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점을 갖자 ( 7:15-22)

 

한국의 성도들만큼 예배를 많이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것입니다. 예배만 많이 드립니까? 성경공부, 제자훈련, 수련회, 기도회, 말씀사경회 등 얼마나 많은 모임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모임에 꼬바꼬박참석하는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깊이 경험하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관점입니다. 인간적인 관점, 세상적인 관점이 영적인 관점,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뀐다는 말이빈다. 누가 예배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관점이 바뀌는 사람이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관점의 변화”(a change of view)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인간적인 관점과 세상적인 기준으로 세뇌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에 나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우리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관점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이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할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것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는 ‘영적 찌질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는 그 순간부터 인생은 자기의 크기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로 인생을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미지근하던 인생이 열정을 품은 인생으로 변화되고, 안된다고만 하던 삶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돌진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경험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게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이름은 우리가 계속 살펴본 기드온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 그의 인간적인 관점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게 되니 그의 삶에는 크게 두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이 둘은 본문을 보면서 살펴보길 원합니다. 

 

 7:15을 보면,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뭐가 바뀌었습니까? ,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300명으로 13 5천명을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그의 인간적인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여호와(hw"hoy>): the existing One’ ‘the Creator’ ‘the Almighty’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자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믿음의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그 300명으로 최선을 다해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실 것이니까, 자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전략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 7:16)

 

가장 먼저 군대를 3대로 나누었습니다. 적들이 삼면에서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장을 했는데 각 손에 나팔과 항아리를 들고 그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숨겨두게 했습니다. 오늘 이들이 들고 있는 무장을 보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007 이나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영화를 보면 소수 정예부대가 다수를 공격할 때에는 무장이 특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기가 시원찮으면 다수와의 싸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드온의 전략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처럼 터무니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무기와 전략은 고대 전쟁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이와 같은 무장을 지시했고, 300 용사들은 기드온의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들에게 자기만 보고 자기가 하는 대로만 따라 행동하라고 지시합니다. 300명의 용사들은 놀라우리만큼, 자신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도 그대로 합니다. “이걸 믿고 나가느냐? 아니면 물러서느냐?” 거기에 따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할 수도 있고,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삶을 살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림길은 바로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완전무장한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돌만 들고 뛰어들어가는 모습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의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방법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옥신각신 하면 안됩니다. (교회의 문쟁의 대부분은 이것때문이다.) 특히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해 문제를 삼고 따지는 일들을 삼가해야 합니다. 방법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모자라서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금 미숙한 방법이라도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들은 기드온의 전략이 우수하고 탁월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전략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순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도 목자와 양이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하나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방법이 좋아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 교회사는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좋은 방법을 찾기 이전에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을 만들었다. 이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환경을 조작하여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형성한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면, 스키너는 자신의 방법으로, 범죄가 없는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 방법은 세상의 모든 신생아들의 교육을 자신에게 맡겨주면, 규칙을 잘 지키고, 배려하는 행동을 보이면 보상을 주고, 규칙을 안 지키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처벌을 주는 방식으로 유아들을 양육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가상 소설 ‘Walden Two’에서, 스키너는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면 범죄가 없을 것이라는 가상소설을 썼습니다. 더 나아가 스키너는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을 반영한 기계를 만들었으나, 아버지로서는 실패스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그의 자녀들을 통해 듣게 된다. 

 

여기서 나온 교육이론이 한때 한국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니 지금도 이 학습이론을 가지고 학교나 학원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일단 한번 보내보시라리까요.”그런데 보내서 아이 망친 학부형 여러분 계십니다. 아이가 그렇게 나오던가요? 가히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스키너의 학습이론, 학습방법을 동원해도 우리가 원하는 아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다른 책,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그는 그 고백을 합니다. 

 

저도 교육학을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교육의 결과는 당장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교육공학을 통해서 그 결과를 당장 이끌어 내려고 인문학+공학(과학적방법)을 붙혀서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한 아이의 교육 결과를 제대로 보려면, 그의 일생의 반토막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이것이 아니었나봐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래서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좋은 방법을 가지면 내가 원하는 어떤 귀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특별히 자녀에게 말입니다. 좋은 방법, 좋은 교육법을 가지고 그대로 하면, 내가 원하는 아이, 사회가 원하는 기적적인 아이로 나올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스키너는 그의 책 ‘웰던 투’에서 인간과 동물은 그 행동양식에 있어서 다른 무엇, 너머의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자녀의 실험을 통해서 알아냈습니다. 참으로 귀한 결과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연구업적에 귀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험 대상으로 참여했던 그의 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 좋은 방법인 줄 알고 실험을 했는데, 그것도 자신의 아들에게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에는 이런 일을 안하는 줄 아십니까? 구몬학습지, 웅진씽크빅, 교원빨간펜, ..등 많은 학습지 회사들이 이 이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인간이 누구입니까? 아담의 후손입니다. 이는 바로 죄인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좋은 방법으로 교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좋은 것을 많이 해주게 되면, 쉬운 말로 ‘올라탑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 오릅니다.’ 여러분이 일주일만 자녀에게 좋은 방법으로 잘 해 줘보십시오. 자녀들이 내 자존심을 넘어섭니다. 

 

그러나 실험은 하지 마십시오. 일주일이라는 교육기간이 아깝지 않습니까? 뻔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 세월이 길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교육학 시간에 Summer Hill이라는 학교에 대한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만 있지 어떤 수업도 태두리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사는 존배할 뿐이고 어떤 의문이 생기면 그때 교사에게 가서 물으면 답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입니다. 교사에게는 어떤 것을 말할 때 good or bad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결정권은 아이입니다. 

 

학교의 철학적 배경을 보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로크의 ‘백지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good or bad와는 상관없이 ‘white paper’라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기 시작할 때 ‘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쓰여지거나, 그려지는 것이 바로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 이와 쌍벽이룬 사람이 바로 루소입니다. 그의 책 ‘에밀’에서 인간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참다운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교육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나를 키운 것은 바람이었다.’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에 대한 정변 대적인 것입니다. 18세기의 인간의 타락을 한층 더 앞당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떠나면 인간이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고 합니다. 니체, 초월자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은 죽었다, 아니 죽어야 한다.’고 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좋은 방법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합니까?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을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그에게 당신의 지혜와 당신의, 신자만의 고유한 방법, 하나님의 자녀만의 고유한 방법을 주셔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알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기드온처럼 최선의 다해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그런 삶을 살도록 좋은 학원,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스키너의 제자인 것입니다. 최선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꿈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이 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삶이 변화되려면, 관점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충만하면 세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여기서 ‘그것들’은 13절에 나오는 ‘영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육에 속한 사람의 육은 ‘yuciko,j(퓨슈키토스)로 ‘the man controlled by breath/air’이며, 반면에 영에 속한 사람의 영은 ‘pneu/ma(퓨뉴마)로 ‘the man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란 뜻입니다. 관점이 바뀐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기 즉 세상에 의해서 그의 관점이 형성된 사람은 거듭남으로 성령에 의해 관점이 형성된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충만하면, 믿음으로 눈으로 보고, 결정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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