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은혜 ( 39:1-6)

 

죠지 W. 트루엣 박사가 텍사스의 부유한 석유업자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는 박사를 옥상으로 인도하여 석유탑을 가리키며 '박사님 저것이 모두 내 것입니다. 25년 전 나는 맨손이었지만 이제는 당신이 보시다시피 끝도 없는 유전을 가지게 되었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동쪽의 가축 떼를 가르쳤고, 또 서쪽에 있는 처녀림을 가리키며 의기 양양하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때 잠자코 있던 박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하늘을 가리키며 '친구여, 이 방향으로는 얼마나 가졌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자는 부끄러움에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형통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과연 형통의 복은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5복을 훌륭한 아내를 맞이하는 것, 부유해 지는 것, 평안을 누리는 생활, 덕을 쌓는 일, 죽을 때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이 형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형통의 복과 원하는 복을 받고자 하는 신앙 안에서 복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현실 속에서 세상이 말하는 복과 말씀 안에서 복의 개념이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많은 것이 복의 척도로 생각하게 된다. 즉 다복(많은 것이 복)의 개념이다. 과연 많은 것이 복인가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복의 개념을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복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요셉의 절망은 결과적으로 형통의 축복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을 형통의 축복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들도 형통의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요셉이 받은 형통의 축복은 어떻게 받았는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배우자.

 

1.    하님께서 그의 가는 길은 인도하고 계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8-9) 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므로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노예로 팔아 버리므로 요셉이 끄던 꿈은 하나에 허상에 불과한 것이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요셉에게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들에 어리석은 생각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어 총리가 될 나라로 입성케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비록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노예로 잡혀 처절한 실패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먼 후일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총리가 되기 위한 기쁨의 입성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어리석은 인간의 꾀까지도 사용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심처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는 말씀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요셉의 애굽의 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사건사건 속에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굽에 노예가 되어 팔려간 집이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가정이었다. 보디발 장군은 애굽의 최상류층의 사람이며 정치에 중심부에 있는 인물이었다. 요셉이 그 가정에 모든 일을 하게 되므로 자연히 애굽의 상류층의 문화를 알게 되었고, 섬기는 방법, 권세를 누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기회의 시기였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는 길은 인도하고 만일 순조롭게 인도하신다면 누가 싫다고 하겠습니까? 고난의 길을 통과하게 하시면서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가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꾼으로 쓰시기 위하여 반드시 고난의 길을 통과하게 하신다. 신명기8:2, 5-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사람이 볼 때에 배신과 실패와 저주받은 삶의 길로 가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형통한 길로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의 손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의 손이라고 믿습니까? 저주와 고통의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 길은 내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을 믿는 자에게는 비록 당장은 좁고 협잡하지만 결과는 형통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지만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는 고통으로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하심을 믿을 때에 나는 모르지만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계획하지 못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29:26)

 

2.    훈련을 통해서 형통의 축복을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을 훈련하신다. 군대로 소집한 병사들은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으로는 절대적으로 강한 군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훈련을 시켜서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안일한 생각을 벗어 던지게 한다.  사람들도 강한 훈련에 자부심을 갖는다면,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훈련을 잘 통과한 성도들에게 형통케 하는 축복을 허락하심에 절대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믿음대로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현실에 좌절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집에서 믿었던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여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고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고 말했고, 시편66:10-12)에서는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물과 불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라고 고백했다.

 

요셉은 고난의 기간을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는 기간으로 믿었으며 그 고난의 기간에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알고 현실의 모든 일들을 최선을 다해 일했을 것입니다. 비록 노예의 일들이었지만 사람을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로 믿고 일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보디발 집안의 모든 일들이 요셉이 들어온 후로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났고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사실을 주인 보디발이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비록 현실은 힘들고 고독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위대하심을 보여준 것이다. 요셉의 모든 노력과 행하는 모든 일이 모든 이들에게 유익하게 되는 일을 본 보디발은 요셉이 늘 생활 속에서 섬기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함께 계심을 보았고, 이런 요셉을 신뢰하게 됨으로 그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맡기되 전권을 주어 가정을 돌아보는 가정 총무가 되게 하였다. 요셉이 가정 총무가 된 후에 요셉으로 인하여 축복은 현저하게 보디발의 가정에 미치고 들의 농작물까지 미쳤습니다. 요셉의 성공의 비결을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도우심에 있었습니다.

 

요셉과 같은 형통의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요셉처럼 현실의 고난이라는 훈련을 원망과 불평으로 받아드리지 맙시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하듯 최선을 다하여 일하십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의 축복을 더하심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과 환경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현재의 삶은 암담한 모습으로 절망들도 있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우리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함께 하심으로 이와 같은 축복으로 함께 하시고 형통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말하는 팔자타령이나 현재만을 보고 절망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만 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고 형통케 하심을 믿어야 하고 그 형통의 삶을 세상을 향하여 간증할 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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