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사오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는 예배 시작을 하기에 앞서 매주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백이 삶 가운데서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곰곰히 살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매주 고백하는 그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전도 활동이 계속될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며 또한 베드로에게 물으실 때 그는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6)고 했습니다. 

2세기 경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을 때 그들의 암호 기호로 익투스라는 글을 새긴 물고기 형상을 달고 다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이단[1]들도 생기게 되었고 교회마다 세례를 주기 위한 신앙의 고백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익투스 (물고기) : 예수스 + 그리스토스 + 데우 + 휘오스 + 쏘테르, 앞 글자만 합치면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구원자입니다는 뜻을 함축한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우리 기독교가 믿는 바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고,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선 ( 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은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마땅히 동의하고 숙지해야 할 사도들의 가르침의 핵심이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이라 함은 사도들이 믿었던 바, 사도들이 마음을 모두 내 주었던 것이라는 뜻입니다. 크레도는 내가 믿는다는 뜻입니다. (끄레는 심장이라는 뜻이다) 여러분을 무엇을 믿으십니까? 교회는 한 믿음, 한 신앙고백 안에 존재하는 예수님의 몸인 영적 공동체입니다. 교회에는 절대 여러가지 다른 종류의 신앙고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4:4-6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처럼 교회는 한 하나님을 믿는, 한 믿음, 한 신앙고백 속에서 한 목적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야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가 믿는 믿음은 너무나 여러 종류인 것을 봅니다. 믿음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는 그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많은 교회는 소망의 대상을 이 세상 것으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내용을 물으면 자신들이 믿는 바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믿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대상과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꼭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대상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그가 자신을 위하여 행하신 일[내용]의 진의도 파악하지 못하며 무조건 믿는다고 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기독교가 그런 것 아니었나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말씀처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고 더 나가가서 자신이 믿는 바의 내용을 내 삶으로 살아내는 바로 생활 자체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결단의 내용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은 무엇을 믿느냐?라고 물으면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 동시에, 그 예수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런데 그 예수가 무엇을 했는데?하고 물었을 때에도 여러분은 그 내용을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그런 건 몰라도 돼, 그냥 믿기만 하면 돼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사도신경에서 제일 먼저 고백하는 것은 우주[2]와 인간 존재 자체 관한 것입니다. 

왜 무엇이 존재하며 왜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왜 천지와 만물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이 질문은 철학자 라이프니츠에 의해 제기된 후 많은 사람들이 반복하여 물었던 질문입니다. 아니 지금도 우리 중에는 묻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모든 신비 가운데 가장 큰 신비는 만물과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서 인간과 만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일단 그 존재에 관한 질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나, 목적, 가치, 윤리 등에 대한 모든 논의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는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그런 식의 존재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시는 영원한 존재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존재케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이미 존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인류아 우주의 역사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천문학자 라플라스(Laplace)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빼고 모든 원리를 설명하려 수없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가설은 진화론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진화론적으로 형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물질이라는 것이 우연히, 이렇게 결합되고 저렇게 연결되어서 결국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화론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우연이며 우발적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믿는 않는 사람들이 내릴 수 있는 역사의 시작과 과정과 결론은 진화론적으로 설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인류와 우주의 역사의 실체와 그 존재 목적을 명확히 알게 된 우리 성도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을 자들입니까?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서 시계를 하나 주웠습니다. 줄이 달려 있고 시계 침이 정확하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시계를 주운 사람이 그 시계를 보고 이 시계가 이렇게 시계가 된 것은 저 바위 속에 있는 철분이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밀려 서로 뭉치고 깎여서 여러 가지 모양이 된 것에서 시작된 거야. 어떤 것은 동그랗게 깎여서 시계의 글자판이 되었고, 또 다른 것들은 뽀족하게 깎여서 우연히 시계 바늘 모양이 되었고, 어떤 것들은 울퉁불퉁하게 깎여서 시계의 톱니바뀌들이 되었고, 바위와 모래 속의 유리 성분은 서로 합쳐지고 깍여서 시계 유리가 된 것일 거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계부품들이 우연히 자기 자리를 잡아서 이렇게 완성된 시계가 된 거야라고 주장을 했다고 해 보세요. 

여러분은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도 안된다고 하실 것입니다. 왜 그렇지요? 시계라는 것은 초정밀 기술이 필요한 아주 복잡한 기계이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시계가 우연에 의해, 진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 그 시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하고 정밀하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섬세한 인간과 짐승, 식물 등의 존재가 우연히 그렇게 생겨났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침묵하십니까? 

여러분, 이 우주의 모든 생물체는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아마노산이 우연히 합쳐져서 단백질을 구성할 확률은10 78,616승분의 1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모두 합쳐서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인 아메바가 될 확률은 10 1,676,260승 분의 1입니다. 이 우주의 물질들이 수십 억 년동안 움직이다가 우연히 만나 결합을 하여 생명체가 될 확률이 10 1,676,260승 분의 1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불가능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은 주장하는 미국 진화론의 대부 카플란 박사조차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우연히 조합하여 생명을 형성할 수 있는 확률이 10 1,676,260승 분의 1이라는 것이 확실한 만큼 생명체를 제공하는 자, 즉 창조자가 없이 생명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은 0(zero)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학적 고찰] : 인과율(Cause and Effect)의 법칙 -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 과학은 인과율의 법칙에 따른다.

 <원인> <---------------------------- <결과> : 추정

    : 과학자의 설계                                로보트

          [원인 : 우위]  --------------->  [결과 : 하위]

  진화론의 모순

     @ 생명이 없는 원소로부터의 진화  --------->  생명체의 발생

     @ 감정이 없는 물질                     --------->  감정이 있는 생명체

     @ 비 인격체                               --------->  인격적인 인간

 ※ 위의 예들은 인과적 타당성을 지니지 못한다. 질적 하위의 조건에서 질적 우위의 조건이 탄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명도 없고 감정도 없는 로보트가 생명을 지니고 감정을 지닌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인과적 타당성을 지니는가? 아니면 반대의 경우처럼 생명을 지니고 감정을 지니고 인격적인 과학자가 질적 하위의 로보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과적으로 타당한가?

  창조론의 타당성

    @ 인격적인 하나님(창조주, )      --------> 인견적인 인간

     @ 생명이있는 하나님(창조주, )   --------> 생명체

[ 물리 화학적 고찰] : 자연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열의 변화를 수반함으로 중요한 법칙을 만들어 낸다. 그 중  열역학법칙(Law of Thermodynamics)이라는 것이 있다.

  열역학 제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에너지는 그 모양을 바꿀 수 있어도 그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 자연은 스스로 에너지를 창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초의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진화론은 이 최초의 에너지원을 설명할 수 없다.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무질서도)증가의 법칙)

    "자연계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들은 질서 있는 상태에서 질서가 깨어지는 쪽으로 진행된다는 것"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쪽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질적 하위에서 질적 우위로 진화한다는 진화론의 입장을 반대한다.

우리 성도는 무엇을 믿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 성도는 이렇게 믿음으로 온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무에서 유로, 존재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맏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1)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 무에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 창조는 그의 말씀의 권능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의 영원하신 경륜과 섭리로써 지금도 우주를 다스리고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 

2)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전능하셔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로 불리게 된 그 과정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존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혼돈과 공허의 상태인 우리 죄인들을 반드시 새롭게 창조내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성도의 존재론적 기초입니다. 

먼지(아파르)에 불과한 저주받을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하자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이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신앙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바로 신앙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1] 신앙고백이 다른 자들이다. 사도신경을 살펴보라. 각 항목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요즘 많이 있다. 

[2]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 즉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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