 자손에 겁에 질려서 열 명 정탐꾼은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그 아낙 자손들이 자기들을 보아도 역시 메뚜기라고 보았을 것이라고 했던 그 아낙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달랐습니다. 갈렙은 오히려 그들이 자기의 밥, 자기의 먹이가 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열 명 정탐꾼과 여호수아, 갈렙 두 명이 달랐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 열두 명 모두 현상을 보는 눈은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는 눈은 달랐습니다. 현상은 사람이 보는 눈이요, 실상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가지는 눈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눈입니다. 그래서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갈렙은 자신이 45년 전에 했던 말을 이제 바로 그 아낙 자손을 물리침으로 그 실상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어서 기억하고 있을 수 있지만, 헤브론에는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아브라함, 리브가, 레아, 야곱을 장례한 막벨라 굴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만약에 갈렙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그들 조상이 잠들어 있는 무덤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갈렙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여호수아 14장은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Then the land had rest from war)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렙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고, 그의 노구를 이끌고 나아가 그의 발로 밟았을 때, 그 모든 전쟁의 마지막을 임무를 다하였던 것입니다. “헤브론이 구속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넓은 가나안 땅에서 자기 소유로 산 것은 무덤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막벨라 굴( 23) 밖에 없었다.  그 굴은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용도 이외에 달리 사용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요 달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터전이 되지도 못했다. 그곳은 산 사람을 위한 땅이 아니라 오로지 죽은 사람을 묻는 무덤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산 그 굴은 과연 죽은 사람들을 장사 지내는 무덤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이 값을 치르고 산 막벨라 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덤이 된 그 굴을 구속사적 의미 가운데서 생각해야만 한다.

 

이스라엘 조상의 무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의 혜브론에 있었으므로 그 땅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향이 되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해 간 뒤에도 혜브론에 있는 조상들의 무덤으로 인해 가나안 땅은 그들이 돌아가야 할 본향으로 인식되었다. 몸은 애굽에 있었지만 그들은 가나안을 동경하며 그곳을 향해 살았다.

 

그 무덤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던 사람이 야곱이었다. 따라서 야곱은 생전에 자기가 죽으면 열조의 무덤이 있는 가나안의 혜브론 땅에 묻어주도록 유언했다. 그의 살아있는 몸은 비록 애굽에 있을지라도 그가 죽어 시신이 되었을 때 가나안 땅에 묻히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유언은 개인적인 바람을 담고 있는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애굽에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될 이스라엘 자손들을 염두에 둔 유언이었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햇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땅 마므레 앞막벨라밭에 있는것이라 아브라함이 햇사람에 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49:29-31).

 

야곱은 자기가 죽은 후 묻히게 될 열조들이 묻혀 있는 무덤에 대해 유언했다. 조부모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묻혀있고,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가 묻혀있는 그 굴에 자신의 시선을 장사하도록 유언했다. 그리고 야곱은 자기의 아내 레아를 그곳에 장사했음을 상기시켰다. 

 

야곱이 죽었을 때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랐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의 시신을 그들의 열조가 묻혀있던 가나안 땅 혜브론에 장사지냈다. 물론 요셉은 단순히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주었다는 의미보다 그 역시 그에 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야곱의 유언과 함께 이스라엘의 장자 요셉이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혜브론에 장사지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을 통해 애굽 땅이 영원토록 뿌리내려 살 곳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들은 애굽에 살았지만 조상 야곱이 헤브론에 되돌아가 묻히는 것을 보면서 처음부터 가나안이 그들의 본향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은가!

 

야곱이 헤브론에 장사되는 사건은 나중 요셉이 죽어 그의 유골이 애굽에 묻히는 것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닌다. 가나안땅 헤브론에 있는 열조의 무덤과 애굽 땅에 묻혀있는 요셉의 무덤은 의미상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까지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었다.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전쟁이 그치는 날이 언제인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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