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名)의 고엘과 유명(有名)의 고엘 ( 4:1-12)

 

오늘 본문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무명(無名)”으로서 이름 없는 한 사람이 나오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유명(有名)”으로서 “보아스”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이름 없는 한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보아스 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붙좇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유익(有益)을 위하여 언약(言約)을 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언약(言約)을 위하여 자기 유익(有益)을 버린 사람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조(對照)가 되는 두 사람입니다.

그럼 왜? 한 사람은 이름 없는 무명(無名)으로 나타나고! 한 사람은 이름 있는 유명(有名)으로 나타날까요? 만약에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두 사람을 우리의 삶에 적용을 한다면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하였을까요? 나는 누굴까요? 나는 어디에 속하여 있을까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요? 늘 묻고 또 물으셔야 합니다.

스스로 진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버린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위해서 내 유익을 포기하고 사는 보아스 인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린 본능적으로 자신은 선()한 쪽에 세우고자 합니다. () 받는 자리에 세우고자 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다 남이 틀린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광경을 맞이하면 대뜸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하면서 고엘을 거부한 전자(前者)를 욕하면서도 자신을 그 사람과 분리하고, 도리어 후자(後者)인 보아스 편에 서서 자신의 괜찮음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우린 모두가 내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전자(前者)에 속하였어요. 우린 손해 보기 싫어해요. 내게 손해가 된다고 하면 하나님도 갖다 버릴 사람들이에요. 우린 범사를 이름 없는 전자(前者)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꼭 복 받은 자 편에 세운단 말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성경을 볼 때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저주 받은 사람들 편에 나를 세우고 보셔야 합니다. 나를 죄인의 자리에 세우란 말입니다. 내가 예수를 죽인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광야에서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툭 하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린 이상하게 여호수아 갈렙 편에 자기를 세워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을 나쁜 놈들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이건 아니에요. 내가 바로 모세에게 돌을 던지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에요. 지금도 수 없이 예수 안 믿겠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죄인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어요. 인간은 이런 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한 것은 이 놈들을 잡아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함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깊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신들을 괴롭히고 들들 볶는 그런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떠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여기까지 빼내 오기 위해서 너무도 큰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죄 없는 당신의 아들이 죽는 댓가를 치루고 애굽에서 빼내 왔습니다. 흠 없는 어린 양의 죽음은 곧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죽음과 맞 바뀌치기 한 민족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지금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돌을 던져도 버리지 않고 기어코 당신의 나라에 데리고 갑니다. 우린 그 나라에 가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성경 속에 인물들을 보면서 나를 투사(投射)하여 보아야 합니다. 내가 곧 그 사람들이라고 보여야 해요.

내가 가인이고! 내가 요셉을 팔아먹은 나쁜 악당 같은 형제들이고! 내가 예수님 대신 풀려난 살인자 바라바이고!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소리친 군중들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의 잘 됨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역하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인간은 자신의 죽음으로 감싸 안고 기어코 살려낸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잘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그 긍휼의 마음을 보아야 해요. 그래서 성경을 볼 때마다 야!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살고 있구나! 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주여! 오늘도 이런 인간이 주께 은혜를 입고 사는군요!” 감사합니다! 가 되어야 해요. 그리 할 때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주여 나는 개 입니다!”그러니 주인의 밥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좋사오니 긍휼히 여겨 주소서!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앎로부터 비롯되어집니다. 그러니 먼저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이 은혜르르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셔야 합니다. 성경 속에 날 집어넣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편에 세우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난 저런 놈들과 달라! 난 그래도 저렇지는 않아! 저 정도로 타락한 자가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감사하기 보단 원망이 앞서는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 날 몰라주느냐고 하잖아요.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눈만 뜨면 원망하고 불평하잖아요.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진퇴양난인 겁니다. 그땐 그렇게 하나님이 밉고 야속합니다. 마음 속으로 수없이 하나님을 죽였어요. 그러다가 복음을 깨닫게 되면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은혜 받을 때가 있어요.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본문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합니까?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여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침"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침"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은 우연같이 일어나지만 모두가 "마침"의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입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템플이라는 감독이 설교부탁을 받아 설교할 때였습니다. 그때 그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그때 어떤 학생이 와서 따지고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응답되는 게 아니고 우연히 그저 그렇게 요행으로 된 것입니다." 이때 템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거라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네."

여러분! 모든 것이 우연히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 때,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마침의 하나님"께서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연과 같은 일들을 만들어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연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이며,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하심을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정하시니 우린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광야 길이 아무리 끝이 없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평하고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광야에서 죽이는 한이 있어도 애굽으로는 돌려보내지 않아요. 홍해를 건너 온 사람들 중에선 단 한 사람도 애굽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우린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팔자에요.

