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결국 ( 4:1-24)

 

사사기의 중요한 관심은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에 있습니다. 분명히 정복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사방에 안식을 주셨습니다(23:1).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도 얻었고 안식도 얻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안식을 누리는 것에는 중요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고 그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당대에는 이것이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1) 이스라엘의 범죄(4: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4:1).

 

본문 1절은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범죄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이 또 범죄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미 두 번의 경험이 그들에게 전혀 무익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악을 행하여 여호와의 징계를 받고서도 또 여호와를 배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범죄하고, 또 거역하고, 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맞아도 소용없고, 경고해도 소용이 없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끈질기게 배반하는 당신의 백성들보다 더 끈질기게 그들을 붙잡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해서라도 또 회개하게 하시고, 또 부르짖게 하시고, 또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보다 하나님의 열심이 더 열정적입니다. 인간은 이 하나님의 열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빨리 항복하는 것이 낫습니다.

 

2) 여호와의 징계(4:2-3):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팖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4:2).

 

여호와의 징계는 지금까지 잠잠했던 가나안을 통한 징계였습니다. 가나안을 통해 징계하셨다는 것은 사실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죄악 때문에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는데,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가나안의 손에 그들을 파셨습니다. 상황이 반전되고, 전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타락한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건설해야 할 자들이, 도리어 타락하여 진멸되었어야 할 가나안 사람에 의해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세상을 따라갈 때 세상의 종이 되고 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복해야 할 세상에 의해 도리어 정복을 당한 것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하솔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이미 여호수아가 하솔을 불태웠습니다(11:11, 13). 그런데 그들은 다시 거기에 들어가서 성읍을 건설하고 도읍지로 삼았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왕 야빈은 메롬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빈은 동일인물이 아니라 세습적인 칭호로 생각됩니다.

 

비록 가나안 왕은 야빈이나 실제적인 권력은 군대장관 시스라에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사사기 5장의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가운데 야빈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스라엘은 하솔과 야빈 왕에 대해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기들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단의 세력은 언제나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승리했다고 자만할 그때 그들은 다시 일어나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깨어 있지 않으면 그들의 공격에 노출되고 결국은 완전히 삼킴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항상 깨어서 넘어질까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4:3).

 

3절에 야빈왕은 철 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2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옷니엘 시대에 8, 에훗 시대에 18년 이제 20년입니다. 영적 회복의 속도가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영적 회복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신앙이 자랐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어두움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 20년이라는 기간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결국 20년이 지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3) 드보라와 바락을 통한 구원(4:4-24)

 

)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됨(4-5)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4:4).

 

이스라엘의 죄악의 양상은 시대가 바뀌어도 동일했습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고 가나안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나 풍부했습니다. 옷니엘과 같은 믿음의 용사, 에훗과 같은 장애인을 세우셨던 하나님은 이제 여성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엘과 같은 여성을 통해 원수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분명히 사사기 전체를 통해 여성이 이처럼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기록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4:5).

 

가나안 왕 야빈과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압제할 당시 하나님께서는 여선지 드보라를 사사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녀는 에브라임 땅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녀에게 나아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드보라는 모세 이후 처음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드보라의 이름은 꿀벌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어미”로 불려졌습니다(5:7). 이것은 왕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아비”로 불려지는 것과 같은 뉘앙스입니다.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과 동시에 굴욕적인 처사였습니다(위어스비).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3:12).” 이스라엘에 지도력을 겸비한 깨어있는 남자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여자 사사를 주셨다는 것은 그의 백성을 어린 아이로 취급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비록 드보라가 사사로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그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까? 바락을 통해 일을 합니다. 결국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우리의 기대와 정반대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 드보라가 바락에게 지시함(6-10)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4:6).

 

드보라가 납달리 게데스에 거하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서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게데스는 도피성 중 하나였습니다. 그 명령은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올라가라”였습니다. 다볼산은 지리적으로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일만 명의 군사를 모으기에 용이한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가나안의 철병거로부터 안전하게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다볼산으로 가라는 명령은 곧 지리적인 조건을 사용하여 바락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4:7).

 

이스라엘에는 와디라는 지형이 있습니다. 와디란 우기에는 강이 되고, 건기에는 길이 되는 협곡이 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비가 내릴 때 철병거가 와디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바퀴가 빠져서 힘을 못 쓰게 될 것입니다. 여기 기손강은 와디입니다. 실제로 기손강 주변은 철병거가 집결하기엔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집결된 장소로부터 와디 안으로 유인하셔서 적들을 무력하게 만든 후에 공격하여 승리를 주시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믿음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과연 시스라와 같은 전사가 유리한 위치와 불리한 위치도 구별하지 못하고 유인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셔서 철병거를 무기력하게 해 주실 것인가? 11:32에 바락이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가 출전을 결심했다는 것은 그만한 믿음의 모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바락은 곧 “드보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내가 가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4:8).

