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방법( 7:1-3)

 

기드온은 양털 뭉치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미디안 군과의 일전이었습니다. 여호와는 기드온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7장에 나타나는 기드온은 단지 인간 기드온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바알과 싸울 수 있는 여룹바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성경 기자는 “여룹바알(,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라고 묘사합니다. 성경 기자는 두 개의 이름 중 여룹바알을 먼저 말하고 다른 하나를 부갖거인 설명으로 첨가함으로써 여룹바알로서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개역성경에는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으로 번역함으로써 이 같은 뉘앙스를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는 하롯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지명인 히브리어‘하롯’은 ‘떨림, 두려움, 공포’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떨림’이라는 의미를 지닌 집결지의 이름은 전에 기드온이 두려워했던 모습을 상시시킬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두려워 떠는 자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7:3)고 했을 때 집으로 돌아간 자들의 수가 2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여기서 ‘떠는’이란 단어는 하롯과 같은 어근인 ‘하랏’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진을 쳤던 하롯 샘이 두려움의 분위기로 가득 찼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토록 두려워했을까요? 본문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미디안 군대의 숫자와 비교해볼 때 절대적인 열세에 몰려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8:10에 따르면 미디안 군대는 모두 135,000명이나 되었습니다. 32,000명의 이스라엘 군대와 135,000명의 미디안 군대의 대결이 되는 셈입니다. 미디안 군대는 칼로 무장한 강병이었으나 이스라엘 군대는 무기 하나 변변히 없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이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33:16 “많은 군대로 구원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미대안 군대의 위세에 눌려 하롯 샘 곁에 진을 치고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무리가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 32,000명은 하롯 샘 곁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중 2/3가량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약한 병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지 않은가? 두려워 떠는 병사라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 백 배나 낫지 않았을까? 더욱이 이 병사들은 그래도 자진해서 모여든 백성들이었습니다. 6:34-35을 보세요. 

 

비록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기드온의 요청에 자발적으로 올라온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그 용기가 가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미디안 군대는 바로 코앞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지역인 모레 산 골짜기는 하롯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위급하고 긴장되는 순간]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드온에게 들려옵니다. 7:2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요? 무리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전쟁을 남겨 놓으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2: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 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삿 3: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조치 하신 이유는 7:2하 에서 언급하듯이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함”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만을 의지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익숙했습니다. 아니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고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8:11-20을 보십시오. 함께 보실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심중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단 이스라엘 백성만의 모습인가요? 우리는 여기서 자유할 수 있나요? 

 

지금 사사 시대의 백성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를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어떤가요?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즉 이들은 ‘여호와를 잊어 버린 것입니다’ 신 8:11-20에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네 하나님을 잊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신 4:23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신 6: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2:2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사사 시대에는 그 시대를 따라 갔습니다.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며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으로 부터 돌아섰습니다. 새롭게 하라고 했는데 타락하였습니다. 변화를 받으라고 했는데 따라가서 섬기고 절하고 즉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라고 했는데 이방인들의 행위와 패역한 []을 따랐습니다. 분별하라고 했는데 분별은 커녕 그치지 않고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이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지금 이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를, 그들의 삶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역사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노래하기] 6:5-9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 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자녀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네가 짖지 않는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주리라. 그러나 한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된 너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여러분은 이 말씀에 순종하고 계시나요?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일에 실패했습니다. 사사들도요. 그래서 그들의 삶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챌 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 가운데 미디안을 보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도 참으로 바쁘셔요. 미디안 보내랴..구산리사다임을 보내랴..모압 왕 에글론을 보내랴..하솔왕을 보내랴…보내고 나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 달래랴…은혜를 주시면서…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변덕스러운 성품때문에요..

 

조금 잘 나가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하나님은 ‘저녀석이 나를 잊으면 어떻하지 염려하고..’ ‘복을 주시면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하고…우리 하나님..벨도 좋으셔…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 오시나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어 가시는 방식이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직접 처리하시지 뭐하러 기드온 부르고, 기드온에게 무시당하고, 양털시험하고, 함께 한다는 약속도 하고, 바알 제단 제거하라고 하고, 성령을 부어서 나팔 불게 하고..참으로 교육 내용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교육시키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 민족을 교육시키기는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보세요. 요나라는 선지자는 이런 하나님의 심정에 불을 지릅니다. 요나서를 읽으면 내가라도 꿀밤을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다시 보면, 그 모습이 내 모습이더라구요..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신 일이 무엇이었다고 했죠? , 바알 산당 제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이 자신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바알을 제거하고 전쟁을 한다는 것은 다소 그들의 연약한 신앙에서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얻게 하시고 7 1절에 당당하게 그 이름을 적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 깨달으라고요.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무엇입니까? ‘두려워 떠는 자’를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미 모세 시대부터 하나님이 취하신 조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20:8 “두려어서 마음이 허약한 자들이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때때로 교회나 개인에게 문제가 찾아올 때 신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긍정적 반응, 즉 믿음의 반응 & 부적정 반응, 즉 불신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둘 다 그 반응에 누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데서는 긍정적으로 ‘누룩’을 말했습니다. 누룩은 밀가루 속에 들어가면 그대로 있지 않고 그 본래의 성질인 부풀어 내는 성질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믿음의 누룩’이 들어오면 믿음의 반응들이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 주변에 있는 신앙의 동료들의 마음을 격려해줍니다. 힘을 줍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낙심되게 합니다. 불평하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과 함께 있어보십시오. 여러분도 그의 마음과 같이 그렇게 됩니다. 이것이 신 20:8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의식-은 다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군대의 사기만 떨어뜨립니다. 우리도 영적인 군사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목사의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신자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성도들의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4: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Whatever does not proceed from faith is sin[ESV] Everything that does not come from faith is sin[NIV]

이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조치로 인해 떠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32,000-10,000으로 줄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수가 너무 적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는 경우는 성경의 역사에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취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누룩을..진리의 누룩을..복음의 누룩을..은혜의 누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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