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자 ( 40:1-8)

 

 

요셉은 항상 바닥에서 일어서는 인생이었습니다. 형들에게 고난당할 때에도 구덩이 속 바닥에 던져졌습니다. 마침 그 안에 물이 없어서 다행히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서 애굽에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그의 인생은 바닥에서 구사일생으로 일어난 인생입니다. 

이번에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했다는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감옥 tyIB; bayith라는 단어로, 토굴감옥이라는 뜻입니다. 굴을 깊이 파서 만든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구덩이입니다. 요셉은 또 구덩이 속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벗어나게 됩니다. 

오늘 저는 요셉의 인생을 통해, 아무리 시대가 불경기라고 해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자!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겠습니까? 바로 구덩이 속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덩이부터 다시 시작한 인생,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부터 다시 시작한 인생, 그것이 바로 요셉의 인생이었습니다. 우리도 요셉과 같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상황이 구덩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다시 구덩이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출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위기와 역경, 다시 말해 구덩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요셉과 같이 구덩이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빛을 발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어떤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구덩이에서 일어서는 힘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자]

현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는 원래 아버지 집에서 채색 옷을 입었습니다. 아주 호의호식했습니다.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 대개 이런 부잣집 아들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다 쓰러지고 깨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노예가 되었은데도 금방 적응을 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그는 가정 총무까지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곧바로 훌륭한 죄수가 됩니다. 금방 적응하는 것입니다. 39:22을 보세요.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그러니까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가서는 그 집의 모든 것을 다 감당했고, 감옥에 들어가서는 그곳에서도 모든 일을 다 처리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성실성이 있고 충성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성이 있고 충성됨이 있다 할지라도 적응 능력이 없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만큼 요셉은 적응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현실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사실, 어렵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현실이 어렵다는 것 아닙니까? 현실이 매혹적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현실은 대부분 어렵고, 벗어나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하면 누구나,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 가운데도 현실에 따라 믿음 생활이 바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 상황에 따라, 예배 생활이 바뀌는 신자가 있습니다. 현실 상황에 따라 찬양하는 모습이 바뀌는 신자가 있습니다. 현실 상황에 따라, 교회에서 교우들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교회에는 없는 줄 믿습니다. 저기 멀리 있는 교회 이야기죠

그런 마음이 혹시라도 있으시면, 요셉의 모습에 주목해 보세요. 보디발의 집에서도 총무역할을 감당했고, 감옥에서도 총무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신앙생활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말합니까?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요셉의 무엇이 주인으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까? 바로 tr;v' sharath였습니다.  39:23을 보십시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간수장은 요셉의 손에 맡긴 것을 살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셉이 어떻게 일을 처리했길래 간수장이 살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뢰를 한 것입니까? 바로 그의 삶은 tr;v' sharath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tr;v' sharath 섬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하나님과 함께 쓰면, 하나님을 섬긴다. 즉 하나님을 예배한다.라는 뜻이 되고, 사람과 함께 사용하면, 사람을 섬긴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요셉은 이 둘을 분리하여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 일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예배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의 삶 가운데 함께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복받을 짓을 해야 복을 받죠그의 삶은 현실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현실이 않좋아도 예배의 자리에 있었고, 기도의 자리에 있었고, 찬양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생활이 현실때문에 흐트려진 적이 없다 이말입니다. 이런 삶을 누가 보았습니까?  39:2절을 보세요.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며. 여러분의 아내가, 남편이, 주인이, 자녀가, 교우들이 여러분의 삶을, 현실을 보며, 하나님께서 00와 함께하시는 것 같아.라는 고백을 듣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언제 한번 손 보실 것 같아, 하나님께서 함께 하길 싫어하는 삶의 스타일은 것 같아, 하나님께서도 관심을 끊을 만 하다,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신 것 같아 혹시 이런 말을 듣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현실을 도피 대상으로 삼지 마세요. 적응 대상으로, 극복 대상으로 여기세요. 그래서 현실을 받아 들이고 적응해서 결국에는 요셉처럼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현실을 수용하니까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까! 바로 우리 선한목자교인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예배생활 흐트리지 마세요. 현실이 어렵다고 기도생활 흐트리지 마세요. 현실이 어렵다고 찬양하고 말씀보는 것 흐트리지 마세요.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요셉은 인생의 구덩이, 바닥에서 조차도 하나님께 하듯이 그의 삶의 한점도 흐트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과 우리가 다른 점입니다. 

