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 26:23-25]

 

 

돛단배의 능력은 바람의 세기이고, 자동차의 능력은 엔진의 마력 수입니다. 성도의 능력은 성령과 말씀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쪽의 강도는 죽어가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의 명설교를 3년 간이나 듣고도 깨달음이 없으니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합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설교 시간에도 ‘맞아! 맞아!’ 하고 깨달아 은혜 받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은 얼마나 복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부부간에 금슬이 좋고, 아이를 낳으니 쌍둥이이고, 소떼와 양떼가 막 불어나고, 사업이 백배나 잘됩니다. 종들도 얼마나 많아졌는지, 그 나라의 군사보다 많아진 것 같습니다. 서 있는 사람과 걷는 사람,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 뛰는 사람과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차이가 자꾸 커집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이삭도 차이가 커졌습니다. 블레셋 왕이나 백성들은 그대로 있는데 이삭만 백배로 잘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선한목자교회에 이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을 받으면 빛이 납니다. 광채가 납니다. 커 보입니다. 이삭도 크게 보였습니다. 이래도 잘되고 저래도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크게 보이니 블레셋 왕은 약하고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니 블레셋 백성들이 이삭을 질투하여 이삭이 있는 곳을 기습해서 우물들을 다 메워버렸습니다. 이삭이 그 억울함을 호소할 데라고는 블레셋 왕뿐인데 왕마저 이삭에게 와서 “당신이 우리보다 더 강성해졌으니 이제 이곳을 떠나라.”라고 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황당한 일입니까?

그럴 때 이삭은 얼마든지 블레셋 왕을 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종들은 유사시에 다 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종들이 있는 이삭은 얼마든지 블레셋 왕을 칠 수 있지만, 그는 평화의 사람이라 “알았다.”라고 한 후 그곳을 떠나갑니다. 멀리 가서 우물을 팠는데 또 그들이 와서 그 우물도 자기들의 것이라 합니다. 그때도 이삭은 ‘다투었다’라는 뜻으로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 짓고 거기서도 또 양보하고 그곳을 떠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파면 또 그들이 와서 자기들의 우물이라고 우깁니다. 

그래도 평화의 사람 이삭은 그들을 치지 않고 이제는 아예 아주 먼 곳으로 갑니다. 몇 개의 산을 넘고 넘으니 광활한 대지, 초원이 열려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우물을 파니 물이 솟아납니다. 이삭은 거기서도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되면 잘될수록 이삭은 걱정, 불안, 공포가 커졌습니다. 부잣집에 도둑이 오고, 돈을 많이 갖고 다니면 강도가 따라붙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삭은 잘되면 잘될수록 ‘저 호전적이고 시기심이 많은 블레셋 왕이 깊은 밤에 우리를 급습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들과 헤어질 때 반감이 있었으니 ‘우리가 먼저 쳐들어갈까 봐 그들이 먼저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겁이 나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걱정이나 공포가 밀려오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20살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서울대 앞에 있는 관악동부교회 담임목사님으로 시무하시는 강대유 목사님과 북한산으로 산기도를 다닐 때였습니다. 저녁 10시에 올라가서 새벽 4시에까지 기도하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기도할 때는 목사님과 3-4m정도 떨어진 곳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께서 서로 멀리 떨어져 기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담력훈련을 시키시려고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떨어져 기도를 하러 가든데 다른 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날은 머리끝이 땅기는 것 같고 뒤에서는 누군가가, 앞에서는 늑대가 공격해 올 것만 같아 얼마나 무섭던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너무 무서워 더 이상 걷지 못하고 바위 사이로 들어가서 “주여!” 하고 생명을 걸고 부르짖었습니다. 얼마나 큰 소리로 부르짖었는지 그 소리가 그 주변사람들에게까지 들렸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목사님께서 그러시다라구요. 박선생이 이렇게 기도의 사람인줄 몰랐다구요.라고 말입니다.  무서움을 없애려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공포는 무서운 것입니다.  

