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라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 (빌 2:12-18)

 

하나님이 오늘 믿는 우리를 통해서도 나타내고자 하는 삶이 무엇일까요.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 설립자인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 디도 집사 편으로 보내어 준 선교헌금에 대한 감사와 빌립보 교회 안에 교인들 간의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갈등을 해소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 가려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그렇게 나아가는데 방해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성숙에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12절)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데 있어서 늘 방해 거리가 있습니다. 그 방해 거리를 사람들은 환경이라고 합니다.  주어진 환경이 여의치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신앙이 자라지 않은 것으로 핑계를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경이 절대로 우리의 신앙의 성숙에 방해 거리가 될 수 없고 도리어 1:12절에는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지만 도리어 자신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이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방해하는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능력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해석의 차이’입니다.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죠. 고통과 사랑이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이라 합니다. 빌립보 교회라면 누가 보아도 기쁨이 넘치는 교회입니다만 그러나 빌립보 교회 안에도 자세히 보니 교인 간에 갈등이 있습니다. 특히4:2절에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말은 빌립보 교회 안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권면이 뭡니까? 누가 잘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위로가 뭡니까? 누가 상처 주고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교회생활 하다가 교인 간에 갈등 생기고 문제 생기거든 갈등 품지 말고 문제 품지 말고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품고, 참고, 그 분의 말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한 빌딩에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개업을 하고 있는데 대다수가 유대인 의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 유대인 의사는 유대인 의사들의 텃새에 배겨 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한국계 여의사 한 분은 자신을 무시하는 유대인 의사들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병원은 항상 환자들로 넘쳐 났습니다. 소문이 나니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 의사들의 텃세가 심한데 그곳에서 성공할 수 있었느냐? 유대인 의사들이 밉지 아니하냐? 고 물으니

 

1)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분들 예수님의 고향 마을 사람들이라 되려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2) 환자들에게 엑스트라 마일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엑스트라 마일이 무엇입니까? 마5:41절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이 여의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보여 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우리가 신앙이 성숙하는 데는 환경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사람이 방해 거리가 될 수 없어, 문제는 너희 자신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있는 구절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건데 또 무슨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가? 왜 이런 의문을 갖는가? 하면 구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일반 교인들은 구원이라고 하면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가는 것으로 의미축소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말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 회복의 전 과정’을 말합니다. 

 

창3장에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살아나심으로 생명의 주임을 선포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반드시 그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 것임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지만 많은 경우에 제자답게 처신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두려워 비굴 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세상을 살면서 자신들의 삶의 정황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자라가는 신앙생활을,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어른 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자들만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 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엡4: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 때까지 영적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까? 그것은 다른 측면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장 완벽한 교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성취, 그분의 거룩, 사랑이 우리 가운데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 즉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는가?(13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아 살려고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이러한 거룩한 성품이나 또한 그렇게 살려고 하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도록 우리의 영적 성장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갈 수 있는 힘 즉 에너지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성령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은 자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우리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선한 목적에 부합한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주시고 또 그것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솟아나는 선한 마음을 무시하고 소멸하지만 그러한 선한 마음의 생각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자발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신학자 <위즈비>의 빌립보 강해에 보면 이 구절을 강해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방편이 있다 그 방편이 무엇인가?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만이 우리의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 성장은 내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때 우리의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자라고 있는 신자인가요? 퇴보하는 신자인가요? 

 

이스라엘 엘리 제사장은 형편없는 성직자요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사무엘이 밤중에 와서 불러셨느냐고 물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해라 합니다.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의 조언을 따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어 나야 합니다. 

헤브라이즘 (통합)  헬레니즘 (분리)

Hear and Do Hear and analysis 하다가 Do 는 없다.

 

3. 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까?(15-16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이는’이 이유입니다. 앞 절이 되어야 하는 이유,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고 “이는”, “왜냐하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16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빛 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 세상에 하나님의 희망을 보여 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란 사실을 삶을 통해 보여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빛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어그러지다란 말은 비뚤어지다란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다 삐뚤어져 있습니다.  거스린다는 말은 거역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그들 가운데 빛을 발하는 자로 서기 위해 자라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당신들의 자녀들을 통해서 드러내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욕을 먹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자라가는 신자는? 듣고 배우고 깨달은 말씀을 세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쉐마, Hear and Do) 특히 16절에 삶의 현장 속에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 입니다. 고후4:8-9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구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꼭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14절) 

14절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하나님은 왜?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고 합니까? 본래 희랍어에서는 제일 중요한 말을 앞에다 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강조하는 말은 모든 일입니다. 어떤 일, 어떤 경우든 간에 원망과 시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은 반드시 기쁨과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빌4: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기도와 찬양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마귀적인 세력은 항상 원망과 시비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400년 광야 생활입니다.  저들은 불평 원망하다가 망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굳게 먹읍시다. 원망 시비 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시비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큰 걸림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라가는 신자의 원리는 환경 바라보지말고, 원망과 시비로 환경을 끌고 가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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