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에도 패턴이 있다

( 2:11-15)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사시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1장에서는 정치적인 원인으로 약속의 땅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영적인 원인으로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것과 믿음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것에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두 가지 실패로 말미암아 사사시대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본문은 사사시대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남겨두신 열국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안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사시대의 양상(2:11-23)

 

본문은 사사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은 “범죄(11-13) → 징계(14-15) → 회개 및 구원(16-18) → 또 다른 범죄(19) → 언약을 어긴 결과: 저주(20-23)”로 나타납니다. 사사기에는 이러한 주기가 총 12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주기가 12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첫째 참으로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도 배우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경험하고, 아무리 다짐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쉽게 떠나고, 쉽게 배반하고, 쉽게 옛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기가 12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은 둘째로 하나님은 정말 가슴이 넓은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2번이나 돌아선 백성들에게 12번이나 사사를 보내시고, 12번이나 회개한 백성들을 12번이나 용서해주셨고, 12번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백성들을 12번이나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변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배신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배신한 적이 없으십니다. 바로, 사사기는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끝까지 품으시고 껴안아주셨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배반하고, 등돌리고, 대적하고, 멀리 떠나려고 하는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야 마시는 거룩한 열심을 찬양합니다. 이 본문을 통해 인간을 향해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발견하시고, 그분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고, 가까이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범죄(11-13)

   

   본문 11절에 드디어 이스라엘이 범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2:11).

 

여기 말하는 이스라엘 자손이란 10절에 나오는 “그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본문 10절에서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선배들로부터 신앙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불운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영적 무지는 영적 범죄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배운 것이 없었고, 경험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식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 예배가 무너진 사람들은 반드시 악의 길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은 세상의 기쁨을 추구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은 그 마음을 채울 다른 우상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들의 자녀에게도 분명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자녀들, 예배가 무너진 자녀들, 봉사가 뭔지 사명이 뭔지 모르는 자녀들, 어디를 가나 제대로 살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악의 길로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예배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바르게 세워져야 그들의 인생도 바르게 세워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도리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의 시기에는 공부가 중요하고, 그래서 신앙은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입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힘쓰고, 애쓰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중요한 때가 아닌 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을 해야 합니다. 취업을 하고 나면 승진을 해야 합니다. 승진만 하면 끝납니까? 결혼도 해야 되고, 자녀도 낳아야 되고, 또 다른 비전을 꿈꾸며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중요한 일의 연속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점은 한 시점도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이 소중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배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쫓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2:12).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두 가지입니다. 그들은 첫째로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버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본문 12절에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지금 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할 수 있도록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지금 그들이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을 선택했습니다. 현재 자기의 모습을 있게 만든 은혜의 장본인을 버리고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의 작태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우리만 알 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도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아는 백성이 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사모하는 후손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고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처럼 그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2:13).

 

이스라엘 자손들이 섬긴 신은 바알과 다른 신들과 아스다롯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바알와 아세라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가나안 족속이 섬기는 우상들이었습니다. 바알은 농경신으로써 구름과 폭풍 그리고 비를 주관하는 신입니다. 아스다롯은 다산의 신으로써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결국 농경 문화에서 한 해의 소출과 다산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신이었습니다.

 

농사의 전문가였던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농사의 근본은 이 신들을 섬기는 것에 있음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이러한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한 유혹을 이기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또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세상의 법칙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사상이 교회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너무 말씀만을 강조하다간 세상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 세대들이 받았던 도전이며 유혹이었습니다. “농사를 제대로 하려면 농사의 전문가인 우리의 말을 들어야 한다. 농사를 알려면 농사의 신을 섬겨야 한다. 여호와는 전쟁의 신이 아니냐? 농사를 알기는 뭘 안다는 말인가? 우리 신을 섬겨라.” 바로 이러한 도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입니까? 절대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알을 섬기고 아스다롯을 섬기는 것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것”이었으며 “여호와를 버리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만을 섬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성막이 있었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성막도 있었지만, 우상을 섬기는 산당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도전했습니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

 

오늘 우리가 받고 있는 도전도 이와 같은 도전이 아닙니까?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과도 짝하며 살아갈 것이냐? 천국에는 가고 싶은데, 세상에도 미련이 남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입니다. 사사 시대의 우상 숭배 문제는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사사 시대는 바로 양다리를 걸쳤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나를 버렸다. 그리고 다른 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순결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 되심을 고백하며, 주만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 여호와의 징계(14-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2:14).

 

본문 14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우리말에는 13절에 묻혀 번역됨).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고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들에게 재앙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면 기뻐하시지만, 슬퍼하게 하면 슬퍼하시고, 진노하게 하면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짓을 일삼아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그런 죽은 신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진노까지도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게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 재앙은 단계적으로 진행이 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적들의 손에 붙여 노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노략을 당하게 하셨다는 말은 약탈을 당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갑자기 쳐들어와서 곡식과 재물을 빼앗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을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셨습니다. 그들의 손에 파셨다는 말씀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소유권을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내 백성도 아니며, 그들의 하나님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보호해야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2:15).

 

이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고 맹세하신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의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23:13).

 

이에 그들의 괴로움이 말이 아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백성들은 그 생활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울며 도움을 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18). 만일 그들이 순종하였다면 승리를 거둘 뿐 아니라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순종함으로 안식을 잃어버리고 도리어 비참한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도가 세상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없다고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잃어버렸을 때 반드시 개입하셔서 문제의식을 가지게 만드십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숱한 어려움과 사고 그리고 질병 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징계하셔서라도 옳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는 도리어 참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있습니다(12:8).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 관계에 있음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되게 섬긴다면 하나님은 더할 나위 없이 우리에게 모든 선한 일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며 범죄 할 때에는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화를 내리시고 멸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24:20).

 

우리가 죄를 이기지 못하더라도 구원받는 것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악에 넘어질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죄악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죄악에 빠진 사람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무엇입니까? 삶에 기쁨도, 보람도, 만족도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왜 삶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까? 바로 삶에서 온전한 기쁨과 보람과 승리감을 맛보며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지 않기 위함입니다. 마귀는 우리는 지옥에 보낼 수는 없어도,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 살도록 유혹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택한 자녀들을 넘어뜨려서 기쁨도, 평강도, 만족도 못 누리는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에는 고통만이 주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에 참된 만족이 있는 법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믿음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승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장면을 말씀을 통해 보았습니다. 다음 세대들이 왜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선배들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을 제대로 전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부모들은 신앙을 세우는 일보다,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배우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농사를 배우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농사에는 전문가가 되었으나, 하나님을 떠나버린 백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사 시대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부이다. 직장이다. 가정이다. 신앙은 다음이 아니냐? 다음에도 얼마든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 바로 이것이 사사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았던 유혹과 도전이었고,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경험하는 도전입니다.

 

여러분! 이 도전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오늘 나에게 소중한 것을 포기할 줄 아는 법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그러면, 그 자녀들이 인생의 어려운 문제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순결한 믿음을 따라 큰 비전과 꿈을 가지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자녀와 가정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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