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끈 ( 42:25-28)

 

기도할 때마다 고민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면 한 번에 다 해결해 주세요. 조금 불편합니다.

은혜의 끈

나는 요셉이 형들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우리는 형들을 다루는 요셉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요셉이 형들을 보낼 때는 조건이 있었다.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베냐민의 의미가 무엇인가? 왜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하는가? 사실 베냐민이나 시므온은 은혜의 끈, 사랑의 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 끈으로 전 가족을 구원시키려는 것이 요셉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을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두신다. 그것이 은혜의 끈이라는 것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우리는 애타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그 문제를 풀려고 한다. 그런데 그 작은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 전체를 건져내는 능력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주로 사랑의 끈 또는 은혜의 끈이라고 표현한다. 

다 풀린다고 좋은 건 아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육체의 가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은혜의 끈이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게 되었다. 언제나 자고(스스로 높임)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한다. 

고후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은혜의 끈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도 바울과 같이 감사할 수 있다. 요셉은 왜 베냐민을 걸고 넘어가는가? 왜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는가? 그것 때문에 돌아왔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은혜의 끈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서 은혜의 끈일 수도 있는 가난, 무지,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조건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 문제가 하나도 없기를 바란다. 종종 가난하지도 않고, 무지하도 않고, 병도 없고, 비교적 잘 풀리는 사람들을 본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예배를 잘 드릴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그의  삶에서 헌신과 봉사와 선교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때는 참 복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복을 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보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렸다. 많은 문제가 잘 풀렸다. 그랬더니 감사했는가? 오히려 오만해지고 탐욕에 빠지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했는가? 이럴 때 나는 쉽게 풀리지 않는 은혜의 끈을 좀 남겨주셔야 그 끈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무엇이 참 복인가

우리에게도 해결되지 않는 결정적인 문제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온전하지 못한 건강의 문제로 그 한 가지 끈에 매달려서 그의 삶에서 진짜 건강을 유지하는 경우고 많이 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더라도 어린 자녀에게 그 재산을 다 주지는 않는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야 삶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문제가 다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진학의 길이 안 풀리고, 또 어떤 사람은 질병의 문제가 잘 안 풀리고, 어떤 사람은 사업의 문제가 잘 안 풀린다. 사실 그것이 복일 수 있다. 

예전에 보면, 문제가 잘 풀리는 사람들을 보니까 오히려 기도의 자리를 떠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복되지만은 않는 것 같다는 고백을 하는 집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비록 그분은 문제가 아직까지 잘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자기들 끼리 모여 기도하고, 밥을 먹지만,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과연 어느 쪽이 복인가? 크게 놓고 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끈을 붙드는 인생이 훨씬 나은 인생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다. 이렇게 은혜의 끈을 붙드는 기도를 해 보라. 

제가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은혜의 끈만은 반드시 남겨 주십시오. 저도 저를 못 믿겠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끈으로 나를 붙들어 매주십시오. 실제로 가만히 보면,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서 변질된 신앙이라고 한다. 변질 변화는 풍기는 뉘앙스가 다르다. 

오늘 나의 신앙은 어느 쪽인가? 변질인가, 변화인가곰곰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 앞에 변화된 모습으로 서기 바란다. 

진짜 문제가 해결되는 것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푸실 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통해서 진짜 근원적인 문제를 풀어주실 때가 있다. 야곱의 집안을 한번 보라. 이 집안의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흉년인가? 형제들의 불화인가?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문제는 먹을 것이 없는 흉년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흉년의 문제를 통해 그 집안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가정의 불화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 삶에 풀리지 않는 작은 문제가 있는가? 사실은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지금 여러분에게 보이는 문제가 무엇인가? 경제적 흉년인가? 건강의 흉년인가? 부부애에 흉년, 자녀와의 사이에 흉년인가? 인간관계의 흉년인가? 

우리 교회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감사한 것은 그 문제를 푸는 과정 속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한다. 눈에 보이는 문제가 미처 다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 문제를 통해서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채워주시지 않는 이유는 더 근본적인 유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돈 많이 벌어서 가정이 깨어지는 것보다는 좀 빠듯하게 살더라도 가정이 화목하게 사는 것이 훨씬 낫지 않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끈, 사랑의 끈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 이것을 잊지 말자. 은혜의 끈을 감사히 여기고, 그 끈 때문에 삶에서 더 풍성함을 누리기를 바란다. 

 

신앙의 감각을 회복하라

 42:28을 읽어보라. 나는 요셉의 형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은혜인데 왜 은혜를 못 느끼나? 예전에는 이 본문을 요셉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읽어보니, 이제는 요셉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요셉은 흉년 때에 돈이라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은혜를 베푼 것이다. 

그런데 형들은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 형들에게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들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두려움에서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단서가 본문에 보인다. 본문에 혼이 나서 떨며라는 표현은 dr;x' charad라는 단어가 쓰였다. 이 단어는 삼상 14:15절에 대지진이 났을 때 나온 표현이다.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형들이 땅이 진동할 정도로 떨었다는 것이다. 또 이삭이 실수로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느꼈던 심히 크게 떨며라는 표현이 이와 같다. 얼마나 떨었겠는가. 부들부들 떨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형들이 말하는 것을 보라.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 ( 42:28)

형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양심이 마비된 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가 생기니까 누가 생각났는가? 하나님이 생각났다. 벌써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될 때, 예전 같으면 내 힘으로 돈 벌면 되고, 사람들 모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생각나지 않았는가? 그때 이것이 내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군, 기도회에 참석하라는 뜻이로구나, 예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제부터라도 예배에 참여해야겠다라고 느껴졌다면 그 자체로 벌써 큰 진전이다. 신앙적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기도회에 참여해서, 기도 없이 살면 안 되겠구나, 예배에 참여해서, 예배 없이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자각만 있다고 해도 굉장히 큰 것이다. 감각이 돌아오고,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지 아는가?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지면 감각이 살아난다. 말씀이 들리고, 기도할 마음이 생긴다. 또 성도를 바라볼 때 교제할 마음이 생기고, 연약한 사람들을 보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목마름이 생긴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형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살려주시는 과정 속에서 그들을 이끌어 가셨다. 이후, 요셉의 형들은 감각이 살아나고 은혜의 끈을 붙들게 된 다음에 다 회복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의 시작이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게 해달라는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끈이라고 생각해서 언제나 하나님께만 매달려 있는 믿음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의 끈일 살아나고 또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게 될 때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다 살아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감각과 은혜의 끈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열어가는 신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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