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관점의 변화 ( 7:15-25)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이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지금 이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를, 그들의 삶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역사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이 말씀에 순종하고 계시나요?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일에 실패했습니다. 사사들도요. 그래서 그들의 삶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챌 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 가운데 미디안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신 일이 무엇이었다고 했죠? , 바알 산당 제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이 자신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바알을 제거하고 전쟁을 한다는 것은 다소 그들의 그릇된 신앙에서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얻게 하시고 7 1절에 당당하게 그 이름을 적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 깨달으라고요. 아브라함을 보라. 우상을 섬기는 것 뿐아니라, 만드는 자였다. 우리를 끊임없이 우상으로부터 분리를 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무엇입니까? ‘두려워 떠는 자’를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즉 자아 숭배(7:2)를 깨 버리시기 위해 이스라엘 군사를 줄이고 줄여서 300명만 남기십니다. 그 숫자는 이스라엘 측에서는 절대로 어떤 계획이나 전략을 세울 수 없는 작은 숫자입니다. 그 숫자로는 어떤 도모나 시도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그 자리로 끌고 가신 것입니다. 

 

왜요? 그 자리에서는 자기 힘으로 그 어떤 것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300의 자리는 초라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자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 300의 자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도우심을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진짜 힘이시며, 진짜 능력이신 하나님이 모두 하실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으 존재방식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깊이 경험하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관점입니다. 인간적인 관점, 세상적인 관점이 영적인 관점,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뀐다는 말이빈다. 누가 예배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관점이 바뀌는 사람이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관점의 변화”(a change of view)

 

 7:15을 보면,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뭐가 바뀌었습니까? ,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300명으로 13 5천명을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그의 인간적인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여호와(hw"hoy>): the existing One’ ‘the Creator’ ‘the Almighty’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자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믿음의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방법이 좋아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 교회사는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좋은 방법을 찾기 이전에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충만하면 세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이리석게 보임이요,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여기서 ‘그것들’은 13절에 나오는 ‘영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육에 속한 사람의 육은 ‘yuciko,j(퓨슈키토스) the man controlled by breath/air이며, 반면에 영에 속한 사람의 영은 pneu/ma(퓨뉴마) the man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란 뜻입니다. 관점이 바뀐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기 즉 세상에 의해서 그의 관점이 형성된 사람은 거듭남으로 성령에 의해 관점이 형성된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충만하면, 믿음으로 눈으로 보고, 결정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을 만들었다. 이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환경을 조작하여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형성한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면, 스키너는 자신의 방법으로, 범죄가 없는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 방법은 세상의 모든 신생아들의 교육을 자신에게 맡겨주면, 규칙을 잘 지키고, 배려하는 행동을 보이면 보상을 주고, 규칙을 안 지키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처벌을 주는 방식으로 유아들을 양육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가상 소설 ‘Walden Two’에서, 스키너는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면 범죄가 없을 것이라는 가상소설을 썼습니다. 더 나아가 스키너는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을 반영한 기계를 만들었으나, 아버지로서는 실패스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그의 자녀들을 통해 듣게 된다. 

 

여기서 나온 교육이론이 한때 한국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니 지금도 이 학습이론을 가지고 학교나 학원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육공학을 통해서 그 결과를 당장 이끌어 내려고 인문학+공학(과학적방법)을 붙혀서 해보려고 

 

이처럼, 우리는 좋은 방법을 가지면 내가 원하는 어떤 귀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특별히 자녀에게 말입니다. 좋은 방법, 좋은 교육법을 가지고 그대로 하면, 내가 원하는 아이, 사회가 원하는 기적적인 아이로 나올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스키너는 그의 책 ‘웰던 투’에서 인간과 동물은 그 행동양식에 있어서 다른 무엇, 너머의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자녀의 실험을 통해서 알아냈습니다. 참으로 귀한 결과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연구업적에 귀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험 대상으로 참여했던 그의 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 좋은 방법인 줄 알고 실험을 했는데, 그것도 자신의 아들에게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에는 이런 일을 안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인간이 누구입니까? 아담의 후손입니다. 이는 바로 죄인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좋은 방법으로 교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좋은 것을 많이 해주게 되면, 쉬운 말로 ‘올라탑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 오릅니다.’ 여러분이 일주일만 자녀에게 좋은 방법으로 잘 해 줘보십시오. 자녀들이 내 자존심을 넘어섭니다. 

 

그러나 실험은 하지 마십시오. 일주일이라는 교육기간이 아깝지 않습니까? 뻔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 세월이 길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Summer Hill이라는 학교에 대한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만 있지 어떤 수업도 태두리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사는 존배할 뿐이고 어떤 의문이 생기면 그때 교사에게 가서 물으면 답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입니다. 교사에게는 어떤 것을 말할 때 good or bad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결정권은 아이입니다. 

 

학교의 철학적 배경을 보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로크의 ‘백지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good or bad와는 상관없이 white paper’라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기 시작할 때 ‘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쓰여지거나, 그려지는 것이 바로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 이와 쌍벽이룬 사람이 바로 루소입니다. 그의 책 ‘에밀’에서 인간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참다운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교육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나를 키운 것은 바람이었다.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에 대한 정면 대적인 것입니다. 18세기의 인간의 타락을 한층 더 앞당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떠나면 인간이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고 합니다. 니체, 초월자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은 죽었다, 아니 죽어야 한다.’고 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