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특별한 순간 ( 2:1-9)

 

신앙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느냐! 멀찍이 떨어져 있느냐!  가늠합니다. 세상적으로 망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그게 복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으로 성공해서 하나님을 떠나면 그건 저주입니다. 나오미는 비록육적으로는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는 실패와 같은 인생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것이므로 성공인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이처럼 자기 백성들을 다스려 가십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빈손으로 자기의 것을 비우고 돌아온 나오미에게 하나님 것으로 풍족하게 채우시는지를 오늘 본문을 가지고 살펴보기로 합시다.

오늘 본문을 보면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보게 됩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거지로 돌아온 룻에게 어떤 식으로하나님의 것을 채워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연히 라는 말이 나옵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연히라는 말은 어쩌다 보니 우발적, 즉 원인없음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우연히' 라는 말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주셔서 만난 것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발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기분따라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앉고 일어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139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은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그러니 우연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심 것입니다.  

 5장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안팎으로 쓰여진 책이 하나 있습니다.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책은 아무나  수가 없고 오직 어린 양만이 떼실  있습니다. 6장에서 어린 양이 인봉을 하나씩 떼니까 흰말과 붉은 말과 검은 말과 청황색 말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땅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이걸 다니엘에서는 하늘에서  바람이 바다로 분다고 합니다.  바람이  바다로 불자 짐승들이 나타납니다.사자와 곰과 표범과   가진 괴상한 짐승 나타납니다. 이건  세상에 나타날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마디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란 말입니다. 스가랴서 6장에선 홍마와 흑마와 백마와 어롱지고 건장한 말들이라고하는데 이들은  하늘에  바람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땅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합니다.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모두를 종합하여 보면, 어린 양이 안팎으로  책의 인봉을 하나씩 떼니까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하늘에서 어린 양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심판하는 권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심판하는 권세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도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룻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시켜 놓고선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인연이란? 미리 이어지도록 되어 있는 원인에 의하여 만난 관계를 말합니다. 이걸 쉬운 말로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저와 여러분이 만나게  것은 하나닙의 섭리입니다. 마치  10장의,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과 같습니다.  24장의, 아브라함의  엘리에셀이 이삭의 감을 구하려고  길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삭의 아내  사람을 순조롭게 만나게  주세요! ( 24:12) 라고 합니다. 그리곤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게  것입니다. 그래서 순조롭게 입니다.

여기서 순조롭게라는 말이 하나님의 은혜로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섭리된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이걸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세요. 피조물이란? 창조주에 의하여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는  독자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창조주의 허락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피조물이라는  속에는 독자적으로 살지 않는 존재란 뜻이 내포되어 있어요. 피조물이 뭔가요? 창조주가 만들었다는말이잖아요. 창조주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바램으로  것입니다. 이제 만났으니 사랑하고 아기를 낳는 다음 장면을 찍어야 하겠지요. 대본에 보면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그럼 스텝들은 다음 장면을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보리밭에서 이루어진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들판에낟가리도 만들고 합니다. 그리곤  사랑으로 아이가 잉태 되고 낳게 됩니다.  아이가 예수의 족보에 올라가게됩니다. 그래서 룻과 보아스를 가지고 신자와 예수님의 만남을 이야기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엄청난 은혜를 받게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것의 상징적인 사건이므로 룻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룻기서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연애편자가 되는 것입니다.

룻은 알다시피 모압 여자입니다. 모압 여자란? 저주 받은 자란 말입니다. 룻은 하나님도 모르던 하나님과 상관없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나오미를 만남으로서 룻은 하나님과 상관있는 자가 되고 맙니다. 룻은 나오미라는 예루살렘에서 모압으로 내려온 여자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패밀리 라는 구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세상적인 말로는 팔자가 꼬인다고 하지만 신앙적으로 말하면 팔자가 술술 풀리게 되었다고 하여야 합니다.  8장에 예수님 만나서 팔자 고친 여인이 있는 것처럼요..

