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바벨탑을?( 11:1-9)

 

 

오늘 이야기 주제는 바벨탑입니다. 쌓지 말아야 될 것을 쌓는 바람에 재앙을 불러 일으킨 얘기이지요. 인류학자들이 인류를 나누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인종 별로 나누기도 하고, 시대 별로 나누기도 하고, 또는 두개골 모양을 가지고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인류를 구분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그룹과,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그룹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그룹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다는 겁니다.

 

노아의 아들이 셋 있었지요? , , 야벳인데 함의 아들 중에 구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니므롯이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이 니므롯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창10:8-9을 보면“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랬습니다. 인류 최초의 영웅이었다는 거지요. 고대사회일수록 역사는 영웅을 중심으로 이어갑니다. 그 영웅의 일대기가 곧 역사라는 거지요. 노아의 세 아들 중, 함과 야벳의 후손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반대했던 족속들이었습니다. 오직 셈족만이 하나님을 섬긴 백성이었지요. 오늘 니므롯은 함의 자손으로서, 잘못된 인간의 표본으로 다시 바벨탑 사건에 등장하게 됩니다. 즉 자기 힘만 믿고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는 니므롯의 후예들이 바벨탑을 쌓게 된다는 겁니다. 

 

제임스 딘이 주연을 했던 “에덴의 동쪽”이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어쨌든 굉장히 철학적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에덴의 동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좋지 않은 의미지요. 하나님을 싫어하니까 하나님을 떠나 계속 동쪽으로 동쪽으로 간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안 계실까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안 계실 거라고 생각한 그곳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을 피하려고 한 그곳에서 만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니므롯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피해 동진을 계속하다가 만난 땅이 시날 평지였습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이 있었던 아주 비옥한 땅이지요.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처음 그런 땅을 본 거예요. 평지에다가 땅은 기름집니다.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정착할 맘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류는 아주 중대한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엄청난 발명을 하게 되지요. 

 

인류가 발견, 또는 발명한 것 중에 역사를 바꾼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하나는 불을 발견한 것이고, 또 하나는wheel, 바퀴를 발명한 것입니다. 따로 설명할 것 없는 놀라운 발명이고 발견이지요. 그런데 그 두 가지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발견, 발명이 있었는데 바로 뭐냐? 벽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서 처음으로 벽돌을 만들어 낼 줄 알게 된 겁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일대 혁명이었어요. 생활양식 전체가 완전히 바뀔만한 대사건이었던 겁니다. 마치 지금의 세계가 컴퓨터를 발명해 낸 것 같은 어마어마한 발명이었던 거지요. 지금 우리가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하잖아요? 

 

그때까지 사람들은 나무와 돌 밖에는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나무는 구하기도 어렵고 또 돌은 무겁습니다. 운반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동굴에서 살거나 나무로 움막을 쳐서 살았는데 이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 와서 어찌어찌 하다가 진흙을 뭉쳤더니 그게 굳으니까 딱딱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불에 구웠더니 돌처럼 단단해지는 겁니다. 그걸로 네모 반듯하게 벽돌을 만들고 또 그 벽돌사이에다가 역청을 발라 넣었더니 단단하게 붙는 겁니다. 그렇게 벽돌로 사방을 쌓아봤더니 기가 막힌 집이 됐습니다. 그뿐 아니라 돌은 가공해서 쓰기도 어려운데, 이 흙은 빚는 대로 빚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항아리도 만들어서 씁니다. 생활에 일대 변혁이 온 겁니다. 더 이상 떠돌이 생활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보세요!

