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관계 없는 상태 ( 1:21-28)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하루의 사역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회당에서 안식일 예배 때 설교를 하셨고, 회당에서 만난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사역은 예수님을 아주 널리 알려지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권위있는 가르침과 행동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 날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이 회당제도가 언제 유대인의 일상생활 속에 정착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사시대나 왕정시대에도 지방에서는 간혹 집회 처소가 있기는 하였지만, 아마도 유대가 바벨론에 멸망당한 후 포로로 잡혀가서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며 함께 모여 유대인의 종교와 전통, 그리고 문화유산을 교육, 보존, 그리고 전수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 고토로 돌아온 이후에서 계속하여 각 지방에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설득력있는 견해입니다.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어서 예배 시 강론을 하며 인도하였고 참석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능한 유대인 Rabbi가 있으면 초대하여 설교를 부탁하곤 하였습니다. 이 날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은 설교하셨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들을 청중들은 한결같이 권위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일반적으로 가르쳤던 서기관들의 설교와 판이하게 비교되는 설교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적용된 구약의 가르침을 가르치셨습니다. 즉 복음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4:17-21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사야의 말씀을 찾으셔서 읽으신 후 이 글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에 대하여 가르치는 서기관과는 확실하게 차별성이 느껴집니다. 주님은 구약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구약이 자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즉 성경 예언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올바르게 연구를 하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일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귀신이라는 말이 백 번 남짓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복음서에 여든아홉 번이 나옵니다. 귀신 문제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서 첫 번째 기록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서 제일 먼저 기록된 성경입니다. 마가복음은 간결하고 힘이 있는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야기의 진행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1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매우 박력이 넘치는 선언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세례 요한 이야기, 세례 받으신 일, 사탄에게 시험 받으신 일, 잠깐씩 말하고 바로 전도활동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를 비롯해서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매우 숨 가쁘게 진행됩니다. 그 다음에 바로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낸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중요한 일들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경 모두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일들만 기록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마가복음은 더욱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1 13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시험 받은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다른 복음서들은 그 시험이 세 가지였고, 그 내용은 이런 것이고 예수님은 이렇게 물리쳤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같이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마가복음인데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은 이야기는 이렇게 자세하게, 그리고 여러 번 적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작해서, 34절에도 온 동네의 많은 귀신을 내쫓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9절 끝에도 갈릴리에 다니며 귀신들을 내쫓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5장에는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 사람에 들어간 더러운 군대 귀신들을 쫓아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귀신을 돼지에게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귀신 쫓아내는 이야기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두에 귀신 이야기는 복음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복음서 가운데에서도 마가복음에 제일 많이 나옵니다. 

도대체 귀신이 무엇인가?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이 이야기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오늘은 이 문제를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이 회당에서 열심히 가르치시고 사람들은 놀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웅성웅성했을 것입니다. 분위기가 깨졌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을 더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24절을 보세요. 귀신의 첫 마디는 나사렛 예수여 이었습니다. 그냥 예수여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여가 아니고 나사렛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귀신의 교활함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깎아내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교묘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은 시골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나사렛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했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고향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대뜸 뭐라고 했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2:45-46). 빌립이 나사렛을 빼고 그냥 예수니라했다면 나다나엘은 , 그래? 나도 좀 만나게 해 다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귀신은 이런 사실을 잘 이용해서 예수님에게는 당신, 나사렛 출신 아니오? 나사렛 출신인 천한 존재가 어떻게 구세주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거요? 기를 꺾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잘 이용해서 사람들에게는 저 사람은 나사렛 출신이오! 저 사람 말을 들을 필요 없어요!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은 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의 천국복음 전파 사역을 방해하려 합니다. 

 

귀신은 자신과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신이 자신의 과거와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음을 알고 먼저 선수 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런데 이 표현을 이해하려면 오래전 이야기로 잠시 올라가야 합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상관성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서,  3;15절 말씀이 누구에게서 성취가 되어지는지를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사역을 늘 방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확인하여 사전에 없애려고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역시도, 내가 인간적인 생각이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면 나는 알게 못하는 사이에 귀신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23절을 보면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회당은 학교의 역할도 하고, 예배당의 역할도 하고, 공중집회 장소 역할도 하고,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이 회당을 만들어 유대인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회당은 가버나움에 있었던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선교본부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가버나움에 가면 회당의 폐허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중요한 곳, 거룩한 곳, 한마디로 해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귀신이 있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를 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은 그 사람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귀신 안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온전히 귀신에 잡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귀신 들린이란 표현은 Unclean spirit-akathartos = without relationship to God입니다. 귀신은 어떤 사람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을 포로로 할 때 매우 철저하게 합니다. 어설프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더럽게 합니다. 파괴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없는 상태로 몰아갑니다. 하나님이 싫어지고요. 교회가 싫어집니다. 말씀이 싫어지고요. 성도와의 교제가 싫어지고요. 모든 영적인 것이 싫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삶이 망가집니다. 생각이 더러워집니다.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생각은 세력이며 영향력,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를 장악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복음과멀어지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생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까? 