 

드보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기가 반드시 함께 갈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지만 바락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조건적으로 수용합니다. 겨우 떠밀려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처럼 자원해서 헌신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능력과 자기가 가진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드보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저하고 있는 바락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만들고, 또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함께 동행하고 도와서 그 일을 잘 감당하게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4:9).

 

결국 우유부단한 그의 자세 때문에 바락은 영광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바락은 그 여인이 드보라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상상 이외의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일이 그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11).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4:10)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주실 때에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함께 주십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때 약속만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 속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환경과 나의 감정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까지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어떤 조건을 만들어주시면 그때서야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1:6-7). 마지못한 책임감으로 사명을 수행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체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약속대로 분명히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 바락이 시스라를 이김(11-16)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4:11).

 

본문 11절에 느닷없이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겔’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17절 이하에 나타날 사건들에 대한 복선입니다. 겐 사람들은 유다 영지에 속했습니다(1:16). 바락의 군사 중에 유다 사람들은 징집되지 않았습니다(4:10). 그리고 겐 사람들은 바락의 군대가 모여있다는 정보를 제공한 장본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12).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그들의 입장 때문에 시스라를 함정에 빠질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17).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4:12-13).

 

시스라는 철병거 900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와 함께 있던 모든 군사들을 총 동원했습니다(13). 이에 드보라가 바락에게 명령합니다(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4:13).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붙이신 날이라”는 표현은 완료입니다. 여호와께서 확실하게 이루실 것은 분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바락은 때를 찾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드보라는 기회를 포착했던 것입니다. 바락은 드보라의 지시를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바락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휘관이었지만 지휘관 행세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할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 실제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분을 주신 것은 그 일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잘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중직자들 뿐 아니라 모든 기관들에 세워진 일군들은 자기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찾고, 기회를 포착해서, 주의 일을 부흥시키는 부흥의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4:15-16)

 

이제 바락이 군사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 적을 공격했습니다. 본문 15절은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아마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폭우를 내리셔서 그들의 병거가 무용지물이 되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갔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15).

 

바알은 폭우의 신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폭우의 신이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들을 버릴 수 있을까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바락은 계속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려졌고 남은 자가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완벽한 대 승리였습니다.

 

) 야엘이 시스라를 죽임(17-23)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4:17).

 

이제 이야기는 다음 여성 영웅이 될 야엘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드보라는 처음에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조건적인 순종의 자세를 취할 때 그 약속은 변경되고 말았습니다. “네가 이 일로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9).

 

결국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를 밝혀줍니다. 시스라는 전쟁에서 겨우 목숨은 구했지만 우호적인 지역이라고 믿었던 곳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가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들어갔던 것은 그 집과 화평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17).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4:18).

 

당시 풍속으로 남편 외에 감이 남의 아내의 장막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엘이 그녀의 장막 안으로 자기를 영접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스라로 하여금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 편히 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그가 또 가로되 장막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4:19-20).

 

그녀는 물을 달라고 하는 시스라에게 젖부대를 열어 요구르트로 보이는 것을 마시게 했습니다(19). 전쟁에 지친 그가 잠들자 야엘은 즉시 말뚝과 방망이를 들고 왔습니다. 베두인 여자들은 장막 치는 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연장을 잘 다루었습니다. 그녀가 말뚝으로 그 살쩍(관자놀이)에 받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힐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스라는 머리가 땅에 박힌 채 기절하여 죽었습니다.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4:21).

 

 이것을 알 리가 없는 바락은 계속 시스라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때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고 합니다.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4:22).

 

늘 여인에 의해 끌려다니는 바락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처량합니까? 그제서야 바락은 여인의 손에 붙여진 시스라의 시체를 보게 됩니다. 그는 드보라의 예언이 정확하게 적중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장군이 전장에서 도망가는 것도 불명예스러운 일인데, 도망가다 여자의 손에 죽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그 이름만 들어도 모든 이스라엘이 벌벌 떨었던 장군 시스라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4:23).

 

하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바락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즉각적으로 순종했다면 이 공이 자기에게 돌아왔을 것인데…. 책임을 회피하고 드보라를 조종하려고 했던 그는 적장을 죽일 기회를 놓치고 그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조건적으로 따르고 책임을 회피할 때 이런 결과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수고는 하되 열매는 없습니다. 섬김은 했으나 상급이 없습니다. 순전한 믿음이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교회이며 영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야엘은 악명 높은 시스라가 도망가는 것을 보고 전세를 파악했습니다.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스라가 도망갈 정도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평화관계를 깨고 대적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녀의 이런 결심이 믿음에 의해 되어진 것인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보라에 의해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5:24).”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무기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말뚝 하나와 방망이가 강한 장수를 죽였습니다. 보잘것없는 우리가 영적 거장이 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가진 외적인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의 손에 들렸느냐가 승리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락처럼 떠밀려서라도 순종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헌신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이왕 하는 하나님의 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들고 있는 작은 방망이 하나가 마귀를 결박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함(23-24)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4:23-24).

 

그날의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격려가 되었고 급기야 모든 대적을 진멸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이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패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주역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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