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 14:1-9)

 

 

신앙생활을 하면서 진정으로 필요한 세 가지를 뽑으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오랜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이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근거로 그 첫번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설교를 들으시고 답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1.    영적 분별력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14:1)

원문 성경에는 그리고라는 단어로 14장이 시작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은 13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신 직후의 일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고 충만함을 입은 후에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딤나라는 마을은 본래 단 지파의 땅이었지만 나중에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삼손이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뭔가 큰 일을 이루기 위해 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큰 일을 이루기도 전에 어떤 여자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 여자를 만난 직후 그의 마음은 여호와의 영이 이끄심을 따르지 않고, 본능을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한 한 여자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생소한 표현입니다.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소녀 혹은 처녀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만약 처녀였다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과부이거나 이혼녀였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16장에서 들릴라를 만났을 때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 16:4)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LXX)에서는 그리고 그녀는 그를 기쁘게 해주었다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내면적인 성숙한 만남이 아닌, 외면적인 성적인 만남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 만남을 가지니 그가 어떻게 되어 버렸습니까? 도로 올라와 버렸습니다.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14:2)

히브리어 문법에는 와우 계속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어떤 사건이 연속적으로 계속 일어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본문에 도로 올라왔다는 말의 앞부분에 와우 계속법이 쓰였습니다. 이것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더 깊이 생각하거나 고민할 시간을 전혀 가지지 않고 급하게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삼손은 그 여자를 본 순간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영에 충만함을 입어 뭔가 큰 일을 이루기 위해 딤나로 내려갔었는데, 거기서 어떤 여자를 본 순간 그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져서 사명이고 열정이고 다 팽개치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서 그냥 돌아와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언제 보느냐? 는 중요합니다. 이는 보는 것은 우리의 사고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는 것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함께 기도하실 것은 여러분의 생애동안에 좋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이꼴 저꼴 다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 보는 훈련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센서가 자녀들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읽고 가르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본문에 말한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문법에서 히필 강세형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결혼문제를 가지고 부모와 의논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이미 결정한 것을 강하게 통보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통보를 잘한다. 결정은 자기가 하고, 뭔가 세상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와서 무작정 땡깡을 놓는다. 신앙적 유아기라 할 수 있다. 물질보면 물질땡깡, 명예보면 명예땡깡, 성공보면 성공땡깡]

 14:3을 읽어 보자. 삼손의 말을 들은 부모는 즉각 그의 요청을 반대했습니다.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부모가 그 결혼을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여자가 할례 받지 아니 한 블레셋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례를 받는 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역을 맺은 언약백성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백성이 아닌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이 얼마나 언약 백성과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인가를 잘 나타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헌신된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나실인의 삶은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삼손의 부모는 그가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구요. 그래서 단지 외적인 외모 때문에 반해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외형적인 때문에 반해서 세상 따라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이 내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른채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 향하는 영적인 순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인과 결혼했다가는 그들의 죄악된 삶에 물들어 영적인 순결을 잃어버리고 온전히 나실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부모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나중에 삼손은 이방 여인때문에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형따라 가면 망합니다.]

하지만 삼솜의 요구는 완강했습니다.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Get her for me, for she is right in my eyes 삼손이 결혼하려는 기준은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적인 기준이나 영적인 기준이 전혀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온전히 주의 길을 걸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정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기 때문입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을 판가름합니다.]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엿더라.( 14:4)

우리말 성경은 삼손이 틈을 타서라고 번역했는데, 사실 히브리어 원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본문입니다. 원문은 그가라는 3인칭 남성 단수형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는 삼손도 가능하고 여호와도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말 성경처럼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다고 해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는 것도 합리화하려는 미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려면 그 수단과 방법과 목적까지도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어가 여호와라고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께서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하였다고 해석됩니다. 그렇게 되면 삼손이 아무리 인간적인 생각으로 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아도 우리의 욕망과 욕심 때문에 기도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자신의 욕심때문에 스스로 기도의 자리에 선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변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삼손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뜻은 온전히 이룬다는 메시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게 하신 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의 미성숙한 모습이나 인간적인 생각을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삼손의 결혼은 잘못된 결혼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미성숙한 모습이나 인간적인 계산때문에 그토록 많은 시행착오와 상처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삼손이 이렇게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결정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영적 분별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by sight, not faith고후 5:7을 보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행함의 기준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믿음입니다. 어떤 행동의 시작의 점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믿음입니다. 오늘 예배하러 오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찬양의 동기? 믿음입니다. 봉사의 동기? 믿음입니다. 헌신의 동기?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동의 근거는 바로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14:23 믿음을 따라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실제로 그렀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신앙생활이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하니하고 자신이 보는 것이 결정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느낌이 결정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민생활 교회도 그런 것 같아요. 여기서 했는데, 저기서는 아하, 그것이 그렇고 그래, 믿음이 없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본대로, 자신이 느낀대로 결정해 버립니다.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믿어야죠.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으신 소원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사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세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세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된 삶인 줄 믿으십니까? 콩나물 먹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행복인 줄 믿으십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세요. 풀먹고 살아도 풀부불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우리가 듣던 유명한 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3:18) 믿음의 지조를 지켰던 그들..오늘 여러분의 신앙도 그렇게 성장하길 축원합니다. 

삼손을 보세요. 여자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생각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영적 분별력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멀리서 볼 것 없습니다. 

하와를 보세요. 보는 것으로 결정하니까? 그녀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핑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보세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구석이 없어요. 한 마디로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녀의 신앙생활이 온전해지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분별력은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12:2 말씀을 외워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은 분별해서 하십니까? 분별하다 dokima,zw라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구별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영광이라는 단어가 do,xa입니다. 이 단어는 doke,w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뜻은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하기 위해 깊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do,xa를 위해 산다고들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 말입니까?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비추어서 하나님께 좋은지 아닌지 깊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삶 가운데서 원하시는 것이 깨달아졌으면 그것에 빨리 반응하는 것입니다. 반응이 무엇입니까? 순종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위해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해, 하나님의 영광대로 살기위해 dokima,zw, doke,w 하는 삶을 살고 계세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접하는 것은 크게 사람과 물질이니까? 한 번 실제적으로 적용해 볼까요?

먼저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살고 계세요? 이것이 내가 사람관계에서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말씀에 비추어 깊이 생각해 보고 생활하세요. 물질관계에서 그렇게 살고 계세요? 온전하게 하십니까? 

깊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 말씀에 내가 조금이라도 꺼림직하다면 순결하세요. dokima,zw 는 이물질에서 만을 뽑아 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여러분의 세상에 물든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포장하지 말고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순결한 마음과 순결한 순종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분별력을 회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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