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가락의 능력 (사 43:21, 엡 5:19-21)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3대 영적 활동을 꼽으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 영적인 호흡과 같은 기도생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찬송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이사야 43장 21절에서도 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는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하는 것을 등한히 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창조의 목적과 완전히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은혜가 충만하면 자동적으로 찬송이 입에서 흘러나오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게 되면 자연히 주님을 향한 찬양이 계속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찬송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 찬송이 이렇게 중요할까요? 찬송이 우리의 삶과 땔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야 되는 이유는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영적 생활의 원동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신앙생활을 원만하게 하고 은혜 충만하여 주님을 사랑하면서,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바로 찬송을 통해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을 부를 때에 돌처럼 굳어지고 강팍한 영혼들이 깨어지고 부서져서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컬컬하고 답답한 심령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를 통하여 시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큰 은혜를 받게 되고, 찬송을 부르다가 뜨거운 감격을 체험하게 되고, 찬송을 부르다가 성령충만함을 받게 되고, 찬송을 부르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고, 찬송을 부르다가 문제해결의 열쇠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찬송은 또한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 하면 문제해결의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찬송을 통해서 개인적인 문제, 또는 국가나 민족의 문제를 해결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과 같은 사람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습니까? 그러나 욥이 그 어려운 시험과 난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욥기 1:21에서는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찬송하게 될 때에 환난을 뛰어넘을 수가 있었고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찬송은 환난을 정복하는 능력입니다. 

 

찬송은 놀라운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이야기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에 악신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불러왔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왕 앞에서 수금을 타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탔더니 악신이 물러갔습니다.(삼상16:23) 찬양은 이처럼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있는 마을에 개척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성탄절 새벽송을 위해 학생들에게 찬송가 3곡을 외우게 했습니다. 교인 집에 가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불신자 집에 가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희 동네 무당이 3명이 있었다고 했잖습니까. 2년째 되던 날 여전히 새벽송을 그 집 앞에서 불렀습니다. 전에는 고요한 밤을 조용히 불렀는데, 그 해는 왠지 자신감시 생겨서 아들에게 제가 책임질테니 기쁘다 구주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그때 사람이 한 명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송을 돌면 선물을 주는 전통이 있어서 선물을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와서 “굿하는 집에 웬 찬송가여. 우리 집 이제 망했어”라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찬송가 소리가 들리자 굿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기분이 나쁘다고 하면서 더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이 후 우리는 새벽 송을 돌 때 더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고 그 무당 집은 결국 동네를 떠났습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 찬송과 기도가 없다면 그것은 영적 호흡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찬송 생활과 기도생활을 계속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결국은 영적인 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풍성한 영적인 기적과 부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하십니다. 찬양은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성가대가 찬송 부른 때에 여호와의 복병이 적군에 임하여 그들이 패망한 일이 있습니다. 역대하 20:22-23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 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전쟁터에서의 유다 백성들이 큰 소리로 부른 찬양은 믿음의 찬양이었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찬양했습니다. 감사의 찬양이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감사하세 하며 찬양했습니다. 감사를 드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였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찬양을 했습니다. 승리의 찬송이었습니다. 열심히 찬송할 때 적군이 패하였습니다. "저희가 패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찬송 가운데 거하십니다. 

 

시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메튜 헨리는 하나님은 성도들이 진심으로 찬미할 때 그들의 일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찬송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태어난 찬양대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성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고,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대로 말미암아 살아있고 은혜 있는 예배가 되며, 살아있는 예배가 되게 합니다. 특별히 성가대원은 한 주간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찬송이 살아 있으면 교회는 삽니다. 승리하는 교회에는 찬송이 살아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찬송하는 성도가 걷는 인생길이 멀고 어두워도 하나님께서 생각지 못했던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당은 기도하는 곳이요, 설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요 찬양하는 곳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누구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염려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건강문제, 물질문제, 자녀문제, 직장문제, 진로문제, 결혼문제, 미확실성에 대해 평생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고,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 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주님 예수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라고 전적으로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해 주심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나아갈 때 불안과 염려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러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이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에 평화가 넘칩니다. 그 입에서 찬송이 떠나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승리감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찬송으로 승리한 싸움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은 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할 만한 현실입니까? 아마 대부분 아니라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찬양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찬양하게 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영광 돌릴 수 없는 그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르게 될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곳에’ 이 찬송은 참으로 귀한 찬송입니다. 1889년 어느 가을에 코넬과 쿠퍼라는 분이 부흥회에 참여하여 고넬이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를 노트에 적어 놓은 것을 쿠퍼라는 분이 작곡을 한 찬송입니다. 이 찬송을 듣고 미국의 우울증 환자 상당수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의 하프 연주로 사울의 영혼이 자유로워 지는 것을 착안하여, 음악치료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예배시 사용되는 음악에 크게 감동을 받은 사람 85.4%, 성가대의 찬양에 크게 감동을 받은 사람 81.1%, 오르간 주악이나 찬송에 은혜를 받은 사람 71.7%, 교회음악을 통해 영적 치유의 경험이 있는 사람 70.1%, 교회음악을 통해 감정 순화의 경험이 있는 사람 77.6%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은 하나님의 능력을 수반하기 때문에(삼상 16:18) 의학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놀라운 치료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음악치료는 사람의 심리 변화에 크게 작용하며 신체적인, 생리적인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경건한 찬양의 교회 음악은 영성을 개발하고 영육간에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버드 신학교의 영성 신학자, 헨리 나우웬, ‘상처받은 인간 상처받은 치유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렵습니까? 현실을 헤쳐 나간다고 하는 것이 내 지식으로, 내 경험으로, 내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큰 난관 앞에 어쩔 수 없이 좌절하고 힘들어서 남모르게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찬양 듣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일이 잘 되고 기뻐할 때 찬양하기보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찬양하면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에게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되는 것은, 시간만 되면 찬송을 합시다.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전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저와 여러분이 찬양을 부를 때에는 여호와께서 그곳에 임재 하시기 때문입니다.(시22:3) 여호와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찬송이 생활화 되어야 하고 체질화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찬송을 불러야 하겠다고 의식을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기쁨이 터지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성령의 충만한 모습을 서로가 느껴요” 시 22:3 “찬송 중에 거하시는 이”를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찬송 부를 때에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지고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집니다. 찬송 부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는 가정의 자녀들 중 잘못된 자녀가 없고, 찬송을 많이 부르는 교회 중 뜨겁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정 가운데, 삶 가운데, 승리를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간단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됩니다. 시 22:3 절에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답답하십니까? 찬송하십시오. 우울하십니까? 찬송하십시오. 슬픈 마음 있으십니까? 찬송하십시오. 찬송에 능력이 있습니다. 다음 주에 그 찬송을 순별로 마음껏 불러 교회 안에, 순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 하도록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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