팔자가 풀린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도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는 분이고 실패치 않는 분이니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들어간 것은 복이 되는 것입니다.  8:28 처럼, 선으로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들어간 인생은요. 

이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보세요. 그럼 룻이 얼마나  은혜를 입었는지를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죄인이 구원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죄인이 구원 받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눈여겨보아야  대목은 잃어버린  이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다 함은 원래 주인의 소유였다는 말입니다. 애초부터 주인의 소유였는데 잠시 주인 품에서 떠나 있다가 다시 주인의 손에 의하여 칮아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구원이란 말이 건질 () 당길 ()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딘가에 빠져 있는 것을 외부에서 건져 낸다는 말입니다.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을 바깥에서 당겨 올린다는뜻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것입니다.

우린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내가 구원을 이루어  것이 아니고 받았어요. 받았다  것을 잊지 마세요. 받았어요!우리가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어요. 그러므로 나의 구원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이 오신 것은 자기 것을 찾으러 오신 겁니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고 하지요. 어디로 돌아갔다는 말인가요? 원래 있던 곳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돌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다른 말로 所天 이라고 합니다. ? 죽음을 소천이라고 합니까? 소천이라는 말이하늘에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잠시 잠간 살다가 죽음으로서 창세전  자리로 돌아가게  것입니다. 조상이란? 나를 존재케 하는 근본이란 말입니다.  3장의 족보가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존재케  근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린 예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곤 예수님 안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만물이 그로 인하고, 그로 말미암고,  안에서 섰다고 하지요. 이는  안에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도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걸 본문에선 우연히 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 이라고 합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갔다고 하고! 보아스는 마침    밭으로 왔다고 합니다. 우연? 미크레 라고 하는데 이는 마침내 결국 드디어 라는 뜻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예정된 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계획이 차질 없이 뜻한바 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 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 라고 하는데 이는 예정된  사람이 왔으니 보라!  말입니다. 보라는 것은  분이 오셨다 라는 뜻입니다. 봐라! 드디어  분이 오셨다 그런 뜻입니다. 이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ide<--eido)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라   말과 같아요.  얼마나 빈틈이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룻이 이삭을 주우러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 하시고는 마침  때에 베들레헴 성읍에 있던 보아스를 추수하는 밭으로 가게 하여서 룻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룻이나 보아스 입장에선 우연이라고 말할  있지만 하나님 입장에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섭리와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룻과 보아스의 발걸음을 세시며 섭리을 하신 겁니다.

이렇게 되면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난 것은 하나님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룻과 보아스의 보리밭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주선하신 것입니다.이걸 우리 입장에서는 우연히 라고 합니다. 마침 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요한 1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서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 말씀을 통해, 말씀과 함께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세십니다. 발걸음을 세신다는 말은 발걸음을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139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은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보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라도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면 나를 믿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우리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믿게  주셔야지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 사랑하게  것도 하나님이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이 사랑하도록 허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자랑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에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십니다. 하실 것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요셉도 꿈을 해석할 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이 정한 섭리속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룻은 이제부터 보아스가 준비해 놓은 모든 것을 누리게 됩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입니다. 우리도 룻처럼 이러한 구원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룻처럼 우린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홀로  하신 것을공짜로 누리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을 맛보고 누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은혜입니까! 신앙생활은  측량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안다면 감사치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룻기를 통해서  우연이라는 필연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얻은 것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예정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만물을 세팅해 놓으셨습니다. 지금  주변에 놓여진 상황이 모두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셋트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신자는  감격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주여!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해 주시나이까!  같은 죄인을 구원키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낮고 천한 몸으로 오셔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놀라운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서 흥분을 일으켜 우리들의  구석구석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여울이 되어 퍼져 나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로 삽니다! 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우린 룻처럼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여기까지 인도 받았습니다. 서로가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주님을 찬미하면서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부디  놀라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필연을 감사하며 사시길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만세전에 예비하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의 원함이 아니라 주님의 원함으로 시작하신 구원이매 주님께서  날까지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신다는 것도 알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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