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여도 가야 하는가? ( 37:12-17)

 

 

서론 질문? 

오늘 본문 이하에는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와라 하는 아버지 야곱의 말대로 요셉이 형들을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야곱의 가정에 세겜은 어떤 곳인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곳입니다. 사랑하는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에 살던 남자들을 다 죽여 버린 곳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의 복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세겜입니다. 아마 야곱의 식구들은 세겜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에 살기와 보복의 위험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또 세겜에 갔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일까요? 세겜에 갈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그들은 양 떼를 치고 있습니다. 목축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 풀입니다. 세겜은 풀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숨을 잃을 위기가 있고 기분 나쁘고 가기 싫은 곳이라 할지라도 세겜에 간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을 만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세겜으로 가는 도중에, 형들은 도단으로 장소를 이동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안 보입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아니 나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세겜에 갔더니, 형들이 안 보이던데요. 형들이 없습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잘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마음에는 성실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씀한 내용을 다 이루는 데까지 성실성을 보인 것입니다. 그는 세겜 들을 방황하며 형들이 어디 갔는지를 수소문합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단까지 갑니다. 

 

그런데 요셉이 도단에 갔더니, 형들이 멀리서 보고 서로 뭐라고 그럽니까? 19절입니다.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 죽여 버리자 만약에 요셉이 그냥 세겜까지만 갔다가 집에 돌아갔으면 죽을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실하게 형들의 행방을 찾다가 도단까지 찾아갔더니, 거기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성실함 때문에 나쁜 결과가 온 것입니다. 성실함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가고, 성실함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런 일이 생길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결과가 나타납니다. 성실하게 살았더니 오히려 일들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보편적으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나요?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 왔는지요?

 

신앙생활 하기가 제일 힘든 사람이 누구냐 하면, 약간 믿음이 있고 약간 머리도 좋은 사람입니다. 약간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길을 갑니다. 그런데 약간 머리가 좋기 때문에 결과를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면 분명히 나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약간 믿음이 좋고 약간 머리도 좋기 때문에 중간에서 길을 헤멥니다. 

 

반면, 신앙생활 하기에 진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믿음이 좋고 머리도 좋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갑니다. 물론 머리가 좋아서 나쁜 결과가 오리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임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신앙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인생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실함 때문에 오히려 나쁜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굉장히 많이 접하는 문제이며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럴 때, 이런 신앙적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형통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단기적인 나쁜 결과 때문에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즉각적인 결과 때문에 흔들려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요셉이 성실하게 행했더니 나쁜 결과가 왔습니다. 죽음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으니, 구덩이에 물이 있었으면 그냥 물속에 잠겨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입니다.

 

나쁜 일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형통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나쁜 결과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사람들은 어렵겠다고 말하지만, 각자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믿고 고난 중에도 형통할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믿는 자들의 인생을 볼 때, 단기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큰 그림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팔려 가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요셉의 내면을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그를 애굽의 바로 앞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3년동안 요셉을 그 길로 세심하게 이끌어 가셨습니다. 요셉의 내면을 연단시켜서 바로에게 점점 가까이 가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간 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지난 세월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뒤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곁에서 섬기는 보디발의 집으로, 감옥으로,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의 가장 측근에서 술을 따르던 자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점점 바로에게 가까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길이 요셉의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심이 보이십니까? 나의 내면을 다루어 사람 만드시는 것…)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시는 길을 약간은 볼 수 있지만 다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양을 부르며 믿음으로 오늘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 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믿음 가지고 걷는 사람들이 그 길을 다 알기 때문에 걷습니까? 눈에 아무 증거가 안 보여도 걷습니다. 다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런데도 왜 믿음 가지고 걷는 것입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주실 최종 승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서는 이유인 것입니다. 

 

지금의 내 앞에 있는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내가 아는 부분보다 더 큰 전체 그림 속에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밤에 기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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