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자(히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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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스스로의 결정은 늘 불안하고 불완전해 / 하나님만 바라보고 맡기는 단호한 결단 필요 / 말씀과 믿음으로 긍정적인 삶의 기적 일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나를 바라보든지, 나와 하나님을 동시에 바라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호한 결단이 없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항상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은 아무 것이나 바라보고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현실이 위협적이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죽을 각오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희망과 꿈과 믿음을 선언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위대한 헌신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결단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의롭다하고 기뻐하십니다.
1. 나를 바라보는 삶
나를 바라보면 나라는 사람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제한이 있어 한정된 시야밖에는 열리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나를 의지하고 산다면 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나의 힘은 제한된 힘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12명 중에 10명은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높은 성벽, 거대한 거인들이 사는 것을 자기들의 제한된 눈으로 보니까 자기들은 메뚜기 같았습니다. 스스로를 메뚜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땅을 점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환경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를 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할 수 있다’ 혹은 ‘할 수 없다’를 곧 계산해 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계산을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맡겨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나와 하나님을 번갈아 바라보는 삶
나를 바라볼 때는 못하는데 하나님 바라보면 할 것 같고, 또 믿었다가 안 믿었다 혹은 믿었다가 의심했다가 갈등 속에 있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믿음과 의심의 갈등 속에 몸부림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다가 나를 믿었다가 낙심했다가 다시 믿음을 가졌다가 갈등을 하고 갈피를 못잡는 그런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 때 체험한 현상입니다.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와서 두려워하니 믿음이 사라지고 결국 물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한번 예수님을 봤으면 끝까지 예수님을 봐야 되는데 눈을 들어 바람과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의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의심이 생깁니다. 주님을 바라봤다가 환경을 바라봤다가 하면 의심이 들어왔다가 믿음이 들어왔다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복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 49절로 50절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기록합니다. 말씀이 고난 중에 위로가 되어서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외워 놓고 어려움을 당할 때 말씀이 마음을 점령하고 지켜주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대단히 좋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도록 기도를 많이 하고 방언기도를 많이 해서 성령이 우리를 점령하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성령님께 의지하고 환경을 바라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환경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눈 앞의 언덕만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그 뒤에 있는 넓고 푸른 초원을 보아야겠고, 비구름만 보지 말고 그 뒤에 있는 햇볕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세상 만물이나 물질 혹은 인간에게 두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자꾸 우리 앞에 문제의 담장을 세워 “이 염려를 바라보라. 이 근심을 바라보라. 이 절망을 바라보라. 이 문제를 바라보라.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문제의 담장을 높이 쌓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면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결국 작은 문제가 커지고 커져서 앞날이 캄캄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은 기도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문제가 내 앞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봐야 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애굽을 떠나 나오는데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의 대군대가 따라오므로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하며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직 그 담장 너머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애굽의 병거와 군대들을 뛰어 넘어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들을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은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기록합니다. 너희는 동요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애굽 군대도 바라보지 말고 병거도 바라보지 말고 환경도 바라보지 말고 너희를 구원하실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의지할 곳 없어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나님 안에서 꿈과 환상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 가슴속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에서부터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서부터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슴속에 와서 우리 마음을 점령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환경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가슴속에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하나님 뜻을 따라서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봄의 법칙의 중요한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 밖에 안보여요. 마음에 무엇이 점령하는가가 우리의 환경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이 하나님께 점령되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부활 이후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옛날이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들어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진리가 우리 마음을 점령하면 그것이 우리 생활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점령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의미를 마음속에 되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속에 용서의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룩하고 성령충만의 꿈을 꾸게 되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치료받고 건강하게 되는 꿈을 꾸게 됩니다. 또한 십자가를 바라보면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는 꿈을 꾸게 되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고 영생복락을 얻는 꿈을 마음속에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보혈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속에 그림을 그리는 붓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면 확실히 변화된 생각과 꿈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통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면 그것이 마음속에 이루어지고 마음속에 이루어진 것이 실제 생활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지금 벌써 일어난 것처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없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부르게 하셨고, 그의 아내는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많은 이의 어머니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는데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부르셨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현재에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고 그것을 믿고 감사하자 나중에는 그 기적같은 일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감사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축복을 싣고 오는 하나님의 열쇠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선언하고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기록합니다. 그 다음 시편 146편 2절로 5절은 “나의 생전에 야훼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나를 바라보면 나 같은 인간이 되고 환경을 바라보면 환경과 같은 인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무엇을 바라봄에 따라 그 마음을 점령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갈보리 십자가를 늘 바라보십시오. 환경을 바라보면 절대로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환경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을 바라보면 계산적이고 타산적이며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고 믿음으로 살게 되고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되고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 모두는 고개를 들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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