요셉도 여러분처럼 과거에 상처받은 사람입니다. 요셉도 한때 잘 나갔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많은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하면서 버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 사람을 섬기는 삶, 현실의 삶에서 흐트림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초지일관의 신앙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사람들이 압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복을 주실거야, 하나님께서 쓰시고 싶은 00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 수 밖에 없는 신자야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지 않으실 00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아십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현실때문에 흐트려지면 안됩니다. 예배, 기도, 찬양, 말씀, 신앙생활이 흐트려지면 안됩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왜 나를 자꾸만 이렇게 험난한 환경 가운데로 이끌어가시나, 왜 내가 원하지 않는 답답한 환경으로 이끌어가시나 하고 의문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사실은 현실 적응훈련을 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군대에서도 군인을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훈련시킵니다. 바로 전천후 군인을 만드릭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해병대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믿음으로 타인을 돌보자]

요셉은 현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타인을 돌보고 살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적 습관 때문에 구덩이에서 나오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우리는 대개 자기가 고난 당하면 다른 사람의 문제는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내 문제애 매몰됩니다. 그런데 자기 문제에 매몰돼 있는 사람치고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풀어주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가운데 자기 문제가 풀릴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기 코가 석 인 상황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 구덩이 가운데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문제를 풀어주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40:5,6을 보세요.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아가 보니 그들에게 근신 빛이 있는지라.

그러니까 아침마다 요셉이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빛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근심의 빛이 있구나 싶으면, 먼저 질문하는 것입니다. 

얼굴에 근심 빛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요셉은 이처럼 다른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요셉이 구덩이에서, 바닥에서 나올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됩니다. 신자 중에는 나 문제 있습니다. 나에게 관심 좀 주세요. 누가 나에게 관심 좀 안주나…”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LA에는 관심가져 주지 않으면 삐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 생각뿐입니다. 

자기가 기분 좋으면 주변 사람도 다 기분이 좋아야 하고, 자기가 슬프면 주변 사람도 다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짜증나면 주변 사람이 다 자기의 짜증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중심이 온통 자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자세히 보세요. 그러다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신자는 이 교회에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구덩이에서 나오기 힘듭니다. 이런 신자가 우리 교회는 없는 줄 믿습니다. 저 멀리 LA에 있다고 합니다. 

요셉을 보시라구요. 훗날 실제로 관원장들이 근심하는 문제를 풀어주려 한 일이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는 계기다 되지 않습니까! 남을 도와 주니까 자신의 문제가 풀리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신자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쌓으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는 그래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응답의 법칙을 아는 자만이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한 마디로, 영적 타짜였습니다. Poker Face를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은 한 마디로 표정관리에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으면 그런 일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도 그렇죠..그런데 표정관리가 탁월한 사람의 표정까지도 읽을 정도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압니다. 우리도 그러 잖아요. 그거 어떻게 알았어?라고 말입니다. 사랑과 관심이 있으면 다 압니다. 우리 옆 사람 한 번 보세요. 어떻습니까? 손 한번 잡아주면서 내가 기도해 줄께. 힘들지..해 보세요. 

내 문제, 내 문제, 내 기도제목, 내 기도제목, 이것이 풀려야 돼, 이것이 풀려야 돼하면서 거기에만 매몰돼 있으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구덩이에 있는 시간이 굉장히 지체될 것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는 길,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변 사람들이 근심하는 문제, 기도제목을 가지고 내가 기도해 줄 때, 어느 순간인가 나의 구덩이에서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다 어렵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현실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자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한치라도 흐트리지 맙시다. 우리 교회 그런 교회만들어 보십시다. 그런 성도교제를 만드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다 같이 옆사람 손잡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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