평원에서는 엄청난 양식이 나오지요, 그리고 이제는 굉장한 기술을 갖게 됐지요, 그때까지 말이 하나니까 얼마나 의사소통이 잘됩니까?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피해 왔지만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여기까지는 너무 좋았습니다. 모자란 게 없으니까 이제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예배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아주 위대한 발견을 한 그 순간, 인간은 딴 생각을 합니다. 마치 인간이 핵을 에너지원으로 쓰거나 발전의 도구로 쓰지 않고, 그걸 가지고 무기를 삼는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는 게 인간입니다. 쾌락을 위해 쓰고 자기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씁니다. 왜 그렇지요?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날 평지에서 니므롯의 후예들이 한 일이 뭡니까? 4절을 보십시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오늘 이 사람들이 첫 번째 한 일이 뭐라구요? 탑을 쌓는데 어디까지 쌓냐 하면 하늘에 닿기까지 높이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적당히 쌓아도 될 텐데 왜 하늘까지 쌓을 생각을 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유혹이 뭔지 아시지요? 신이 되고픈 욕망입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면서 유혹한 게 뭐지요? “네가 하나님같이 되리라” 그것이었습니다. 이 니므롯의 후예들도“우리가 신이 돼서 당신처럼 인간을 지배하겠다. 하나님 당신을 이겨보겠다” 그 생각인 겁니다. 칼빈은 이 모습을 가리켜서“사람들은 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은 두 번째 이유는 뭘까요? “우리의 이름을 내고” 그랬습니다. 알고 보면 인간은 명예욕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명예와 권세를 높이고 자기 정욕을 채우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들의 특성입니다.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유명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돈이 들어오고 그 돈으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겁니다. 이름을 내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음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 보면, 거기는 탐욕과 정욕이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바벨탑을 쌓은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흩어짐을 면하자”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사람에게 하신 명령은 “너희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러셨습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사람은 흩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지요?  우리끼리 한 번 해보자, 하나님 방법대로 말고 우리 방법으로 한 번 해보자 그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고독한 겁니다. 그래서 더 사람들끼리 뭉치게 되지요. 

 

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표어가 뭘까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했던 말이지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합하면 잘 될 것 같아서 뭉치지요. 여러 기구가 있는데, 그들 모두 표방하는 슬로건이 뭡니까? 세계의 평화 어쩌고 합니다만 사실은 철저히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 연합단체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거기엔 하나님이 없습니다. 철저히 인간만이 있는 겁니다. 

 

이 바벨탑을 쌓은 세 번째 요건은 철저히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겁니다.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끼리, 우리 힘으로 천년 만년 살아보자.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다.” 그런 인본주의가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셨습니다. 5절을 보면“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 오셨더라”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위에서 그걸 보시고 계셨습니다.

 

바벨탑 쌓기는 이렇게 해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위해서 자기가 쓰는 말 외에 다른 말을 배워야만 하게 된 겁니다. 엄청난 계획과 부푼 꿈을 가지고 추진하다가 허무하게 중단된 탑! 인간의 모든 것을 다 투입했지만 얻은 것이 없는 실패의 현장! 거창한 시도의 좌절! 이것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여러분! 이 바벨탑 이야기가 옛날 얘기일까요? 사람들은 뭐가 인생의 의미이고 진리인지 찾기 위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지요. 철학은 철학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존재가치를 증명하려고 하지만 결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언제나 “모른다” 그렇게 끝납니다. 

 

과학도 나름대로 기술을 개발합니다. 그래서 그 기술이 쌓여가지요. 하지만 이상하게 그 과학기술의 원래 목적인 인간의 행복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습니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이 있지만 인간은 서로에게 더 많은 장벽을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고독에 빠져있지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빼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질문할지 모릅니다. 그럼 하나님은 과학기술을 좋아하시지 않는 건가? 아니지요. 과학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을 더 늘려가야 하고 삶의 편리를 더 도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만능인 것 같이 하늘 꼭대기까지 닿으려고, 혹은 우리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느 것 하나 인간이 만들어 낸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 기술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라는 거예요. 벽돌을 만들어 낸 그 엄청난 기술! 그러나 진흙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불은 또 누가 만들었나요? 역청은 또 누구의 산물입니까? 다 하나님이 이미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다만 인간은 그것을 변형시켜서 가공했을 뿐입니다. 그 알량한 기술을 가지고 인간은 하나님을 감히 대적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이 대단한 것 같지만 여러분!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진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구 속 700km의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만 겨우 표면에서 2km 정도를 아는 것이 현대과학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기술로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한 소년이 바닷가의 모래 한 움큼을 손에 쥐고 모든 바닷가의 모래를 다 가졌다고 착각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됨의 비결을 가르쳐 주고 참된 행복의 비결도 가르쳐 줍니다. 온 인류가 다 하나로 모여서 세계통화를 만들고, 경제적 연합체를 구성하고, 가상적인 시날 공간에다 초대형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함께 협력하면 이상사회가 건설될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인간의 망상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배제하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거기에는 갈등과 혼돈과 실패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만이라는 고름을 모두 다 짜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로마서 14:8의 말씀처럼“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 말씀이 진정으로 우리 삶의 고백이 되고 삶의 목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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