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질서를 위한 한적한 곳이 있는가 (막 1:35)

 

한주간 열병을 회복되셨는지요? 타인에게든, 내 자신에든…

내 인생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의 인생에는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하고자 합니다. 성경 속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쉬지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7),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로마서 12:1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로새서 4:2) 등 많은 구절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자주 잊혀지거나 뒤로 밀려 나곤 합니다. 

 

1. 예수님 삶 속의 기도: 마가복음 1:35

 

지난 주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바쁜 사역일정을 보았습니다. 21절은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침을 전파하시는 모습, 그리고 마귀를 퇴취하시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 (28절). 회당을 나선 후 예수께서는 시몬의 집으로 향하시어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셨습니다 (30-31절). 예수께서는 이 날 또한 바쁜 하루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더군다나 다음 날은 먼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었으며 예수의 소문이 사방에 퍼져 다음 날 또한 많은 인파에 쫒겨 바쁜 하루를 보낼 것이 분명했습니다. 36-37절은 예수를 찾는 많은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치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음 날이 아주 바쁜 하루가 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기도 할 시간이 많이 없을 것을 예감하시고 예수께서는 그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더욱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 하루를 시작하기에 참으로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저 생각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신 것이 아니라, 기도를 우선적으로 중요시 여기셨기에 그러한 의지 또한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여부가 아니라 우선순위입니다. 왜 기도하는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에서 볼 수 있듯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2. 예수님 삶 속의 기도: 누가복음 5:15-16

 

다른 복음서를 잠시 볼까요? 누가복음 5장 12절부터 13절은 간질병을 앓고 있던 자가 치유를 받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 뒤를 잇는 15절 말씀은 예수께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을 피해 물러나셨으나 끊임없는 인파가 치유를 받기 위해 예수를 향해 몰려들었다고 이야기 합니다(눅 5:15). 눅 5: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이렇듯 예수께서는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바쁜 나날을 보내셨니다. 요즘 보통 사람들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기 쉽습니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께서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한적한 곳에 혼자 물러가사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짧은 구절을 통해서도 예수께서 기도를 얼마나 중요시 여기셨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구절을 원문에서 읽어보면 문법적인 시제를 통해 예수께서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셨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번역문은 간단한 기본적인 시제를 사용하여 마치 예수께서 과거에 한 번쯤 이와 같은 행동을 하셨던 것 같이 받아드려지기 쉬우나 예수께서는 반복적으로 한적한 곳으로 몸을 피해 기도를 드리셨다. 좀 더 정확한 번역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눅 5: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매번]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이렇듯 15-16절 말씀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과거에 단 한 번만 일어났던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인파에 쫒겨 바쁜 나날을 보내셨으나 이 와중에도 항상 기도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 제목만 보아도 은혜가 은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 할 시간이 충분했던 이유는,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이에 적당한 우선 순위를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여러 가지 활동에 시간을 투자 합니다. 시간이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는 하루에 24시간이라는 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기도 생활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큰 우선 순위를 차지하느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 기도가 우선 순위인지 혹은 모든 하루 일과(일, 취침, 학교, TV 시청 등)를 마친 후 남는 시간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남는 시간”을 투자하지말고, 기도를 위한 시간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이를 위한 시간을 비워둘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 삶 속의 기도: 마태복음 14:23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담은 다음 구절은 마태복음 14장 말씀입니다. 이 날은 시작부터 아주 슬픈 날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의 사형 소식을 접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에 대한 설명은 마 1-11절 말씀 참고) 마 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마 14: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마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여기서 “즉시”란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해 주신 후를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을 “제촉”하셨다고 하는데 여기서 “제촉”이란 그리스어에서 “anagkazo”라는 단어의 과거 시제로서 “억지로라도 어떠한 일을 시키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신약 성서에서 아홉 번이나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달가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람들 또한 돌려보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을 “제촉”하시어 그들을 멀리 떨어뜨려 보냈을까요? 그 이유는 23절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그 이유는 바로 예수께서 혼자 머물러 “기도”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하루에서 기도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 제자들과 인파를 재촉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는 단연 예수님의 삶 속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지켰습니다. 

 

4. 예수님 삶 속의 기도: 누가복음 6:12-13

 

눅 6장에서 예수님의 기도 생활의 중요성은 물론 기도 내용을 눈여겨 보기 원합니다. 정확한 기도 제목은 알 수 없지만,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눅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밤이 새도록, 베드도가 떠오른다 ㅎㅎ)

 

예수께서는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철야를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야곱과는 대조적이죠) 정확히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그 다음 날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리셨음에 미뤄보아 열 두 제자의 임명이 기도 제목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결정을 내리기 전 하나님께 기도를 할 필요성을 느끼셨다면, 우리들 또한 이런저런 선택을 하기 전 하나님께 기도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자신의 제한된 지식으로 결정에 도달하기보다 하나님께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간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며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5. 예수님 삶 속의 기도: 마태복음 26:36-44

 

한걸을 더 옮겨 볼까요. 마 26장 36절부터 44절의 말씀입니다. 이 부분은 예수께서 구속되어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 26:36-3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께서 슬퍼하신 이유는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지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입다. 이는 예수께 아주 힘든 시기였음과 동시에 우리에게 치명적인 일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달린 예수님의 희생이 이루어진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어려움 가운데 어떻게 하시나요? 

 

마 26:39-44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인류 구원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기도를 무려 세 번이나 드렸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좀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먼저 자신의 희망 사항을 하나님께 내려 놓았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잠깐 우리의 기도의 현실을 보면, (정확하게 말하면 기도도 하지 않지만, 어쩔수 없이 기도를 할 경우를 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희망 사항을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꼭 이루어주셔야 됨은 물론, 우리가 원하는 시기와 방법에 맞추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셔야 한다고 오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성숙해지 바랍니다. 

 

나의 희망사항을 잠시 내려놓고,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처럼, 내 삶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응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기도응답이 안 되는 것도 응답입니다. 

 

예수님의 보기로 돌아가 보자면, 비록 예수께서 기도를 통해 간구한 것들이 이루어질 수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무시하신 것을 아니다. 누가복음은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기록을 제공합니다. 눅 22:41-43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더해주기 위해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 자신이 희망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압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에 비추어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8:3-11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께서 원하셨던 가장 큰 희망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었습니다. 하나님의 원함,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인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원함이 있고, 

1)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함이 무엇인지 알아, 2) 하나님의 뜻인 진리의 말씀을 구하며, 3) 진리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반응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6. 예수님 삶 속의 기도: 결말

 

살펴 볼 성경 구절이 더 많이 있지만, 지금까지 잠시 살펴 본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 기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 제자들과 인파를 제촉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해 결정에 도달하고, 어려움을 극복하셨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기도하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예수께서는 바쁜 와중에도 기도할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뜻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따르라”는 세상적인 조언과는 반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왜 기도하는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에서 볼 수 있듯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에 ‘기도’가 빠진 책이 한 권도 없습니다. 기도하다는 ‘프로슈코마이’입니다. ‘~~를 향하여 나아가서 아뢰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한 주간 데이트를 하시기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