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서 믿음으로(From Faith to Faith) ( 1:17)

 

 

두 명의 그리스도인이 만나서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믿음으로 사는 삶이지! 그 대답을 듣자마자 또 물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 거지, 그거야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지!, 그게 어떤 삶인데, 글쎄 혹시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지는 않는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믿음으로 진정 살고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인지에 대한 평가도 믿음으로 구별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감입니다. 로마서 14장을 보면,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차별해서 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롬 1:17절의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2-4에는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 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이 백성은 너무도 나를 모른다고 하나님이 탄식하시며 그들의 범죄, 부패, 행악이 다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호세아도 내 백성이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고 하면서 피를 토하듯 하나님을 알자고 했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며 책망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22-23). 이샤야 말씀처럼, 주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대로 된 믿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믿음대로 살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우리의 믿음생활, 신앙생화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믿음이라는 것임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인간의 깨달음이나 인간의 선행이나 고행 또 어떤 목표에 도달하도록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인간 편에서 그 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14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살전 3:7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벧전 1:5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고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이처럼 중요한 믿음이 우리에게서 생성되는 것이냐? 그리고 믿음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을 해서 믿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시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성경구절을 보면 믿음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고 내 스스로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성경구절은 내가 믿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체 충돌이 있는 것과 같은 믿음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17절 말씀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라고 했는데 여기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말에서 믿음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편의상 앞의 믿음으로에서의 믿음 A라고 하고 뒤의 것을 B라고 칭하겠습니다. (ek: causle --> eis: result, direction) --> (하나님의 은혜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A라는 이 믿음은 의인이 되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이 믿음은 A라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의 믿음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이나 선을 행함으로 우리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라는 말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안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러니까 이 믿음은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자녀 이삭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낳았습니까? 하나님의 선물로 낳았습니까?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백 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이것이 정답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비웃고, 사라도 비웃어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믿건 안 믿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자에게는 그 믿음을 그냥 집어 넣습니다.  17: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일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믿고 안 믿고 상관이 없어요. 성경 자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읽으라고 준 책이거든요. 아브라함과 사라나, 우리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를 못합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우리에게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이동해 볼까요? 

 

 18:10-15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네가 웃었느니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심지어 웃어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요. 우리 역시도 어떻습니까? 아무리 안 믿고 싶어도요 믿어집니다. 이 선물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이것을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B라는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믿음, 즉 구원 받은 이후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든 형태를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A라는 믿음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고, B라는 믿음은 믿음의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삶 즉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낳았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입니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떠나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란에서 머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십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그것이 믿음생활입니다.  7:2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이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떠나는 그 삶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자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믿음으로 살지 않아, 밧세바와 동침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꿈에 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넬료의 집에 갔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한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 것(물 위를 걸어서 제자의 택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26장에 흉년이 듭니다. 이삭이 애굽으로 가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12, 이삭이 그 땅에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애굽으로 안 가서 이삭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의 자손, 이삭입니다. ek --> eis (move에 강조, 이동성,  --> 예수, 애굽 --> 가나안,  --> 천국), 지옥이 무엇인가? 땅에 것으로 묶여 있는 삶이 지옥이다.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 중에는 지옥의 삶을 사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나오미의 삶, 솔로몬의 삶(믿음--> 우상숭배), 요나의 삶..--> 하나님의 열심과 신실하심이 보이십니까? 

 

그러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창조, 예정, 섭리, 택정, 부르심..등 모든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삭을 창조, 예정, 섭리, 부르심, 찾아오심-여러 모양으로 찾아 오신다. 질병, 자녀, 물질, 어려움으로, ? 잘났을 때는 사람이 안 오거든요.)

 

그러면 나는 이 믿음 A를 받았는가?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은 몸을 살리시리라.(아브라함이 죽은 몸 가운데서 이삭을 주신 것을 경험, 구원, 믿음을 경험하고 이삭을 바치는 것 --> 로마서는 이것을 아브라함의 믿음생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사실을 내가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4-15절을 읽어 드립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시니, 내 삶 가운데 이삭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확인해 주시니, 내 삶 가운데 믿음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 합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또 하나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고아인줄 알고 고아원에서 서럽게 자랐는데 알고 보니 부모님이 계셨고 그 부모님이 재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산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가 그 부를 쌓아 두고 거지처럼 살든지 아니면 아무렇게나 생각을 하고, 하루 아침에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그 재산을 잘 지키면서 누리고 살든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입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은 나의 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이제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사는 믿음 즉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십니다. 하나님의 설득이시오. 열심이십니다. 

 

이런 은혜를 받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옛날처럼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 없는 것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귀한 신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허랑방탕하게 타락의 삶을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신분의 소중함을 알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어떻게 하든지 그 받은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설령 믿음으로 잘 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A라는 믿음이 효력은 변함이 없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 천국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가슴에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안타까워하심을 느끼실 것입니다.  6:1-2을 들오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

 

 7:20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의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가 있다는 말씀, 믿음 생활을 잘 하는 자와 믿음 생활을 못하는 자라는 구분은 바로 삶을 놓고 하는 말입니다. 율법을 지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율법주의로 가는 것은 믿음 생활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서도, 예배 생활, 기도생활, 말씀과 담을 쌓고 사는 생활, 교우를 사랑하고 교제하지 않는 생활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각 자의 모습 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3:17)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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