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하고 싶어요 ( 6:22-27)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혹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고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본문 29절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자라고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스스로 누군가를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인간이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정의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잘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잘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우리가 천국에 가면 뭐하고 산다고 합니까? 4:9-10 "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세세토록 어린 양에게만 영광 돌린다" 하지요. 면류관을 어린 양에게 던지고, 어린 양에게만 영광 돌린다는 말은  주체는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어린 양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이란? 예수님은 주인이고 우리 예수님의 종으로 살게 되는 입니다. 그럼 정상적으로보면  땅에서 예수님 종으로 사는 것이 천국에서 사는 것과 같아 집니다. 이러면  땅에서 천국이란? 장소적 개념만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이라는 주권 개념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 가는 것이  천국에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너희 안에 있으니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이는 장소적 천국으로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천국 백성이냐 아니냐는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법이냐? 

 땅에서 천국에서  사람은 장차 천국으로 가고,  땅에서 지옥에서  사람은 장차 지옥으로 갑니다. 성경이 말하는 땅에 천국은 환경적 개념이 아니고 존재론적 개념입니다. 존재론적이란? 영역을 말합니다. 아담 안이냐! 예수님 안이냐! 라는 영역말입니다. 아담 안은 지옥이고, 예수님 안은 천국입니다. 아담 안은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지옥입니다. 반대로 예수님 안은 아무리 힘들어도 천국입니다.

신앙 생활이란? 주체의 싸움입니다. 내가 주인이냐? 예수님이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면 예수님은  종이고, 예수님이 주인이면 내가 예수님 종이 됩니다. 우리 어떤 존재인지 볼까요?  1:1 예수 그리스도의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둘로스 투 예수 그리스투' 소유격으로 둘로스는 예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필요에 의해서 라는뜻입니다. 예수님의 필요란? 복음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종인 겁니다. 예수님의복음을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 입니다. 복음이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죄사함 받는다는 소식을 말합니다. 우리 살아 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위해서 입니다.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위하여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고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하라고불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 생활이 아주 간단하게 정리가 되지요.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른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거케 하려고 불렀다고 합니다.

종국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적 기쁨까지도  빼앗깁니다. 그리곤 철저하게 예수님 종으로 살아 가게 만듭니다. 이게 예수를 믿는 다는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현실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감상주의나 현실의 문제해결이나 복을 받는 정도로 생각하면 시험들고 실족해요.

이건 마치 구약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사십  동안 만나로 먹인 것과 같아요. 이스라엘은 광야 사십  동안 자기들이 농사지어서 먹고 살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물을 주셨어요.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이유는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자기들이 좋아하는 애굽 음식을  주느냐고 원망한 겁니다. 음식을 가지고 원망하였다는 말은 ? 출애굽을 시켰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주려고 출애굽 시키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출애굽 시켰어요.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음식을 가지고 타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엔 관심 없고 오로지 자기 입을 즐겁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육신을 편하게  달라고했어요. 이건 종의 삶이 아니라 주인의 삶입니다.

? 하나님께서 구약에선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셨고, 신약에선 성도를 부르셨습니까? ? 불러 주셨는지를 모르면 구약 이스라엘처럼 육신을 편하게  달라고 원망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가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약 이스라엘을 통하여서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사는 것은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떡을  먹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상태-바울은 그래서 구원을 하나님과 화목이라고 했다-때문에 죽는 겁니다. 인간들은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  때문이라고 말하십니다.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먹고 마시는 것이 해결 되었다 하여도 지옥입니다. 그러니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은 떡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를 쌓아도  것이란 것을 어리석은 부자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12:15-21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가로되 내가 이렇게하리라  곡간을 헐고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내가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쓸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사람의 생명은 물질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곡간에 쌓아 일이 급선무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는 [1] 급선무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하나님과의 화목은 예수님의 피를 믿는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을 믿는 것이  영생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땅에서  사는 것이 복받은 증거라고 하는 말은 복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을 주면예수  믿겠다고 하는 것도 전부 사기이고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좋은 환경 준다고 예수가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환경과 상관 없어요. 예수는 환경과 상관 없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환경 때문에 울고 웃고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예수님 말씀은 육적으로 들으면 들을  없어요.  궤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하고 과대 망상증 환자라고 하지요.

구원이란? 어딘 가에 갇혀 있는 것을 끄집어 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구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 망했습니까? 먹는 때문이지요. 먹고 사는  투정 하다가 하나님께 혼났잖아요. 먹고 사는  때문에 실패했잖아요. 그럼 구약 이스라엘은 어디에 갇혀 있었습니까? 먹고 사는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갇혀 있었지요. 그러니 틈만 나면 먹고사는 일로 하나님께 원망했지요.

오늘 본문이 뭐라 합니까?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구하라는 말이지요. 썩을 양식은 오병이어 같은 떡이고, 영생하는 양식은 예수님 살과 피입니다. 암튼 예수님은 지금  가지 양식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썩을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고 합니다. 썩을 양식을 먹으면 글자 그대로 썩게 되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먹으면 영생하게 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느 양식을 택하겠습니까? 당연히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택하겠지요. 맞아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택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막상 시험지를 주면 전부 썩을 양식에다가  동그라미를 칩니다.

? 그러냐 하면 썩을 양식은 영생하는 것처럼 보이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은 썩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썩을 양식은 육신을 이롭게 하는데,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은 육신을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썩을 양식은 떡인데, 영생하는 양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으라고 해야 하는데 예수님 피를 믿으라고 하니 귀에 들어 오겠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떡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떡을 위해서 신을 찾고 떡을 위해서  흘리고, 떡을 위해서 전쟁을  왔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떡은 양보  수가 없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굶주린 자들의 배를 불리게 해주자 군중들은 스스로가 예수의 종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이는 예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예수를 모시고 살면 먹고 사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생하는 양식이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밥은 썩은 양식이고,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은 영생하는 양식이란 말입니다.밥은 먹어도 죽지만, 예수님 피를 믿으면 삽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는 말씀은  밥을 줄까! 죄사함을줄까! 입니다. 밥이 필요하냐? 죄사함이 필요하냐? 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라고 비아냥 거립니다.  맞습니다. 예수 믿어 봐야 밥도 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습니다. 죄사함 받으면 죽고 사는 문제로부터 해방을 받습니다. 죽는다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사람에게 있어 먹고 사는 일보다   일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문제는 예수님 살과 피를 먹어야해결이 됩니다. 죽음에 좇기는 죄인에겐 죄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먹고 사는 일보다도  급합니다. 먹고 살아도 죽음을 이기지 못하면  것입니다. 떡이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죄사함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시면 비록 떡이 없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감사하고 사십시오.



[1]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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