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있는 예배를 원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을 아는 지혜 (삿 13:15-25)

이제 마노아는 놀라운 말씀을 듣고 감격, 또 감격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지요. "고마워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노아가 아내와 함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감사의 번제를 드리자.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할테니 당신은 머물러서 여기를 떠나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여기에 머물릴려고 하지만 네가 무얼 준비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먹거나 그것을 내가 받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가 너에게 번제를 받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준비하려거든, 네가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지니라" 예배의 대상이 분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예배의 대상이 흐려져 있는 시대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아무데서나 넙죽넙죽 절하는 시대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아무데나 쫓아다니는 시대예요. 요즘은 기도원 같지 않은 기도원도 많고, 교회 이름으로 모였으나 잘못된 그룹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공부를 가르쳐 준다고 교회를 분쟁으로, 분열로 이끄는 집단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밤늦게까지 일을 했어도 결국 돌아가는 건 여러분의 가정으로 돌아가야지요. 아파트 단지를 보면 그렇게 많은 아파트에 칸칸이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래도 찾아 찾아서 결국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아무리 복잡하고, 아무리 우리를 유혹하는 곳이 많아도 바르게 찾아가야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로, 헌신하기로 다짐한 제단에서 여러분들이 예배의 자리에, 헌신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야지요. 아무데서나 여러분들이 찾아다니고, 여러분들의 몸을 맡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맡깁니까? 남편들이 가다가 피곤하다고 아무 집에 들어가서 자고 나옵니까? 그럴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피곤해도 자기 가정으로 가야지요. 자기 아내만을 만나야지요. 지조 없는 그런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그런데 이럴 때 지도자가 중요해요. 

이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 분명한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아니라. 나는 제물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제단을 쌓고 싶거든,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할지니라" 

요즘처럼 바른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가 없어요. 그저 교회가 숫자가 느는 일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남의 교회가 깨지든 말든, 상처를 받든 말든, 그렇게 관심 갖지 않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은혜를 받는 일도 질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질서가 필요합니다. 기도원에서 아무리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기도원은 기도원이잖아요. 은혜 받았으면 수요일에는 내려와야지요. 

여러분들이 이제 이 마노아 부부와 여호와 사자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바른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어떻게 정해져야 되는 지를 구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이때라" 사마리아 여인이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저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사마리아의 예배 장소는 그리심이라고 하는 산이었습니다. 그곳에 제단을 쌓아놓고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곳에 모아놓았습니다. 남왕국 유대 사람들은 시온산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예루살렘도 변질되었어요. 

성전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간 곳 없고 성전 건물이 예배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마치 모세가 광야에 들었던 구리뱀을 본 불순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기도의 도구가 되었던 것인데 사람들은 그 구리뱀을 보고 그것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아서 구리뱀을 섬기는 제단까지 만들어놓았어요.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지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이때라. 사마리아 여인 앞에 계신 주님, 바로 네 앞에 예배의 참 대상이 계시지 않느냐?" 

오늘 예배의 대상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분명해야 하는데 예배의 대상이 흐려져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부흥회를 아무리 은혜롭게 해도 그저 부흥회는 부흥회일 뿐이지요. 무슨 얘기입니까? 저도 부흥회를 다니지만 아무리 그 교회에서 은혜 충만, 은사 충만, 성령의 역사가 충만해도 주어진 시간 마치면 돌아오는 것이지요. 미련없이 돌아오는 거예요. 그것을 부흥사 은혜롭고 능력있다고 쫓아다녀서야 되겠습니까? 

아니지요. 섬기던 제단에서 목숨 걸고 충성해야지요. 부흥사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 며칠간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쓰임 받는 도구에 불과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부분에서 내가 섬기는 제단에서, 내가 여호와께 제단의 제물을 놓고 기도하고 예배한다고 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이 그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았습니다. "여호와께 드려야 되겠구나" 마노아가 염소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해서 반석 위에 제단을 쌓고 그리고 제물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예배를 응답하십니다. 마노아의 제단을 응답하셔서 여호와의 드려진 제단에 그 제물이 하나님 앞에 불꽃으로 열납됩니다. 번제는 태워드리는 것 아닙니까? 불꽃이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고 19-20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사자가 동시에 단 불꽃 가운데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한 때 쓰시는 것이지요.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때를 쓰시는 거예요. 앞으로 얼마를 더 쓰실 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우리의 제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내 재능을 통해서 재능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내 주신 물질을 가지고 주님 앞에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몸으로 드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눈물겹지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나님 앞에 재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내 몸으로 하는 일이든 모든 것이 주님 앞에 내 마음이 담겨져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의 예배는 열납될 줄로 믿습니다.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그 예배를 받으셨다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예배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4-25절로 갑니다. "여인이 아들을 나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삼손의 부모는 아들을 낳기 전부터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 부모였습니다. 여러분들, 자녀를 가지기 전부터 신앙적인 계획을 가지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아이를 낳으면 안됩니다. 그런 자녀에게는 아마 부모가 할 말이 없을 거예요.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성경은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그랬어요.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까? 이 하나님의 축복의 기업을 낳기 전부터 기도하면서, 준비하면서, 어떻게 이 아이를 키울까 고민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주셨을 때 그 아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진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축복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아 삼손이라 이름 지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되.."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복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어요.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자라면서 여호와의 신 성령이 그에게 감동했다고 그랬어요.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령으로 감동된 그러한 삶을 살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 모든 준비는 부모들의 몫이예요. 아이의 삶은 부모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예요. 

이제 우리 모든 평안의 가정들이, 특별히 부모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서의 자녀들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하나님의 신이 그의 삶을 감동시키고 인도하시지 않고는 안되도록 우리가 그렇게 준비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설 때에 우리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놀라운 가정의 축복을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들이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삼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부터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믿음임을 그들은 알았고, 아이를 주셨을 때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기도했던 마노아 부부를 기억합니다. 

삼손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었던것 처럼, 오늘 우리의 자녀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