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없는 가정( 17:1-13)

 

 

사사기 3:7 이후부터 16장까지는 사사시대의 역사에 대해 말씀합니다. 여기서는 우리는 사사시대의 독특한양상을 보게 됩니다. “타락-징계-회개-구원- 타락 계속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이 사사시대 350 동안 적어도 12번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시기는 이런 모습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불순종하는 백성인가를 실감나게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런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징계하시고, 사사를 보내시며, 회복시키셨던 하나님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사시기의 마지막 부분은 17-21장까지의 내용은 사사시대의 상황 보여주며  시대가 안고 있는 영적인문제와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가지 스토리가 나오는데 첫째는 17-18장까지의 미가의 신상에 대한이야기며, 둘째는 19-21장의 기브아의 흉악한 범죄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나 사실은 중대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왕이 없는 가정,  없는지파, 왕이 없는 나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에엄청난 영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타락과 정치적인 타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마지막 부분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이며 비참한 삶인가를 배우게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아직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지 못한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겸손히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고백의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미가라는 사람입니다.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와 같은 분은 세상에 없다는 뜻을 가진 거룩한 이름입니. 그런데 이름의 주인공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목적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는 사사시대의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보면 굉장히 거룩한 이름이지만, 삶을 보면 전혀 거룩을 찾을  없는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미국인들의 이름을 보시면 성경의 인물의 이름을  홀리 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거룩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이 잇습니다. 예닮, 경찬, 하경, 하민... 거룩한 이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삶이 이름처럼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름만 거룩하게 지어놓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지않고 지도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입니다. 본문의 경우 미가의 삶이 그랬습니다. 본문에 그의 어머니가 나오는데 먼저 자신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있습니다. 그러고 자녀의 신앙을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하고 있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만 신앙적인 이름을 지어줬을  전혀 자기도신앙적이지도 않고, 자녀도 신앙적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미가의 스토리는 먼저 그가 훔쳤던  1100개를 다시 돌려주면서 자백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1100개라는 말에 우리는 삼손의 몸값으로 블레셋의  방백이 들릴라에게 약속했던 액수와 같은 액수라는 것을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의 연봉이  10개였으니 당시 시세로는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아들이 이처럼 훔쳤던 은을 다시 돌려주었던 이유가 본문에  나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저주였습니다. 이에 미가가 은을 다시 돌려줍니다. 이것은 그가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저주가 두려워서 자백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 아들이 여호와께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의 어머니는 자기가 내렸던 저주의 대상이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저주를 철회하기 위해 다시 축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했기 때문에 저주를 철회하기 위해 축복합니다. 저주를 철회하기 위해 축복만  것이 아니라 다음에 보면 신상까지 만들어주는 열정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죄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음으로 결국 아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축복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가 여호와라는 이름이자연스럽게 오르내리던 시대라는 것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던 시대였다는말입니다. 이름도 거룩한 이름을 짓고, 여호와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언급할 정도로 신앙적인 분위기였다는 말입니다. 

 

본문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신상을 새기고 부어 만들기 위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말합니다.  신상을 새기며,  신상을 부어 만들다는 표현은 조각한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  개를 만들겠다는의미입니다. 아들에게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우상을 만들면서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리노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대한 신앙개념이 너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면서 이것이 다른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 섬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2계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자기가 만든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이 여기시는 행위를 하면서도 (see,  27:14-15 레위 사람은 크큰 소리로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두움 가운데 있었기때문에 하나님과 우상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동기는 순수했는지 몰라도, 섬기는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있습니다. 

 

바른 신앙은 동기와 방법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사역을 하는 친구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교사역을   복음을 전한 뒤에 성경을 번역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이상한 종교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가졌다고 해도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바른 성경지식을 가져야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출발합니다. 감정은  다음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감정과 감동이 은혜인  아는데, 진정한 은혜는 말씀의 깊이를 깨닫는 것에 있습니다. 예배때에도 눈물과 감격이 있으면 은혜 받을  아는데, 진정한 은혜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는것에 있는 것입니다. 울었다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울었느냐가 중요한 입니다. 

 

인간적인 감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의 뜨거운 감정이 신앙을 강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마의 마음과 열정을 뜨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은 죽은것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하는 살아있는 지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결국 엉뚱한 길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미가가 신당이 있으므로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이미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가에게는 이미 신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당이라는 말은 원문에는 하나님의  ~yhi_l{a/ tyBe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던 회막을 가리킬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의 집이었던 성막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온 것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들의   신전이나 신당이라는 뜻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는 당연히 여기를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공식적인 사설예배 시설을 갖춘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처소에 대해 신명기 말씀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중앙 성소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당시 성막이 실로에 있었기 때문에 실로에서만 예배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편리한 곳에 예배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에봇과 드라빔까지 만들었습니다. 신당에 신상까지 만들어 새운 것으로는만족할  없었습니다. 그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었습니다. 에봇과 드라빔은 볼래 같은자리에 있을  없습니다. 

 

에봇은 본래 제사장용으로 만든 거룩한 예복입니다 ( 28:4). 그런데 드라빔은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었습니다. ( 31:19). 에봇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사용했고, 드라빔은 점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뜻을 묻는 것과 점을 치는 물건이 어떻게  자리에있을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자리에 놓았다는 것은 전형적인 혼합주의 신앙의 모습 나타낸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십자가도 걸어 놓고 불상도 세워둔 것입니다. 성경도 읽고 부적도 붙이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도하고, 점쟁이에게 가서 점도 치는 그런 모습입니다.  중에 하나는 축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일본사람의 경우는 그래서 자신이 섬기는 신지 최소 3-4개는 됩니다. 그중에 하나는 축복하지 않겠느냐는 입니다.

 

여기에서 끝났느냐? 그는 여기에서 만족할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구색을 갖추기 위해 제사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머리가 돌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16:19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그는  아들을 세워서 그의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집에서 제사장은 누가   있습니까? 레위 지파 중에 아론 조손만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아들 중에  명을 세워서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3:9-10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엑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하리라.”  정도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 자기 신앙적인 만족을 위해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구색을 갖추려는 악한 모습을   있습니다. 

 

여기까지 1-5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왕이 없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자녀의 이름도 거룩하게 지었고, 입술로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고,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이름을 거룩하게 지었지만 거룩한 삶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입술로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사실은 우상을 만들고 섬겼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생활의 모습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기 생각과 기준으로만든 것일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살전 5:22 “악은 어떤모양이라도 버리라” 'ei=doj  1) the external or outward appearance, form figure, shape 2) form, kind'

 

바로 이것이 사사시대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6절입니다. “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평가를 날마다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아침말씀과 저녁 말씀으로 우리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때에는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사기 1:1 보시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로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아직은 다윗 왕이 세워지지 못한 시대라는 점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은 단지 인간왕이 없었다는 뜻만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옿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결국 다른 것을 왕의 자리로 가져오게 됩니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자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성경 말씀 대신 자기 생각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말입니까? 본문 이전의 문맥을 따라 해석하면, 자녀교육을 자기 마음대로 했고, 예배를 자기 마음대로 했고 신앙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은 내가 알아서  테니까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락도 하지 말고, 심방도 하지 말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를통해 말씀의 가르침을 받기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지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가리켜사사시대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신’(죽은 신앙, dead faith)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누가 왕입니까? 요즘 자녀가 왕이 되어버린 가정이 많습니다. 부모는 종이 되어서 평생자녀들 A/S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신앙이 아니라, 말씀에 민감하고,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신자 되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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