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보다 나은 것 ( 4:6-7)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화를 거는 것으로만 사용하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이제는 수많은 일들을 그것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곧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어릴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릴 때는 부모님이 주시는 밥 먹고 입으라는 옷 입고 주어진 일, 공부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하고 관계가 더 넓어지고 이것 저것 신경 쓸 일이 참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신경을 안 쓰고 살면 갑자기 어떠한 상황에 닥쳤을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삶에 대한 고민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가 책임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걱정하고 염려하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그 문제에대한 해결은 고사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 상황에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염려, 걱정, 근심이라는 것은 신앙을 흔드는이유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벗어야 할 것’과 ‘입어야 할 것’이 있고,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벗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은 ‘염려’이고, 입어야 할 것, 취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그렇게 할 때 ‘평강’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1.    우리가 벗을 것 – 염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6) 염려를 멈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 어떤 상황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해결해야 할 일은 있지만,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말하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가까우심이라”(5절 끝부분) 때문입니다. 우리 가까이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우리의 ‘염려 제목들’을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염려하지 말하고 하실까요? 염려는 무엇이 문제입니까?염려의 문제는 첫째로 생산성의 문제입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다른 성경 사본에는 “키”라는 단어가 “목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목숨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것을 가지고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것입니다. 헛된 데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놓고 악셀을 밟으면서 차가 나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6:30).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고 여전히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있다가 버려지는 들풀은 내가 걸어가며 밟았는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찮은 것도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것보다 더 영광스럽게 입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것들도 돌보고 계시고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너희를 붙들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32). 여기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필히 염려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왜 염려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적다는 말입니다.

 

2.    우리가 입을 것 – 기도

“모든 일”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범위는 모든 상황, 모든 일입니다. 우리가염려할 만한 상황은 없습니다. 좋은 것이든, 슬픈 것이든, 힘든 것이든, 무엇이든지 아뢰라고 했습니다. 다 기도제목으로 삼고 평강의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문제와 염려가 있으며 우리 안에 평강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평강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문제를 나아가면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순종이며 신뢰인 것입니다. 

 

아뢰는 방법은 “기도”와 “간구”입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도이고, 간구는 간절히 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와 간구를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의심이나 회의가 아닌 감사입니다. 이것은 응답해 주실 것에 대한 감사도 되지만,보다 포괄적이 의미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해주신 것과 앞으로 해주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걱정스럽고 두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이이 상황을 허락하셨다,라는 신뢰의 태도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내가 볼 때 이것은 악인 것 같이 느껴지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되더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바르고 건강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이것은 ‘드러내라’,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의 기도 내용을 모르시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드러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지, 우리가 어떤 일로 힘든지 모르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자신이 알도록 그것을 아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와서 끊임없이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 받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필요를 아뢰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과 ‘아뢰는 것’의 결정적 차이는, 우리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마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3.    우리에게 주신 약속 – 하나님의 평강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은 너무 힘들고 두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안에서 찬양하고기도하며 평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마음과 생각을(이것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되어있다.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우글거린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지키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이해를 뛰어넘는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지키신다”는 말은 아군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을 가리키는 군대용어입니다. 우리의 염려를 내려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여전히 나를 향한 공격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우리의 기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반드시 승리하도록 지켜주십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평강이 경험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4.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염려하지 말고 말만 해라, 내가 평안을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호기로운 남편은 아내에게 ‘나만 믿고 따라 와라’고 프로포즈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약속을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계십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단지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신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계신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염려하고 걱정하지 마시고, 그 대신에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필요를 아뢰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127:2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입니다.  127: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집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성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입니다. 나의 늦게 우우며 일찍 일어남이 집과 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기도하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염려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리하면 우리의 지각/명철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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