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 보시는 하나님 ( 22:1-14)

 

1.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 

 

믿음이 있어도 순종한 경험이 없으면, 근력이 없는 몸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신다. 그의 믿음을 아주 어려운 시험대, 인간의 힘을 거의 넘어서는 시험대에 올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물하셨던 것,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다시 달라”하신다. (2절이 강조하듯이) 

 

그리함으로써 동시에 12:2; 15:4-5의 약속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어떤 조짐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백성의 시조라는 특별한 지위를 지닌 사람으로서 상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감정을 지닌 아비로서 상대하신다. 

 

그렇지만 모리아 산(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을 향하여 출발하라는 요구는 창 12:1을 생각나게 한다.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버리라”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신앙생활은 이런 것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당신에게 다시 고정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민족에 대한 꿈, 땅에 대한 꿈, 복에 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꿈의 시작인 그 “씨앗-이삭”을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 

 

본문은 ‘그 후에’라는 부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 후입니까? 하갈과 이스마엘을 가정에서 내 보낸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아직 정리되지도 않았을 그 시점, 이제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씨앗이 아니라고 하니, 이삭에게 마음을 쓰려고 했을 그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내 놓으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꿈을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보신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배경은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있을 때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 곧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2일 조금 더 걸립니다. 그런데 3일 걸린 것은 걸음이 느렸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을 제물로 드리러 가는 아브라함의 발길이 서두들 걸음이 아닙니다. 그런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자식 이삭을 데리고 그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러니 그 걸음이 신나는 길이 아니다. 즐겁고 가벼운 길이 아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른 아침, 브엘세바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걷는 도중에 ‘이제 됐다’하시며 그를 돌아가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이쯤되면 “아브라함아, 되었다”라고 하시지 않을까?하는 답을 기다리면서 고뇌하는 심정으로 걸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에 순종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종종있다. 이쯤하면 되지 예쁘게 보시고 응답해 주시지 않을까? 나도 할 만큼 했다. 이제는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깊은 생각에 잠기며 천천히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같은 길을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던 야곱의 처지는 달랐습니다. 그는 쏜쌀같이 걸을을 달려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의 북쪽 벧엘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맞았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심정에 따라 그 하룻 길이 사흘 길도 걸리게 갈 수 있고, 사흘 길도 하룻만에 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는데,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모든 일에 아브라함은 이미 마음에 각오가 섰습니다. 각오한 대로 아브라함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나무를 벌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위, 나무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 할 때에 하늘로 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22: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신앙생활은 각오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살아보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각오로 임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지켜 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쭉 지켜 보신 것이다. 그가 어떤 반응을 하실지 지켜 보신 것이다. 지켜 보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복과는 다른 것입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자.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라.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물로 데리고 가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무슨 선하신 뜻이 있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갔다. 순종의 길을 갔다. 그렇다.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도하실지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험악한 이민 생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자.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 아브라함을 처음부터 지켜 보신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 보십니다. 그리고 됐다 싶으면 더 큰 선물로 우리를 격려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이런 모든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깝게 계시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론적인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을 실제적으로 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치 욥이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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