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나를 본다면 ( 4:1-6)

 

내가 바로 모세에게 돌을 던지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에요. 지금도 수 없이 예수 안 믿겠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죄인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어요. 인간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한 것은 이스라엘을 고생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함입니다. 광야에 서 보니 그들의 속내와 수준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하여 이런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을 괴롭히고 들들 볶는 그런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떠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여기까지 빼내 오기 위해서 너무도 큰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죄 없는 당신의 아들이 죽는 댓가를 치루고 애굽에서 빼내 왔습니다. 흠 없는 어린 양의 죽음은 곧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죽음과 맞 바뀌치기 한 민족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지금 우리들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의 잘 됨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역하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자신의 죽음으로 감싸 안고 기어코 살려낸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잘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그 긍휼의 마음을 보아야 해요. 그래서 성경을 볼 때마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살고 있구나!” 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주여! 오늘도 이런 부족하고 연약한 자가 주께 은혜를 입고 사는군요! 

감사는 은혜를 앎로부터 비롯되어집니다. 감사라는 단어가 유카리스입니다. ‘카리스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에서 카라라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인 내 안에 기쁨이 없다면 왜 일까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 ‘카리스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고, 그래서 유카리스,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내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알 때, 고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이 은혜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셔야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진퇴양난인 겁니다. 그럴 땐 그렇게 하나님이 밉고 야속합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하면서요. 마음 속으로 수없이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다가 복음을 깨닫게 되면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은혜 받을 때가 있어요.

그것은 "마침"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침"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은 우연같이 일어나지만 모두가 "마침"의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지난 몇 주간 살펴보았듯이 우연히와 마침입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템플이라는 감독이 설교부탁을 받아 설교할 때였습니다. 그때 그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그때 어떤 학생이 와서 따지고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응답되는 게 아니고 우연히 그저 그렇게 요행으로 된 것입니다." 이때 템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거라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네."

여러분! 모든 것이 우연히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 때,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마침의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연과 같은 일들을 만들어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연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이며,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하심을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정하시니 우린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광야 길이 아무리 끝어 보이는 것 같아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평하고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광야에서 죽이는 한이 있어도 애굽으로는 돌려보내지 않아요. 홍해를 건너 온 사람들 중에선 단 한 사람도 애굽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우린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팔자에요. ㅎㅎㅎ

우리가 얻은 구원은 우리가 돌아선다고 해서 취소되는 것이 아니에요. ? 그런가요? 우리 존재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우리를 구원해 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뒤집어쓰고서도 원망과 불평으로 사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우리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덮고 있는 예수님 피를 보시고 넉넉히 천국으로 인도해 들이십니다. 이게 성도의 구원입니다. 이게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쉽게 보지 마세요. 끝까지 이끌고 가십니다. ㅎㅎ

성령이 이러한 것을 성경에 기록케 한 것은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말이에요.

너희들 땡() 잡았다고 알려 주는 거예요. 룻이 땡 잡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땡()이 우리에겐 땡()으로 안 보이고 개떡(저주)으로 보이니 문제인 겁니다. 사실 구원보다 더 좋은 복은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기어 진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 할 수가 있겠어요.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지를 깊이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깊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죄인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입니다. 나오미를 우리와 하나로 생각하세요. 그러니 나오미의 기업을 잇는다는 것은 죄인이 구원받는 것으로 이해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죄인인 나오미를 누가 구원 하느냐 입니다. 누가 우리의 구원자인가? 기업을 이어준다는 말은 대신 담당해 준다는 말입니다.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해 준다는 말이에요. 그럼 나오미에게 기업을 이어준다는 것은 누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해 주는 분이냐! 로 답이 풀어지겠지요.

먼저 보아스가 나오미에게 그럽니다. 이 세상 법도로 하면 자기보다 먼저 우선 순위로 기업을 무를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 보고, 그가 너를 책임진다고 하면 너를 그에게 보낼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가 널 책임지지 못하겠다고 하면, 보아스 자신이 나오미를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대로 보아스가 첫 째로 나오미와 가까운 기업 무를 사람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친족 중에 과부가 된 사람이 있는데! 지금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그 사람을 살도록 책임을 져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쉬운 말로 당신 생명을 주어서 그 사람을 살려 낼 수가 있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생명같은 재산이니까요.

이에 그 사람이 손 사래 치면서 싫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왜? 그 여자 때문에 손해를 보느냐! 난 내가 사는 것도 급하기 때문에 남을 책임져줄 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쉬운 말로 내 인생도 살기 바쁜데 어찌 남에 인생까지 책임져 준단 말인가! 

본문에 "룻에게서 사서"라는 말은 원문에는 "룻을 사서"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네가 결혼 문제를 생각해야 할 사람은 나오미가 아니라 룻이라는 말입니다. 룻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죽은 자의 이름과 가문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룻은 젊은 여성이었고, 충분히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만약 룻이 아들을 낳는다면 자기의 재산이 그 아들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릇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그런데 성경이 주목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복이 주어졌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4:22)."

룻과 결혼한 보아스는 다윗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마태복음 1:5에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떤 중요한 일입니까? 이것이 무슨 복이죠..  구원의 복입니다. 이 복이 오늘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룻에게 어떤 은혜가 부어졌습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룻의 여정과 때를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참으로 좋아하고 우리 교인들도 그랬으면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이 있습니다. 

 26:3-5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철따라, 딸 때까지, 파종할 때까지는 엄청난 복입니다. 

121:8 “여호와께서 너희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출입’이 바로 ‘때’입니다. 이런 은혜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을 우리가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부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9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기도가 나옵니다. 어떻게 시작하지요? 같이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누구 아버지시라고요? ,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어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이 좋으신 하나님 의지하며 한 주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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