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런 식으로 조언하지 마세요  ( 4:6-7)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 중의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노구의 몸으로 쓴 편지입니다. 더욱이 바울은 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후, 얼마 안 있다가 참수형을 당해서 죽게 됩니다. 말하자면 그의 유언인 거지요. 바울서신13권의 중에서 가장 나중에, 죽기 직전에 써진 편지입니다. 어쩌면 빌립보 교인들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바울은 이미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쓸 때 그는 잉크를 찍어 쓴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 글자 한 글자 피를 찍어 쓴 것과 같습니다. 그 얘기는 이미 자기 죽음이 임박해 온 것을 알고, 자기의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한 자 한 자를 수를 놓듯이 박았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빌립보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너무나 소중한 그의 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비장한 글들로 가득 찼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6절 바로 전에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써 놓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런 말씀을 써 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오늘 본문이 나오는데, 뭡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걱정이나 염려가 많겠습니까? 물론 그는 죽음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사나 죽으나 자기는 주의 것이라고 공언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천국가는 것과는 별개로, 자기의 사역을 두고도 걱정이 많을 수 있을 겁니다. “디모데, 이 친구가 내 뒤를 이어서 잘 할 수 있을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내 죽은 뒤에도 그렇게 젊은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로마교회는 어떡하지, 핍박이 심해질 텐데.. 에베소 교회는 또 어떻고…”  등등 온갖 잡다한 걱정과 염려가 많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오늘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가? 오늘 우리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한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조금은 염려해도 좋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사람은요, 염려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 같아요. 정말 염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더군다나 요즘처럼 세상살이가 점점 어려워 질 때는 그 염려가 마치 우리의 호흡인 것처럼 우리에게 딱 붙어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근심 걱정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 다 염려합니다. 거기다가 요즘은 어떻습니까? 옛날엔 나나 내 가족, 잘 해봐야 내 동네 정도만 걱정하면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온 지구 전체가 세계촌이 된 겁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상이변이 생기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이런 것들을 우리가 직접 느끼는 거예요. 볼티모어 폭동, 네팔 지진, 중동전쟁, 경제불황이니… 이런 것들이 이제는 강 건너 등불이 아닌 거예요. 오만가지 걱정을 다 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서 2:23에 보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이 헛되도다” 그랬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뭐냐? 일평생 근심이요 수고요 슬픔이라. 근심, 수고, 슬픔 … 이러면 인생이 정리된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걱정이 없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도 참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이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딴 세상 말씀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마음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괜한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의 부도를 내시는 분이 절대 아니예요. 하나님이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셨을 때는 거기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겁니다. 오늘 그게 뭔지 한 번 여러분과 같이 그 얘기를 나누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염려를 넘어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계세요. 첫째가 뭐냐? 선택입니다. 무슨 선택이냐? 염려할 거냐? 기도할 거냐? 그것은 선택이라는 거예요. 오늘 말씀을 한 번 보세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에 오직 기도와 간구로 아뢰라 그 뜻이거든요. 염려가 생기면요, 염려를 할 것이냐 기도를 할 것이냐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예요. 둘을 놓고 선택하라. 그러나 이것은 선택인 동시에 명령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라는 것이죠.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죠..

만약에 염려를 뿌리치고 기도하면 염려를 극복할 것이요. 만약 기도를 뿌리치고 염려를 하면 계속 염려 속에 빠져있게 된다는 겁니다. 염려가 올 때 기도를 선택하면, 염려는 극복이 되지만, 염려가 올 때 기도 대신 그냥 염려를 선택하면, 우리는 염려에 끌려가게 되고 결국은 염려에 질식해 버릴 거라는 거지요. 물론 염려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염려를 아예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염려가 안됩니까? 그래서 우리는 염려의 정체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염려는 기아를 중립에 놓고 악셀을 밟는 것 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여러분! 운전하시는 분들 한 번 대답해 보세요? 기어를 중립에 놓고 악셀레이터를 밟으면 어떻게 됩니까? 

소리는 요란합니다. 엔진은 나 죽는다고 돌아갑니다. 기름은 펑펑 들어갑니다. 그러나 차는 1cm도 안 나갑니다. 에너지만 소비하고 소음만 커집니다. 염려가 뭐냐? 꼭 기어를 중립에 놓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것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에너지만 소모해 버립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 쓸모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대체용법을 주신 겁니다. 그게 뭐예요? 기도입니다. 염려가 오면 기도해라 그겁니다. 여러분! 기도는 자기체면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자녀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무나 기도하나요? 아무나 기도하면 그 기도 다 들어 주시나요?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수 믿고,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만 들어주십니다. 기도는 예수믿는 우리들의 특권이예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무슨 권리로 기도하겠어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시행하리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 말씀을 믿고 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염려가 올 때 기도하면 기도하는 중에 염려가 극복이 되는 겁니다. 

기도하다 보면 염려는 온데 간데 없이 없어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선택하세요. 기도를 선택하실래요? 염려를 선택하실래요? 기도를 선택하실래요? 침대를 선택하실래요? 모두가 다 염려 대신 기도를 택하셔서 기도하는 가운데 염려가 사라지는 그런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염려를 극복하는 것은 뭐냐? 발견입니다. 뭐에 대한 발견이냐? (다같이 6절을 다시 한 번 봉독하십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뭘 발견하라구요?  네 감사입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길은요, 다른 게 아니라 감사를 발견하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시다가 그런 거 체험하시쟎아요?