 

세계 금융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들어가는 존 브룩만과 대니엘 카너먼은 그들의 공저 생각의 해부라는 책에서 위험한 생각들을 언급했습니다.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카네기 메론 대학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하버트 사이몬은 제한된 합리성 (bounded rationality)의 위험을 언급했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이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합리적이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한된 합리성을 근거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나마 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조금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담아 놓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은 위험한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 중에 성경에서 많이 사용되며 우리에게 하지 말라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바로, 염려과 걱정입니다. 하나님과 제일 멀어지게 하는 것이죠. 

 

사탄이 예수님을 방해하는 순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입니까? 마침이라는 부사가 그 단서를 주고 있습니다.  23절을 보세요. 마침은 헬라말로는 유두스인데 바로 그 시간에라는 뜻입니다. 새번역은 이 말을 그때에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때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치는 일을 처음 시작한 때입니다.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여기 가르치시매 마가복음에서 이 말은 이곳에 처음 나옵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은 전도, 교육, 치유입니다. 

 

전도는 14,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더라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치유는 오늘 본문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것, 그리고 31절의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 것에서 출발합니다. 교육, 가르치는 것은 바로 21절에서 시작됩니다. 이렇게 3대 사역 가운데 하나가 시작되는 때에 귀신은 방해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때에 어떤 때입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이 직업적으로,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당 안은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귀신은 방해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이 귀신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귀신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너 지금 좀 가만히 있어! 네가 가만히 있으면 나도 너를 쫓아내지 않을 테니 우리 서로 좋게 지내자 하지 않았습니다.나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르치고 금방 다른 곳으로 갈 테니까 그 때까지만 조용히 있어! 그러면 나도 못 본 척 할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호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셨습니다. 쫓아내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 예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 사이를 막는 것입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삼촌 마귀가 경험이 없는 조카 마귀에게 우리들을 어떻게 유혹하면 되는지를 전략을 가르쳐주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시간이 되시면 언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자, 케이치프 노이드가 사람에게는 6가지 감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도취", 이게 첫 번째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자아의 감옥이죠. 둘째는 "의심과 비판"의 감옥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 의심과 비판꺼리이고 의심과 비판할 것만 보입니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죠. "절망" 도 감옥입니다. 그 감옥에 한번 갇히면 희망은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넷째 감옥은 "과거지향" 의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가 좋았죠,”“왕년에 나는...이러면서 현재와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갈 수 없겠죠. 다섯째 감옥은 "선망"의 감옥이라 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안 보이고 못 가진 것만 보이는 겁니다. 부러워하다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다가 다 지나가버리고 말죠. 마지막 감옥은 질투 라고 했습니다. 남이 잘 되는 모습을 좋은 마음으로 볼 수가 없어서 힘든 마음을 말합니다. 대부분 우리 안에 이런 감옥이 한두 개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곱 번째 감옥을 말하라면 부정의 감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감옥은 앞에서 말한 여섯 가지 감옥을 다 포함하는 큰 감옥이라 할 수 있겠죠. 이미 마음이 부정적으로 굳어 있으면 당연히 위와 같은 것들을 다 포함할 것이고 그것들을 솟아나게 할 테니까요.

 

우리는 이 귀신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세력에 대해서 단호해야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렇게 특별한 귀신이 예수님의 공생애 초두에 등장하여 예수님의 권세를 비난하고 간교하게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사탄도 잘 압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안 믿고,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는지를 말입니다.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전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기분좋고, 유익이 될 것 같은 것, 편한 쪽으로 믿습니다. 

 

선악과 먹지말라, 먹어라, 먹어도 산다, 먹으면 죽는다, 어떻습니까? 사람은 창조물이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졌다.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된 것이다. 어느 쪽이 믿기 좋으세요. 하나님이 없었으면 하는 하는 우리 인간은요. 니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말씀드린 것처럼요.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내가 신이 아닌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만약에 신이 없다면, 내가 내 인생을 다 주관하고 살아야 하는데, 살아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의지할 대상도 딱히 없구요. 그러다 보니, 허무해지고, 허탈해지고, 그럽니다. 그 이상의 감정은 각자가 잘 알겠지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우리를 늘 유혹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전략을 바꾸어서요. 예수 안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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