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질이 아니다 ( 1:1)

 

창세기의 히브리어 책명은 베레쉬트입니다. 한글로는 태초에로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우리가 사용하는 창세기의 제목은 ‘Genesis’는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LXX에서 기원된 제목입니다. “Gen” 기원, 출생, 발생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창세기에는 우주만물의 기원 인간의 기원 그리고 결혼과 가정의 기원 죄와 죽음의 기원  구원의 기원 정부와 민족의 기원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의 기원 이신칭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등이 아주 명료하고 명쾌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창세기를 통해서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인지, 지구가 만들어진 과정이 어떠했는지 등 고고학적이며 과학적 지식을 탐구를 할 목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창조의 목적 뒤에 흐리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뜻을 발견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영감을 주시고 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오경을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 쓰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이 모세 오경의 제 1차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어린 양의 피 덕분에 죽음이 넘어간 피의 흔적이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애굽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을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족장들에게 미리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하신 것들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을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계명을 주시면서 그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가?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민족들과 무엇인 다른가?를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를 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4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애굽의 우상을 섬겨 왔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애굽에서 심기던 우상들, 태양과 달, , , 바다와 뱀들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사람이 섬길 신은 그런 피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너희들에게 다스리라고 주신 것들이다. 사람이 섬길 신은 오직 한 분,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4:16-19을 보면,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항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지 말며 

 

신명기 말씀은 창조의 순서 반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섬길 때 모든 것이 뒤집어 진다는 것이다.(disorder, chaos) 우상 숭배는 모든 근본적인 관계들을 무질서로 만듭니다. (, 돈과 사람의 관계도 무질서)

 

신앙생활을 하는 첫 출발점은 바로 이 창세기 1 1절입니다. 이 고백이 없으면 엄밀히 보면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올바른 출발을 하지 않으면 물질관,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내세관이 바르게 정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만 살펴볼까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고 있는 교회 안을 보면 인본주의, 유물론(Materialism), 물질주의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를 부정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진화론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은 초월을 부정하고 유물론적으로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일 뿐입니다. 여기서 잠깐 유물론(Materialism)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정신이나 마음의 실재성(Reality)을 부인하고, 물질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우주의 본질은 물질이며, 물질과는 다른 영혼이나 정신 따위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 공산주의가 기독교 즉 종교를 그토록 목숨걸고 민중들 속에서 없애려고 했는지를 아시겠죠. 

 

진화론을 믿고 싶은 것은 엄밀히 말해서,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이 없었으면 하는 그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부정하고 우연을 말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을 우연의 일치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기도를 한다던지 누구를 의존한다던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우연 속에서 살아 남는 길은 나를 믿고 의지하면서 남보다 더 빨리 멀리 높이 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내 힘으로 현재만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진화론자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살고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만이 전부라고 믿으며  사후의 개념도 없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힘을 추구하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게 진화론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화론은 틀렸다고 목이 터져라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한번 보십시오. 멀리 보지 마시고 우리를 보십시오. 아니 나만 보면 됩니다. 진화론은 자연이 유물론을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화론과 유물론이 나은 자녀가 무엇입니까? ‘물질주의와 허무주의입니다. 물질 밖에 없는 세계에서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물질 밖에 없는 세상에서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물질을 더 많이 갖는 것입니다. 물질을 더 많이 갖는 것이 복입니다. 복의 개념이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생명을 가진 인간이 비생명체인 물질과의 관계에서 의 개념, ‘행복의 개념을 찾으려 합니다. 생명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복,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복이라는 바라크는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에게 부어지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물질 밖에 없는 이 몸둥아리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물질 세계에서 진정한 소망이 있을까요? 사람이 참 묘한 것이요. 사람을 물건(Material) 취급하면 정말 싫어합니다. 비인격자라고 합니다. 물질 밖에 없는 세계에서 인간을 물질(Material) 취급하면 싫어합니다. 물질끼리인데요. 사람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반증은 아닐까요? 사람은 물질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센서가 우리의 지--의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 우리의 삶의 한 부분만 보야도 쉽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떡만 먹고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말로 대화를 하지 않고 살아 보세요. 사람은요. 우울해집니다. 사람은요 아파집니다. 물건취급하면 사람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적인 사고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물질취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능이 다하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물건, 물질은 기능이 다하면 버리면 됩니다. 그게 진화론에 입각한 올바른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살면서 한 번 쯤은 나 왜 사냐?, 나 왜 이리 바쁘냐?, 나 왜 이리 아웅다웅 하냐?’는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가 창조론을 믿는 다고 하면서 삶은 진화론적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면, 그분이 만드신 세계를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6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면, 창조하신 세상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보시기에 좋다로 만드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은 것처럼, 무질서고 삶의 목적과 의미가 없는 우리에게 질서의 삶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고 최희준씨는 노래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혼돈과 공허의 삶에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생명없는 물질이 우리의 삶에 영원한 생명, 참 행복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물질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셨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1:1-4)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할렐루야

 

인생이 혼돈스러 우십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인생이 공허하십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인생의 앞이 흑암처럼 캄캄하십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돈의 삶에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공허한 삶에 진리를 넣어 주셔서 의미 있고 자족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흑암처럼 어두운 우리의 인생의 앞날, 특별히 죽음 앞에서 참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 좋은 예수님 믿으시고 어려운 이민생활 힘있게 소망있게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계시고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십시오.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은혜를 창조하실 것입니다.  33:2-3“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베드로 보세요. 옥문이 열립니다. 믿음으로 살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있네 없네 성급하게 결론내지 마세요. 믿음으로 살면 경험하게 될 것이고, 경험하면 믿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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