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 5:21-24)

 

1.     청년 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주를 위해서 다 내어 줄 것 같은 불꽃같은 신앙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이런 청년들의 마음이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그래서 유명한 표현이 나왔습니다. 남자는 군대가 봐야 그 신앙을 알고, 여자는 시집가봐야 안다고 합니다. 부흥회 다녀 보셨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가던가요? 이삼일 가면 많이 가는 것입니다. 변함없이 주님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6:24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2.     에녹의 시대는 암울한 시대: 동행하기에 좋은 시대가 아니었다. 유다서에 경건치 않은 시대, 불의한 시대를 4번이가 강조한다. 에녹이 살았던 시대가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좋았던 시대였다는 것이 아니다. 동행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가정에서 즉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3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동행할 수 있었는가? 

 

3.     동행은 언제 시작되는가? 개인의 종말, 즉 하나님을 만날 시간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동행의 계기를 보니까. 21절에 65세 동안에는 동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함 다른 자녀를 낳았다 그러니까 므두셀라를 많고 그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은 것이었던 것입니다. 

 

4.     므두(죽음) 셀라(온다): 즉 심판이 온다는 뜻이다. 심판: 당시의 개념, 창을 들고 지키는 자, 창을 든 사람이 무너지면 그 전쟁은 패한다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다. 창을 들고 지키는 자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뜻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심판이 하루 당겨지는 것이다. 아들을 볼 때마다, 심판이 하루 하루 다가 오는 것이다. 아들이 죽는 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셈, 결산을 하러 오신다는 것을 늘 준비하고 살았다. 이것이 동행의 증거가 되었다. 

 

5.     노아를 낳을 때, 므드셀라의 나이369, 969, 노아600세 때, 홍수가 임한다. 므드셀라가 죽던 그 때에, 대 홍수가 임하게 되었다. 자기 자식이 죽는 날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을 에녹은 믿었다. 그래서 유독 몇 살까지 살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6.     24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별세]  17,  9,  9장의 변화산에서 나누신 이야기가 별세이다.  9: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화려한 도시, 세상] 별세[Exodus, 십자가, 죽음, 따라서 신자의 구원은 세상으로부터 죽음을 의미]하실 것을 말할 새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과 별세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를 에클레시아(세상으로부터 불리워진 자들)이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의 삶의 원리와 다른 원리를 배워야 한다. 12:2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한다. 수스케마조 세상의 풍습을 받지 않으려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말씀이다. 그 기준에 맞게, 기준위에서 삶의 boundary를 가지고 사는 것이 바로 구별이요, 경건이다.

 

7.     [오진 암환자 이야기] 후회없습니다. 지난 6개월 만큼 진지하고 행복했는지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진짜를 붙들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진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남은 시간은 이렇게 살겠다. 언제 우리가 주님 만날 준비하며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자각하고 의식했던 노아는 그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했던 것이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그렇게 산 것입니다. 

 

8.     실제로 우리의 삶은 Why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우리 동사의 연속은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9.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을 간략하게 하면, 한다는 것이 바로 동행이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정말 구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나와 함께 동행하자는 것이다. 내 신앙 생활 20년이 동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만날 준비하고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동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10.  동행: 의합한다는 것이다. 아모스 3:3 두 사람이 뜻이 같이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여기서 두 사람은 하나님과 아모스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동행할 때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마음, 뜻이 하나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11.  하나님을 내 뜻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포기해라. 하나님은 뜻을 세우시면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분이시다. 그분과 의합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 계획, 꿈을 내려놓고 그분이 세우신 계획을 향해 마음을 합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동행이 시작된다. 

 

12.  성경에 동행하는 사람이 또 한 사람이 나온다. 그가 노아이다.  9:6절에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한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그가 하나님의 뜻과 의합한 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배를 지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면서 배를 지으라고 하신다. 

 

13.  배를 경험과 상식에 말이 안되는 방법으로 배를 만든다. 그분과 동행하려고 그는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든다. 내 경험과 상식을 내려 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래서 동행했다고 한다. 

 

14.  예수님의 경우,  22:42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과 동행하시려고 내 계획과 소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에 맞춘다. 내 기대를 내려놓고 아버지의 기대에 나를 맞춘다. 

 

15.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런 경험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경험과 상식과 맞지 않을 때, 나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의합해 본적이 있는가? 

 

16.  왜 의합할 수 있는가? 믿음때문이다.  11:5 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옆에 같이 간다고 동행이 아니다. 믿지 않으면 동행이 아니다. 믿음이 동행하게 했다는 것이다. 믿음은 마지막을 보는 믿음이다.  11:6절을 보면 에녹은 시선이 이 땅을 향하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 주시는 이심을 바라봄이라. 하늘 나라를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17.   14: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근심하지 말라 내가 응답해 줄께 하지 않고, 하늘에 아버지 집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하늘나라에 있어야 이 땅의 것이 아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계신 집, 하늘을 보라는 것이다. 시선을 바꾸라고 하신다. 시선이 거기 가 있으니까 하늘을 봐야 이 땅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사하면서 키를 빨리 전 집에 놓고 오고 싶었다. 키를 들고 있는 것이 번거러웠다] 오늘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놓아진다는 것이다. 이 땅의 것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된다.

 

18.  사도바울, 딤후 4:6-8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이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19.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이다. 옷도 없다. 추워서 나중에 옷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는가? [딤후 4:13] 감옥에서도 하늘을 보니 감옥에서도 기뻐하라고 말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이 이 땅에 머물고 있으면 그런 말 못한다. 그러나 그 시선이 하늘에 있으니, 현실이 내 상식과 기대와 달라도,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20.  동행은 속마음을 털어 놓는 것이다.  1:14-15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다 이야기 하셨다는 것이다 매일 하나님과 매일 이야기했다. 서로가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흉금[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털어 놓고 대화를 했다. [바다의 풍량]  10년 전에 교회 간 적이 있는 한 선원이 기도하기를, 10년동안 하나님을 언제 귀찮게 한 적이 있습니까? 이번 한 번만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10년동안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면 어떻합니까? 

 

21.  하나님과 얼마나 대화하십니까?  에녹은 하나님께 대화를 했다.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어디 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시선을 어디에 있습니까? 

 

22.   11:5절 말씀을 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 창세기는 동행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동행이다. 하나님이 언제 나를 부르실까? 그 분 만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종말론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별세신앙을 가지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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