우리가 얻은 구원은 우리가 돌아선다고 해서 취소되는 것이 아니에요. ? 그런가요? 우리 몸에 아들에 피가 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우리를 구원해 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뒤집어쓰고서도 원망과 불평으로 사는 인간들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우리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덮고 있는 예수님 피를 보시고 넉넉히 천국으로 인도해 들이십니다. 이게 성도의 구원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의 광야 이야기가 성경에 쓰여 있고 불순종을 밥 먹듯이 하는 사사기가 성경으로 기록이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러한 것을 성경에 기록케 한 것은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말이에요.

너희들 땡() 잡았다고 알려 주는 거예요. 룻이 땡 잡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땡()이 우리에겐 땡()으로 안 보이고 개떡(저주)으로 보이니 문제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그 “개떡 같은 눈(육에 눈)”을 “찰떡같은 눈(영에 눈)”으로 바꿔 주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비늘”을 떨어지게 하는 일을 벌리시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 할 수가 있겠어요.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지를 깊이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깊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죄인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입니다. 나오미를 우리와 하나로 생각하세요. 그러니 나오미의 기업을 잇는다는 것은 죄인이 구원받는 것으로 이해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죄인인 나오미를 누가 구원 하느냐 입니다. 누가 우리의 구원자인가? 기업을 이어준다는 말은 대신 담당해 준다는 말입니다.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해 준다는 말이에요. 그럼 나오미에게 기업을 이어준다는 것은 누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해 주는 분이냐! 로 답이 풀어지겠지요.

먼저 보아스가 나오미에게 그럽니다. 이 세상 법도로 하면 자기보다 먼저 우선 순위로 기업을 무를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 보고 그가 너를 책임진다고 하면 너를 그에게 보낼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가 널 책임지지 못하겠다고 하면 보아스가 자신이 나오미를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대로 보아스가 첫 째로 나오미와 가까운 기업 무를 사람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친족 중에 과부가 된 사람이 있는데! 지금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그 사람을 살도록 책임을 져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쉬운 말로 당신 생명을 주어서 그 사람을 살려 낼 수가 있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손 사래 치면서 싫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왜? 그 여자 때문에 손해를 보느냐! 난 내가 사는 것도 급하기 때문에 남을 책임져줄 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쉬운 말로 내 인생도 살기 바쁜데 어찌 남에 인생까지 책임져 준단 말인가! 

본문에 "룻에게서 사서"라는 말은 원문에는 "룻을 사서"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네가 결혼 문제를 생각해야 할 사람은 나오미가 아니라 룻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땅만 산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룻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죽은 자의 이름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룻은 젊은 여성이었고, 충분히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만약 룻이 아들을 낳는다면 자기가 산 모든 토지는 그 아들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4:22)."

룻과 결혼한 보아스는 다윗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마태복음 1:5에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떤 중요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 시대가 사사시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사시대라는 말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삶을 살았던 혼탁한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멕렉 가족이 그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사들을 보내셔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사기를 읽어보시면 백성들은 또 다시 옛길로 돌아가버렸고, 하나님은 또 다른 사사들을 보내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이 우연히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마침”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4 에서도 ‘바로 그때’, ‘마침’의 표현이 나옵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이삭을 주우러 가겠다고 허락을 받은 다음, 바로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 바로 그 때입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이 있습니다. 

 26:3-5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철따라, 딸 때까지, 파종할 때까지는 엄청난 복입니다. 

121:8 “여호와께서 너희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출입’이 바로 ‘때’입니다. 

열하 8:4-6 “수넴여인의 땅을 찾는 사건”을 보라. 엘리사가 수넴여인에게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칠년동안 블레셋 사람의 땅에 머무르라고 합니다. 칠년이 다 지니고 여인이 블레셋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하여 왕에게 나아갑니다. 바로, ‘그때에’ 일이 일어납니다. 

4 “그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되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5절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 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6절 왕이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엘리사가 행한 기적이 몇 가지나 될까요? 1) 요단강을 가름(엘리야의 겉옷으로) 2) 물의 근원을 고침(소금으로) 3) 곰이 찢어 죽임(42명) 4) 선지생도 아내-그릇마다 기름을 충만케 함 5) 수넴여인에게 아들을 낳도록 함 6) 죽은 아이를 살림 7) 국의 독을 해독 함 8)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100명을 먹이고 남음 9)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침 10) 게하시의 문둥병 11) 도끼라 떠오르게 함 12)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함 13) 식량을 풍성케 함 (사마리아성의 네 한센병자들)

8장에 나오는 왕과 게하시의 대화 전에 나오는 엘리사의 기적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왕의 질문에 답을 하는데, 기적을 순차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5번째 기적부터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수넴여인이 들어 와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입니까? 할렐루야 ^^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열하 8:2에 보면,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의 뜻을 신자에게 말합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 말씀대로 한 번 해 보세요. 신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사는 자들 아닙니까? 뜻대로 해 보세요.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 지실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