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 바라 볼지라 ( 27:1-4)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귀중한 이 있다. “황금, 소금, 지금..” 이 귀중한 지혜가 담긴 말을 듣고 즉각 아내에게 문자로 전해 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즉시 문자를 보내왔다. “현금, 입금, 지금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이런 선택과 결정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선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본 장에서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려고 술수를 쓰고자 합니다. 믿음의 결혼을 하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용감한 적용을 했던 ( 24) 믿음의 여인 리브가가, 믿음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가 어떤 것을 결정하려 합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어떤 신앙인이었습니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 산에 믿음으로 올라가 죽기까지 순종했던 순종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했던 전설적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어떻습니까? 생면부지의 사람, 이삭의 아내가 되기 위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기도내용을 듣더니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가문에 들어간 여인입니다. 한번 믿음의 결정을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이삭이나 리브가나 신앙의 결단을 하면, 믿음의 결단을 하면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는 좋은 믿음의 부부였습니다.  11: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의 말씀으로 비추어 보면, 두 부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자였습니다.

이랬던 그들이, 오늘 본문은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로 시작합니다. 굳이 적어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문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눈이 어두워졌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눈은 가장 중요한 정보통로입니다.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처럼, 눈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아주 중요한 통로인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이 이삭의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아주 중요한 통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우리의 육의 상태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영의 상태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대표하는 이삭의 영적 상태, 그리고 그의 아내 리브가의 신앙의 현주소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런 상태를 좀 더 확대시켜서 인류 전체의 상태를 말했습니다.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있다는 것은 눈이 열려 있어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 빛을 알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으로 소경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눈먼자들이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39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마가복음의 마지막 기적이 무엇으로 끝납니까? 맹인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이기도 합니다. 왜 눈을 떠야 합니까?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하와가 처음올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보는 것이었습니다. 보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22:7, 12 “보라[Idou] 내가 속히 오리니…” 이처럼, 눈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아주 중요한 통로인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와서, 눈이 어두워진 이삭과 리브가는 ‘영적 장자권’에 대해 부부가 한 마음, 한 언어가 되지 못합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 했고, 아내 리브가는 야곱을 축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둘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소경의 상태인 것입니다. 예전의 그 믿음 좋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자리잡게 됩니다. 신자가 믿음을 잃어 버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고 비극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에는 ‘편애’라는 이상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편애’라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25:28에 보면, 이삭과 리브가가 편애를 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라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사랑의 조건이 이삭과 리브가 자신들의 취향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보아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5:17은 이 부분을 아주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삭과 리브가의 육체의 소욕은 결국 그들에게 77년 전에, 신혼 초에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그래서 그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서로가 사용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들어가니 이삭과 리브가는 서로가 대화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더욱더 이루어지지 않구요.아니, 하나님의 방법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죠. 그저 서로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라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참고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의 리더가 ‘야곱’이 될 것이라고 창 25:23에 약속하셨는데, 르브가는 그 문제를 ‘자신의 손’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녀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는 말을 듣고 조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수단이 아닌 자신의 방법을 통하여 야곱에게 축복을 돌리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신앙적 실수였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을 할 때, 이삭은 이삭방식대로, 리브가는 리브가 방식대로, “각기 자기 좋을대로 하였더라.

이 거짓된 꾀와 방법만으로 본다면 야곱으로 저주를 받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누구의 손에 올려 놓아야 합니까?  27: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도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야곱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말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신전의식’이 있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보지 않으면, 사람의 눈을 속이려 합니다. 그래서 안들키면 그만이고, 들키면 둘러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에 나타날 야곱의 아들을 요셉을 보세요. 어디서 그런 신앙이 나왔는지? 분명 아버지는 그렇지 않는데 말입니다.  39:9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1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요셉은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항상 인정해 드렸습니다. 야곱은 육신의 아버지의 눈을 두려워했고, 아들 요셉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이런 리브가의 조급함을 자세히 보세요.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져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에서 대신에 야곱이 축복을 받았으니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야곱이 축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보이는 현상적인 것으로 조급한 결정, 그것도 거짓말로 포장한 결정을 내린 리브가와 야곱의 인생을 자세히 보세요. 그날 이후로, 리브가와 야곱의 인생에 눈물과 험악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야곱은 축복 기도를 받았지만,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그의 인생을 표현할 만한 형용사를 찾으라면, ‘험악한’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험악한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직접 들어 보시죠.  47:9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것이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시 말해 믿음의 원리로 선택과 결정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인간적인, 육신의 방법대로 산 결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죠.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한 바로 그 날부터, 그는 밥상에 ‘꽈배기’반찬과 밥을 먹어야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인내하고 약속을 기다리십시다. 

야곱의 어머니, 참으로 지혜로운 것 같은 묘책을 내어 놓은, 자식에게 인간적인 방법을 가리키는데 솔선수범한 리브가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날 부로, 사랑하던, 눈에 너어도 아프지 않던 아들 야곱,  27:13을 보세요.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니니 내 말만 따르고 거서 가져오라.” 저주까지도 대신 받아 복을 주고 싶은 아들, 이런 자녀가 여러분에게도 있으시죠? 

그런 리브가의 인생을 보세요. 그 날부로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수단과 과정이 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 이후” 가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깨달으십시오. 명심하십시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소망이 있으신 분들은 오늘 이시간 빨리 내려 놓으세요.아무리 용의주도하게 계획이 준비되어도 하나님의 그 계획 위에 계십니다.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여러분이 ‘마음으로’ 어떤 것을 계획만해도, 하나나님은 그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온전히 맡기라는 뜻이고, 다른 의미로는,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 앞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으세요. 

한때, 믿음으로 모든 것을 했던 이삭과 리브가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이 두 분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성경시대의 현장에 있던 이삭도, 리브가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야곱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변하고 약한 존재입니다. 은혜없으면, 다 똑같습니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은혜 아니면 그래서 우리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눈을 들어 주만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