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실패 ( 15:1-8)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 15:1)

본문에 얼마 후라는 표현을 히브리어로 볼 때 하루 이틀이 아닌 몇 달이 지난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삼손에게 제 정신이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장미꽃 한 송이 들고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남편은 상당히 위험한 남편입니다. 집을 나간 지 몇달이 지나서야 제 정신이 돌아오는 남편은 위험한 남편입니다. 저도 살아 보니까 성령 충만도 부부싸움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하루 이틀을 넘겨서는 안됩니다. 그날의 분노는 그 날에 족하니라. ( 4:26) 성도간의 관계도 그렇다. 

본문에 이때가 밀 거둘 때라고 합니다. 당시 중동에는 비가 많이 온 직후인 11-12월 경에 파종을 해서 5-6월 경에 추수를 했습니다.그러므로 이때는 적어도 5월말이나 6월초쯤 되겠습니다. 이때는 건기입니다. 이때가 건기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바짝 말라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삼손은 그 많은 밭고 과수원을 불사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그냥 돌아가지 않고 염소새끼를 한 마리 데리고 갔습니다. 이것은 화해를 상징합니다.( 38:17) 화가 가라앉자 화해하는 뜻으로 염소새끼를 끌고 찾아간 것입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반지 하나와 장미꽃 한 송이 준비해서 찾아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남편 분들은 이런 이벤트를 좀 자주 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사소한 일에 감동받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이벤트를 준배해서 화해하기 위해 아내를 찾았던 삼손은 장인어른에 의해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집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의 아내가 딴 남자랑 재혼해 버렸다는 속상한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2절에 장인은 삼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 15:2)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라는 말의 원문은 나는 참으로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았다입니다. 삼솜이 결혼식 때부터 아무 말도 없이 몇달동안이나 집을 나가버린 것을 보고 그가 참으로 신부를 미워한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미워하다는 동사는 법률적인 용어입니다. 이것은 삿 14:16에서 삼손의 아내가 삼손에게 투정하며 말했던 미워한다[anEf']  말과는 차원이 다른 말입니다. 이것은 이혼의 사유가 되는 공식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미워하는 줄 알았다는 말은 네가 이혼한 줄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장인의 실수가 무엇일까요? 그는 결혼과 이혼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가 결혼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면, 먼저 정말 삼손이 아내를 버린 것인지를 파악했어야 합니다. 삼손의 집과는 불과 4mile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삼손이 왜 그처럼 화가 나서 떠나 버렸는지, 돌아올 생각은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게 해결될 수 있겠는지 전혀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장인의 실수는 커뮤니케이션의 실수였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때문에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삼손을 달래기 위해 그의 동생을 제안하는 모습에서 또 나타납니다.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much more attractive than her) 삼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그의 동생이 더 아름다운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해야 할 결혼을 단지 외적인 조건만으로 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비정한 아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렇게 제안한 이유에 삼손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은 이 결혼을 허락받을 때에 내가 그녀를 좋아하오니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 14:3).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삼손이 그 여자와 결혼하려고 했던 이유가 외모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장인도 삼손을 그런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런 제안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장인은 전혀 자기의 실수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단지 삼손을 달래기 위해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라라는 식의 충고를 할 뿐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장인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또 다른 혼수품을 뜯어 내기 위한 속셈이라고 해석합니다. 당시 신랑이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많은 혼수품을 신부의 집에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야곱이 삼촌 라반의 첫 째 레아와 결혼 한 뒤에 그의 여동생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을 더 봉사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 29:21-30) 다른 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지참금을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열한 장인의 모습에 삼손은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신처가/불신시댁은 그래서 안되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한 가지 붙잡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 이 결혼 자체가 하나님이 막으시는 결혼이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할 사람이었지 결혼하고 아기자기하게 살아야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그 결혼을 막으신 것입니다. 물론 그의 성품대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몇 달이 지나서 그 여자에 대한 미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다시 찾아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경험한 뒤에 몇 달이 못 되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부흥회때 은혜 받고 3일도 못되어 다시 영적으로 잠들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삼손을 또 막으셨습니다. 그는 염소새끼 한 마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막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삼손으로 하여금 블레셋 사람과 친밀하게 지낼 수 없게 하셨고, 결국 그들과 한 판 전쟁을 할 수 밖에 없게 하신 것입니다. 

장인이 삼손에게 다시 여동생과 결혼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막으신 결혼을 다시 한 번 더 하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옛 길로 돌아가 더 심하게 타락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라고 끌어 당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면서 정말 정신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이것이 세상이 원하는 일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가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삼손이 실패의 길로 접어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시 옛 길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막으신 결혼에 다시 미련이 생겨서 돌아가는 바람에 큰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오늘 본문의 삼손처럼 염소새끼 한 마리 끌고 다시 옛 길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는 옛 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쉽게 내 삶을 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 9: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그리고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싸우다 avntagwni,zomai 당시 원형경기장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모습을 말한다. 적을 죽이기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다. 죄는 이처럼 미워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그때 우리는 실패의 인생이 아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쉽게 옛 길로 돌아가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서 믿음의 성공적인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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