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결단 ( 1:6)

 

저는 닭에 대한 안좋은 추억, 아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닭을 보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만큼 평생 닭을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때는 밤이었습니다. 그 밤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사랑하던 스승을 멀리했던 밤이었습니다. 스승을 버리고 떠났던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영적으로 무너져 스승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영적으로 어두운 밤이 깊어지자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스승을 세 번째 부인하던 그날 새벽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전령을 보내셔서 저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닭 울음소리였습니다. 베드로를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 본문도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적인 암흑 속에 있던 나오미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부르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의 메시지를 잘 받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복의 메시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적으로 암흑속에 있을 뿐 아니라, 낭패와 실망을 당한 후에 그녀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됩니다. 

 

찬송가 한 소절이 떠오릅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후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 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리 자신을 먼저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부르시는 회복의 음성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돌아가기로 결심함(6)

이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는 표현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안식을 얻게 하셨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러자 빵을 얻기 위해, 흉년을 피해 약속의 땅을 떠났던 나오미가 이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합니다. 지금 그녀는 남편도 잃고 두 자식마저 잃은 상태입니다. 더 이상 더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 망하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낯선 이방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남편을 따라 모압 땅으로 가긴 했지만 고향 베들레헴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먹을 것까지도 마련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른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오미는 이런 소식을 통해 끝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권고, 즉 돌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나오미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신앙의 소유자임을 말해줍니다. 

- 우리가 아무리 문제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즉 영적인 메시지는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벨도 없으셔, 그러나 그분의 공의와 사랑은 언제나 정확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혼자 남게 된 외로움이나 양식 걱정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육체적인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얻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즉, 하나님의 품으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기로 한 그 곳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과연 나오미가 그런 의도로 돌아왔을까요? 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나오미가 진정으로 이것을 깨달았는지는 더 살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오미의 관심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나오미의 결정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양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양식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베들레험, 빵집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나오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여전히 ‘양식’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실은 이 모습은 나오미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조금 문제 있으면 하나님 떠나고,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께 나오고, 하나님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그자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연약함입니다. 우리 선한목자 교인들은 나오미처럼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육의 양식을 위해 영혼을 팔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8:3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마 4:4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녀는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돌아섰던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약속의 땅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던 한 인간이 참된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한 시점입니다. 마치 탕자가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15:19)”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이제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리라…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혼 살리기 프로젝트’

 

우리는 탕자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달려가서 그 아들을 영접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하기 전부터, 아니 나오미의 가족이 베들레헴을 떠난 때부터 하나님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회를 떠난 영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을 떠난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영혼에게 가서 외치십시오. 하나님의 심정을요.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

“언제라도 좋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다. 돌아 오기만 하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주님을 떠나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 역시, 지금 주님께로 돌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룻기 1장에는 두 가지 결단이 나옵니다. 하나의 결단은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는 결단이고, 또 다른 결단은 세상에서 의지할 곳이 없어 주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단은 한 집안을 무너지게한 결단입니다. 그러나 주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결단은 무너진 가정을 다시 세우는 결단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바른 결단을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서 바른 결단을 내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리가 있다면 빨리 그 자리를 청산하고 주님께로 돌아가기를 결단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권면하십시오. 주님께로 어서 빨리 돌아가라고요. 그때 여러분 자신 뿐 아니라, 여러분의 집안이 구원받고 축복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 품안에서 참된 행복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시고, 그 안에서 주님이 채워주시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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