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Rom 1:1)

 

 

로마서를 읽으면서 쉽고 간단한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로마서만큼 많은 연구서와 강해집 그리고 주석이 나온 성경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는 우리들에게 쉽지 않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이신득의의 교리에 관해 기록한 책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리는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스스로 확실한 기반 위에 서있기 때문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교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문에 로마서는 성경공부나 인용되는 간단한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분은 요한복음과 로마서를 읽으라고 하면 어떤 책일 읽고 싶으세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가진 교리 때문이 아니라 신자의 삶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 전체를 주의 깊게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시작하여 로마서를 강해할 예정입니다. 매주 오시기 전에 로마서를 한 번씩 읽고 오시면 더 큰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로마서 강해를 통해 복음때문에 우리의 삶이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우리는 본 서신서를 기록한 바울 그는 누구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바울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의 이름의 뜻은 small, little라는 뜻이다. 본래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desired,훌륭한자라는 뜻입니다. 엄격하고 완고한 민족주의자 유대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미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모독자로 간주했던 사람, 그래서 기독교를 멸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메섹에 있는 작은 교회를 근절시켜 버리기 위해서 살기등등하고 위협적인 자세로 다메섹을 항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어떻게 보았는지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급기야 그 사람의 인생 전체는 바뀌었고, 믿음을 변호하는 능한 변호자가 되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취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재능을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나도록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바로 우리도 하나님께서는 부르실 때 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울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의 빛을 깨닫고 맛보는 것처럼,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영광의 빛을 흘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회심하셨습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여러분의 모든 재능,달란트들이 무가치하며 소용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생각때문에 시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부르신 모든 분들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분, 한분 다 귀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리가 가치 없는 인생이라고 열등감에 빠지게 합니다. 반대로 자기 잘났다고 하는 교만함에 빠지게 합니다. 

둘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신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어떤 부분을 들어서 쓰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회심이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는 기대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모양으로 쓰실까?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아니라, 옆의 신자를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000를 어떤 모양으로 사용하실까? 기대가 된다. 집사님, 나는 집사님만 보면 기대가 돼,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가 된다.라고 말입니다. 

한번 옆사람과 해 보겠습니다. 000만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정말로 기대가 된다. 기도할께요. 이런 교회문화,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십시다. 한 영혼도 주님 보시기에는 무가치한 사람이 없습니다. Rom.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새로운 상황 속에서, 환경 속에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모를 때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던 재능, 달란트를 이제는 하나님께 내어 드리십시오. 바로 여러분의 재능이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복음을 증거하는데, 영혼을 살리는데 사용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치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빈부귀천 나이고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소유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처지에 상관없이 여러분들을 향한 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귀한 달란트, 재능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그 재능들을 여러분의 주인이신,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신 그분, 우리를 지으신 그분,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1 Chron.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여러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다른 어느 누구와 똑같이 행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창조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식대로, 옆사람은 옆사람의 방식대로 그들 나름의 다양한 방식대로 하면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모든 사람들이 각 파트별로 나누어 힘찬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가대처럼, 모두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쓰임받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우쭐할 필요도, 주눅들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같은 꽃이 하나도 없고, 같은 새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마다 그 나름의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다양성과 매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옆사람을 보세요. 참으로 다양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참 매력있게 생겼죠.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나와 동일하게 생겨 보세요. 아마도 싫어할걸요. 바울! 그렇습니다. 그는 터를 닦고 유대교를 대항하여 진리를 파수하고, 진리의 모든 영광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만 분명하면 됩니다. 이 의식이 흔들리면,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가치없는 존재라고요. 너와 같은 사람이 교회에 무슨 유익이 되겠나고요. 저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교회에 유익이 될지나 모르겠습니다. 웨낙 부족한 것이 많아서…”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확인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실지 기대가 됩니다.라는 생각을 회복하시길 축원합니다. 

