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은 없습니다 ( 1:3-11)

 

 

교회의 생성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그리고 신자의 태동 역시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전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과 상황 속에서 교회와 신자는 탄생됩니다. 오늘 빌립보 교회의 탄생 그리고 바울과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1.    빌립보 교회의 생성과 바울의 만남

1)   성령에 인도하심에 반응 결과 : 빌립보 교회 탄생 (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복음전파가 사명] 하시거는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신앙의 원리]

(1)          영혼들을 위해서 모든 열정을 쏟는 바울 :  19:10,  4:35, 딤전 2:4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늘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2)          주님의 뜻을 좇아서 행하는 바울 :  7:21,  5:29,  5:29

바울은 무슨 일을 결정할 때, 이제는 자신의 감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물어서 진행했습니다.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물어서 진행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관점에서는 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복음을 계속 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으로 일정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애쓰다는 단어는 페이라조, peirazo”는 최선을 다하면서 끝임없이 생각하고 고민을 했다는 것입니다[어떻게 하면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경우에 사용]. 애쓴 이유는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몸부림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적 삶에서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일행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아시아에서 더 이상 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는 바울 :  18:14,  42:2,  1:37

그런 뜻을 주실 때에는 감당할 힘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4)          주의 뜻을 분별하는 신앙 :  7:21,  12:1-2,  5:17

 

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역사의 인물들

(1)         윌리암캐리

(2)         언더우드

(3)         링컨

(4)         그리고 나

(5)         이제 우리

 

2)   빌립보 교회의 생성 과정 : 모든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 만남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지난 세월 만남을 돌아 보면 그 만남이 은혜의 통로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1)         루디아가 복음을 접함

(2)         귀신들린 여종을 해방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힘

(3)         간수가 예수를 믿음

 루디아, 귀신들린 여인, 간수 가정으로 시작된 교회가 빌립보 교회다.

 

3.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

1)   사모하고 애뜻한 마음

2)   늘 기도함 : 내가 늘 기도하는 대상이 있는가? 

생각할 때마다 생각은 관심입니다. 기도는 관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2-4을 보면,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늘 마음 속에 자신의 고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국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묻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듣자, 곧바로 그것을 자신의 기도제목으로 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크리스찬의 모습입니다.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과정과 결과를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각 속에 있는 관심사 혹은 관심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3)   감사의 내용들이 떠오르는 교인들

누군가를 생각하면 행복하고 감사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떠올린다면 나 역시 그에게 있어 하나님 그 사람과의 만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분의 인생은 얼마나 복될까요? 

 

4)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쁨이 넘치는 교인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기쁨이 마음 가운데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실 때 어떤 마음 일 것 같으신가요?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 복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배경은 하나님이 그들을 바울과 묶어 주셨는데, 복음으로 묶으셨고 복음의 가장 중묘한 내용이 은혜로 묶여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복음으로 불러낸 공동체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은혜로 묶어논 관계라, 모든 공동체의 회원들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의 독특한 특성이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사화의 다른 기관과 다르다. 

 

빌립보 교회는 처음으로 마게도니야[유럽] 지방에 세운 교회요, 그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배경이 기독교와 아무런 끈이 닿아 있지 않은 그런 배경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우상이 있고 그 우상을 섬기는 반기독교적 정신이 사회와 정치와 모든 것을 힘을 붙잡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을 불러 놓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감옥에 가둬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에서는 마찬가지로 바울이 감옥에 갖힌 것에 대하여 많은 낙심이 있었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 배경 속에서 이 편지가 감사와 기쁨을 논하고 있고, 은혜를 논하고 있고, 확신을 논하고 있고, 사랑을 논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 주도권, 결정권이 빌립보 교회나 사도바울에게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능력 위에 우리가 관계를 맺게 되었고 부름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는데,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하는 일에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동일한 형편에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이냐? 현실적인 도전 앞에서 우리는 답해야 됩니다. "너는 물러설 수 있느냐? 망신을 당할 수 있느냐? 오해를 받을 수 있느냐? 억울할 수 있느냐?" 라는 물음 앞에 답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우리 현실이 늘 이 문제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 주일마다 오는 반복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생각해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신앙적으로 살 틈이 없었습니다.

오늘 다시 주일을 맞아서 와보니까 너무나 생각없이 산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한 몸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같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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