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없는 긍지 ( 2:17-3:8)

 

사람들은 각자 한 가지 이상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 긍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당한 긍지는 우리 삶에 큰 유익을 줍니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소속감을 심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민족 가운데 정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유대인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다. 세계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이스라엘이 있다.

 

그들은 이런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깔보았고 예수님 당시에 이방인들을 ‘개’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이방들을 존재케 하셨는가? 지옥의 땔감을 위해 준비하셨다”라는 랍비의 글까지 읽을 정도입니다. 

 

정수리만을 겨우 가려지는 ‘키파’라는 빵모자를 쓰고 다니는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신분 표시로, 종교적인 골수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이것을 쓰고 다닙니다. 

 

 2:17에는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첫 번째 자랑거리가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백성입니다.  3:2에서 유대인의 유익에 대하여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밝힙니다. 

 

유대인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만 계시해 주셨고, 유대인들에게만 하나님의 뜻을 증거할 수 있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기 때문에 분명히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2:18에서는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라는 두 번째 자부심의 근거가 제시됩니다.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으로 교훈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는 것입니다. 믿는 가정에서 성경말씀으로 양육 받는 사람만큼 복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은 사람의 신념 가운데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영감이 샘솟듯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감을 받기 때문에 항상 말씀에 의지하여 상상하고 사고하며, 말씀에 의지하여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위대한 능력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현상을 보기에 바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며 사는 이는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말씀을 받고 자부심을 느끼던 그들에게 롬 2:19-20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의 문제가 무엇인가?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자신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를 ‘의인을 만드는 확증’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예수를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의 문제점과 상통합니다. 

 

어떤 분을 만나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물으면, “우리 아버지가 장로님, 어머니가 권사님이십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면, “저 유아세례교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또 다시 묻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세요?”하고 물으면, 결국은 “안 믿는다." 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답하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 번 물어보면, 어떤 답이 나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는데요. 집사인데요. 권사인데요. 장로인데요. 그러니까 “예수 믿으세요?

 

지금 우리는 엉뚱한 것을 붙들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그 십자가를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타이틀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최고의 긍지는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가지고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한마디로, 혈통을 믿지 말고, 진정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 자신이 엉뚱한 것을 붙들고 헛된 확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세요. 태중에서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을 흔히들 ‘모태신앙’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엄밀히 말하면 ‘모태신앙’이라기보다는 ‘모태출석’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믿음이나 조상의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기 전에는 어떤 사람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증거합니다. 

 

다만 이 믿음의 유산을 올바로 이어간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자신이자 긍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라고 바울은 유대인들을 날카롭게 질타합니다. 

 

“너희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인정한다. 맞다. 너희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고 말씀을 알고 배웠다. 너희가 실로 소경의 인도자요, 어두움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임을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너희는 그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기만 하고 왜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지 않느냐?

 

 2:21은 유대인의 ‘외식’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도둑질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유대인들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을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유대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으로 지켰을 뿐입니다. 유대인들이 대표적이니 도둑들이었다는 혐의는 어떻게 받게 되었는가? 지나온 역사에서 유대인들만큼 고리대금업자가 많았던 민족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고리대금업으로, 요즘 같으면 달러이자 받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한 예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 상인’에도 샤일록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사채업자로 가난한 사람의 약점을 들춰 돈을 뜯어내는 악독한 유대인입니다. 

 

 2:22는 또 무엇을 고발합니까? 우상숭배를 막겠다는 유대인들이 우상숭배에 필요한 물품을 도둑질하고, 또 그것을 만들어 팔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이중성’입니다. 지금도 미국의 총포상의 대다수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하는 그들이 폭력의 두고를 독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모습인가?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아는 대로 순종하지 않고 그대로 살지도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성경은 ‘안다’는 의인 의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아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드느니라” 

 

 ‘앎’과 ‘삶’은 항상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앎 > , ‘앎 < , ‘앎 = , ‘앎따로, 삶따로,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며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과 귀신의 고백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능력을 알면서도 순종치 않는 모습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귀신의 수준인 것입니다. 귀신도 여러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믿음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능력으로 나타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겉치레만 요란한 헛된 긍지를 버리십시오. 연륜이나 유산, 지식은 능력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다만 능력을 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를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순종이 있는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모태출석의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집사의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리더의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훈련 경력의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타이틀의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신자의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성경책을 읽는 긍지를 가집시다. 순종이 있는 삶에 만족하십시다. 순종이 있는 앎을 자랑하십시다. 순종이 있는 전도인이 되십시다. 순종이 있는 순장이 되십시다. 순종이 있는 선한목자교인들이 되십시다. 

무엇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제자이십니까? 후안까를로스의“제자입니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뒤의 삶이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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