염려가 돼고 걱정이 되서 기도를 했더니, 어느 순간 성령께서 자꾸만 감사를 시키시는 거예요.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그래서 정말 기도하다 보니까 감사가 발견이 되는 겁니다. 염려가 없는 게 아니예요. 염려가 있지만 감사한 거예요. 

여러분!  기억하세요! 감사하는 사람은요 염려가 이기질 못해요. 태산처럼 염려가 많더라도, 기도하면서 감사를 발견하면요 염려가 어느 순간 다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그게 발견이라는 거예요. 기도하면 감사거리가 생기고 그렇게 감사를 자꾸드리다 보면 염려가 온 데 간 데 없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오리농장에 불난 것 보셨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한 번 봤는데, 오리농장에 한 번 불이 나면 대책이 없습니다. 몇 백 마리든, 몇 천 마리든 다 타 죽는 거예요. 외숙의 오리농장도, 그 수만 마리 되는 오리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거예요. 오리들이 다 오리구이가  된 겁니다. 그래서 그 불이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외숙모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하나님께 그랬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행복한 게 배가 아프세요? 우리가 헌금을 안 했나요, 봉사를 안 했나요? 감사를 안 했나요? 왜 우리한테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요? 말씀 좀 해 보세요 하나님! 막 울부짖으면서 그렇게 따졌대요. 그러는 중에 농장축사는 다 타 가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그때 마음 속에 세미한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얘야! 네가 참 불평이 많구나. 그런데 내가 하나 물어보자! 만약 오늘 저녁에 네 남편이 서울에 안 가고 여기 있었다면, 네 남편 기질로 봐서 어땠을 것 같냐?”아! 그 음성을 듣고 보니까  외숙이 아주 강직했었거든요- 그런 생각이 들더래요. “제 남편은 아마도 한 마리라도 건지려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갔을 겁니다” 

“그러면 네 남편 어떻게 됐겠냐? 분명히 뭔 일 생겼겠지, 그럼 네 남편이 더 중요하냐, 오리가 더 중요하냐?” ”아이고 하나님! 오리 수천 마리라도 내 남편하고는 안 바꿔요” 아! 그걸 깨닫고 나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남편 없을 때 불나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는 거얘요. 세월이 지난 지금, 그 가정이 어떻게 사느냐? “그때 오리농장은 망했지만 그 뒤로 했던 일들은 다 잘 돼서 저희는 너무너무 행복해요. 아마 그 때 하나님이 저희들의 감사를 받으셨던 것 같다”고 합니다.

기도는요, 감사거리를 보게 하는 현미경인 겁니다. 기도는 감사거리를 당겨서 크게 보게 하는 망원경이예요. 

여러분! 염려를 극복하고 싶으세요? 그러면 기도로 감사를 발견하세요. 감사기도를 드리면 염려는 옆으로 밀려가 버립니다. 감사기도를 해 보세요. 그러면 염려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사실 감사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감사거리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우리의 지면이 모자랄 겁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알고보면 그게 다 감사거리입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것은 발견하는 겁니다. 체험하는 신앙이 되십시다. ^^

복습해 볼까요? 첫째는 뭐라구요? 선택이라 그랬지요. 기도와 염려 중에 뭘 선택해야 합니까? 둘째는 발견이라 그랬습니다. 뭘 발견해야 합니까? , 감사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구요? (7절 다같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여전히 염려거리는 남아 있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appetite로 평강을 주신다는 거예요. Appetite는 메인 메뉴에 앞서서 입 맛을 돋구기 위해 먼저 주는 전식 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이 평강, 이게 appetite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말씀이지 모릅니다.

염려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신다는 거예요. 주님이 그러셨지요? 내가 주는 평안은 사람이 주는 것과 다르다. 기도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호수처럼 잔잔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건 기분도 아니고 상상도 아닙니다. 체험인 거예요

실제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인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려 대신 기도를 선택하고, 감사거리를 발견하고 감사기도를 드리고, 집중해서 기도하면, 아무리 큰 염려라 할지라도 염려는 물러갑니다. 또한 기도에 대한 응답은 주님의 시간에 맞쳐 주십니다. 

염려와 믿음의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염려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요, 믿음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그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 한 번 바꿔봅시다. “염려의 시작은 기도의 끝이요, 기도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구든 염려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염려 대신 기도를 선택하세요. 미루지 마세요. 당장 기도를 시작하세요. 또 기도를 하시되 집중적으로 기도하세요. 그러면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그 감사함으로 기도하세요. 그러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찾아 올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어떠한 염려가 와도 우리를 하나님의 평강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염려는 끝나고 평강의 삶이 시작될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염려를 염려하지 마세요. 염려 대신 기도를 선택하고, 감사로 기도하고, 집중해서 기도하면 염려는 물러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이렇게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염려 때문에 성숙해졌어, 나는 염려 때문에 기도한 사람이야. 나는 염려 때문에 감사를 찾은 사람이야. 나는 염려 때문에 하나님의 평강을 맛 본 사람이야! 그렇게 간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니다.

Afraid Nervous  십자가[신앙]이 흔들림: X  Impossible 

 Out of control  Useless  Stressful 

다시 한 번 오늘의 본문을 암송하십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평생 살아 있어서 “염려 끝! 행복 시작!” 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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