이런 마음은 다 사탄이 유혹하는 소리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분에게, 그러게요. 000같은 사람이 어디에 쓸데 있을까요? 하면 당장에 시험듭니다. 그래서 교회도 떠나고 예수도 떠나고 다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런 소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견해 주신 자신의 모습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시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영혼을 보고도 이 무익한 놈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나를 평가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에 집중해야 한다 이말입니다. 내가 나를 평가하면 교만하거나, 주눅들거나 둘중에 하나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지에 목숨을 거십시오. 이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환경, 재능들을 평가하지 마세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해도,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에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예뻐도, 흔히 말하는 잘 나가도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against God의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을 보세요. 3:4-6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 하며 만일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자라.

자 보세요. 하나님을 모르니, 이 좋은 것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편에 살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을 핍박하는 자리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사람아닙니까? 딤전 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라고 합니다. 똑똑한 머리, 많은 재산, 좋은 건강,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으면 우월감으로, 없으면 열등감으로, 열등감, 우월감 살짝 벗어나면 어느 날 다른 이와 비교해서 또 열등감, 우월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엉뚱한데 에너지 낭비합니다.

자기 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요. 자기 자식 대에서 이 꿈을 이루어 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내 안에서 일어났던 갈등, 우월감, 열등감이 이제는 자식에게로 옮겨집니다. 이 갈등이 자녀와 부모, 부부간에 갈등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죠.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 갈등을 십자가의 은혜아래서 해결하지 않으면, 이것은 다른 관계속에서 여전히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물질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있고 없고에 따라 우월감, 열등감이 생겨나 나를 지배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정립하지 않으면,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내가 영향을 받는 다는 입니다. 그래서 사춘기 학생들이 나이키 못 싣으면 너이키라도 신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안 그런줄 아세요. 메이커 못 입으면, 짝퉁이라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이나 애나 할 것없이 짜가라고 입어야, 손에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유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인생이 행복할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신자의 삶이 일희일비하는 삶, 성장없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세요? 인생을 이렇게 허비하면 안됩니다. Having, Being을 혼돈하시면 안됩니다. 우리 원수 마귀는 이것을 가지고 항상 우리를 유혹합니다. 3:5에서 사탄이 이렇게 유혹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악과를 먹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요. 사탄은 참으로 교묘합니다. 선악과를 소유했다고 해서 자신들의 존재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가를 소유해야만 자신의 존재가 변하는 줄 아는데요.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라는 것을 깨달으세요. 좋은 화장품을 바른다고 해서 내 존재가 바뀝니까? 좋은 차를 탄다고 해서 내 존재가 바뀝니까? 좋은 집에 산다고 해서 내 존재가 바뀝니까? 아니 잖습니까? 시편 8편에 우리 인간을 가리켜서 무엇이라 합니까? 

Ps. 8:4-5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안가지고에 따라서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학위를 가졌는냐, 물질을 가졌느냐, 무슨 차를 타느냐, 무슨 옷을 입느냐, 무슨 집에 사느냐, 어느 카운티에 사느냐, 무슨 물을 먹느냐, 무슨 직업을 가졌느냐, 무슨, 무슨, 무슨..에 따라 우리의 존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류인생이 아니라 이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좀 부족해서, 제가 좀 있어서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도우려고 하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기대하면 이런 말 안합니다. 이제는 여러분 스스로에게 선포하십시오. 나는 존귀한 사람이다. 나를 하나님께서 쓰실거야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쓰실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드려야겠다.라고 선포하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건강한 자아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바꾸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을 보세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는 그의 삶은 desiring God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환경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느냐, 못 만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여러분에게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누구입니까? ,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서두에 사울의 이름이 desired라고 했습니다. 그가 주님 만나기 전에는 desiring himself의 삶이었는데, 주님 만나고 난 후에는 desiring God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 살기를 축원합니다. 

Desiring myself Desiring God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의 인생이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라려 하심입니다. 아름다운 덕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바울과 같은 정체성이 있으십니까?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이제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회심한 영혼이라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귀한 재목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은사, 재능,..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그분께 돌려드리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기도제목으로 삼아 보지 않겠습니까? 

6:8절의 이사야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 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로마서 강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누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기대하시는 여러분되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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