이삭은 복 받은 사람이지만 무서움이 오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할 수 없이 그 좋은 평야를 두고 옛날에 아버지가 살았던 브엘세바로 갑니다. 평안할까 봐 갔는데 거기에 가도 역시 공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이삭!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네게 복을 주겠다. 네 자손이 번성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두려워 말라.”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순간 빈 컵에 물을 부으면 공기는 다 빠져나가고 물이 가득 차듯이 공포와 걱정은 다 물러가고 평화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근심과 걱정이 조금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령께서 저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네게 복을 준다. 네 자손까지 잘된다.”여러분과 제 마음에 근심, 걱정, 공포가 사라지고 평화가 가득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선한목자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삭은 두려웠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니 공포도 이기고 문제도 이깁니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장애물 경기입니다. 마라톤도 힘든데 그 힘든 마라톤에 때때로 장애물이 나옵니다. 교회도 수많은 장애물을 건너갑니다. 현재 큰 교회들을 보십시오.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가지 않은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기고 또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장애물이 나타나도 승리하고 또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동방 최고의 사람 욥도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욥기 14 1절에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큰 복을 받은 욥도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찬송가 369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찬송가 70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자 이리오라, 만유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높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후렴]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되슨 주 하나님.할렐루야. 우리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말씀하실 때 말씀으로만 위로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대책을 세워놓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7 11절에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나인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장례 행렬을 보시게 됩니다. 남편 없이 사는 과부의 외동아들이 죽어 사람들이 그 시신을 장례하기 위해 메고 가는데 여인이 그 뒤를 따라가며 하염없이 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여인아, 울지 말라.

오늘 우리 중에 울 수밖에 없는 분이 계실지 몰라도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울지 말라.” 우리 주님께서는 울지 말라고 말씀으로만 위로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죽은 청년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니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어머니의 슬픔이 기쁨이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대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실 때는 대책을 다 세워놓으셨습니다.“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하나님께서는 한 세대에 불쑥 나타나셨다 사라지시는 그런 신이 아니십니다. 창조 전에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구원하시고 심판하시고 천국과 지옥까지 영원히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다니엘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의 통치자는 바뀝니다. 우리나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통치하다가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합니다. 또 때가 되면 이명박 대통령도 물러가고 다른 대통령이 나오게 됩니다. 미국도 부시 대통령이 통치하다가 지금은 오마마가 합니다. 

동물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를 한 번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밀림의 왕인 사자가 늙어 병약해지니 젊은 사자가 그 늙은 사자 왕을 밀어내고 자기가 왕이 됩니다. 그리고 그 늙은 사자의 아내인 암사자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암사자가 전에 낳은 새끼 사자 네 마리를 다 물어뜯어 죽였습니다. 늙은 사자 왕의 피를 받았다고 그런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이놈아, 너도 곧 밀려나고 네 자식도 물어뜯길 때가 온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세계이고 동물 세계입니다.

이 세상의 왕은 바뀝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뀌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사랑과 긍휼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 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네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사야 45 5절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삭아, 일 년에 한 번씩 내가 네게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삭아, 내가 일 년에 서너 차례 올게.” 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 1:23, 28:20, 고전 3:16, 6:19)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블레셋에서 잘될 때도 함께하셨고, 어려움을 당할 때도 함께하셨습니다. 이삭이 억울하게 이사할 때도 함께하셔서 다른 사람들이 이삭을 치지 못하게, 재산을 빼앗지 못하게, 이삭의 생명을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빼앗길 때도 ‘그 우물을 빼앗기는 것이 네게 복이다.’ 하시며 더 넓은 지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동방의 의인인 욥이 잘될 때만 하나님께서 욥과 함께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일곱 아들과 세 딸이 죽은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욥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래서 욥이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31:4)라고 고백합니다. ‘죽을 지경인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라고 확신하니 이기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될 때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할 때도 함께하셔서 지켜주십니다. 

찬송가 382 1)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2)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3) 너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4)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너를)

하나님께서 이시간 말씀하십니다.  41: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이사야 43:1-3) 할렐루야!

우리가 이 음성을 들으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위험한 때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1-6)

우리가 푸른 초장 맑은 냇가에서 편히 쉴 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십니다. 할렐루야! 늘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복을 주리라. 도와주리라.” 저는 설교하는 지금도 힘이 납니다. 사람이 도와주어도 힘이 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우리 선한목자교회는 잘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여러분은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가시면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8:39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여러분에게 매여져 있습니다. 은혜의 줄이 매여져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좀더 나아가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네 자손은 잘되고 번성한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삭이 기뻐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우리가 생명을 걸고 해야 할 일은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 수요 예배, 새벽 예배, 순 예배, 예배는 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처럼 “여호와여! 여호와여!” 하고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능력을 받는 시간입니다. 승리의 시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이제 the Life with God 그냥 삶이 아니라, 바로 그 삶입니다. 의미있고 가치있고 존귀한 삶인 것입니다. 정지용씨의 꽃 그가 나를 불러주었을 때, 나는 의미가 되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시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의미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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